ADVERTISEMENT

[취재 파일] 영국의 토토로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790호 31면

유주현 문화부문 기자

유주현 문화부문 기자

애니메이션 ‘이웃집 토토로’(1988)의 무대화가 공연계 화제다. 영국 왕립 셰익스피어 극단(RSC)과 일본 니혼TV가 공동제작하고, 총괄 프로듀서는 원작의 작곡가 히사이시 조가 맡았다. 유럽에서 가장 큰 공연장인 바비컨센터에서 10월 8일부터 내년 1월까지 공연된다는데, RSC의 이런 대규모 공연 제작은 1985년 뮤지컬 ‘레미제라블’ 이후 처음이란다.

‘재패니메이션의 산 전설’ 미야자키 하야오의 초기작에 속하는 ‘토토로’는 국적불문하고 많은 가정에서 대를 이어 사랑받는 콘텐트다. 아이들 눈에만 보이는 ‘정령’의 존재는 지브리 애니메이션의 단골 소재인데, 꿈이나 사랑, 희망 같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소중한 것을 시각화해 동심과 향수를 자극하는 마성의 매력에 어른들도 사로잡힌다.

RSC가 제작중인 ‘이웃집 토토로’ 공연 포스터.

RSC가 제작중인 ‘이웃집 토토로’ 공연 포스터.

토토로 무대화는 글로벌한 일본 오리지널 공연 콘텐트를 최초로 만들고 싶다는 히사이시 조의 소망과, 뮤지컬 ‘마틸다’ ‘크리스마스 캐럴’ 등 꾸준히 아이들의 상상력에 기반을 둔 공연을 만들어 온 RSC의 관심이 맞아떨어진 결과다. 마침 2020년 넷플릭스가 지브리 애니메이션 21편을 방영하면서 토토로의 글로벌한 인기가 재점화한 참이다. RSC 예술감독 에리카 와이먼은 “토토로 무대화는 어린이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장엄하고도 친근한 작품을 만든다는 우리의 오랜 철학의 다음 장이다. 원작 팬은 물론 공연 팬들까지 광범위하게 매혹시킬 것”이라고 포부를 전했다.

88년산 토토로의 영국 무대 소환은 우리에게도 시사점을 던진다. 사실 팬데믹 이전부터 공연계는 관객 저변확대가 절실한 과제였다. OTT, 게임 등 온갖 엔터테인먼트가 범람하는 시대에 세계적으로 관객 노령화가 화두가 됐고, 유럽 등 선진국 극장들은 어린이와 젊은 관객을 되찾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유명 창작자들에게 젊은 세대를 콕 집어 겨냥한 콘텐트 개발을 주문하고, 뮤지컬을 보며 스낵을 먹게 하거나 퇴근길 직장인들에게 클래식 공연장에서 맥주를 마시며 연주를 들으라고 하는 것도 그래서다.

우리 창작자들도 저변확대에 애쓰고 있다. 지난 21일 연극인들은 국립극단 부지에 2026년 들어서는 서계동 복합문화시설에 어린이청소년극장 조성을 촉구하는 포럼을 열었다.

인터파크에 따르면 지난해 공연된 아동·가족 뮤지컬은 855편으로 전체 뮤지컬 중 61.6%를 차지하지만 매출은 9.2%에 그친다. ‘알사탕’ ‘장수탕 선녀님’ 등 1, 2위 흥행작도 저예산 중소극장용에 불과하다. RSC급 국공립 공연기관이 토토로처럼 아이들의 상상력에 기반을 두면서도 전 세대를 포용하는 대작을 제작한다는 소식은 들은 적 없다. 그런 콘텐트 개발을 위해 정부 차원에서 창작자들을 독려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히사이시 조가 “나는 토토로에 진짜 보편성이 있다고 믿고, 전혀 다른 문화에서 자란 사람들이 다른 언어로 공연해도 전 세계 사람들에게 전해질 것”이라고 했다는데, 한류의 미래가치 관점에서도 이 말은 곰곰이 새겨 볼 만하다.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이 최근 발간한 서적 『한류, 다음』의 영어권 4개국 한류 현황 분석이 흥미롭다. 영어권에서 한류의 주요 소비 계층은 아시아계와 청년층에 집중된 비주류 문화 현상이고, 주류사회는 K팝 팬덤을 ‘코리아부(Koreaboo)’라며 비하까지 한다는 것이다. 다문화사회인 영미권에서 한류가 인종·세대 간 화합을 도모하는 글로벌 주류 문화가 되려면 콘텐트가 다양성의 가치와 인류 보편의 스토리텔링에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영국의 토토로’가 더욱 궁금해지는 이유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