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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에 관객 몰리는데, 외국인에겐 ‘코로나 쇄국’ 여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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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0호 27면

전 아사히신문 기자의 ‘일본 뚫어보기’

올해 4월28일~5월7일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 개·폐막식이 열렸던 전주돔. [사진 전주국제영화제]

올해 4월28일~5월7일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 개·폐막식이 열렸던 전주돔. [사진 전주국제영화제]

코로나19가 확산된 팬데믹 상황에서도 나는 꾸준히 한국 극장에서 영화를 봤다. 관객이 대부분 10명 이하였고, 나 혼자였던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일본에서도 코로나19 영향으로 극장 관객 수는 감소했지만, 한국에 비하면 타격이 크진 않았다. 이미 코로나19 전부터 극장에 거의 안 가는 사람과 자주 가는 사람의 양극화 현상이 심했고, 자주 가는 사람들 중에는 나처럼 코로나19에도 상관없이 계속 극장을 찾는 사람이 적지 않았던 모양이다.

팬데믹을 거치며 한국에선 극장을 찾던 사람들이 대부분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를 통해 영화를 보는 습관이 생겨서 코로나19가 진정돼도 그들이 극장으로 돌아올지 미지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4월28일~5월7일 열린 전주국제영화제에 갔더니 티켓 구하기가 힘들 정도로 관객들이 넘쳐났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다룬 다큐멘터리 ‘그대가 조국’은 객석이 약 2000석 정도인 전주돔에서 상영됐는데 거의 만석이었다. 그 이유가 ‘축제’를 즐기기 위해선지 ‘영화’를 보기 위해선지 판단이 어려웠지만, 최근 개봉한 영화 ‘범죄도시2’의 흥행을 보면 이제 본격적으로 관객이 극장에 돌아오기 시작한 것 같다.

온전한 ‘영화의 시간’ 극장에서만 경험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다룬 다큐멘터리 ‘그대가 조국’이 상영된 날 전주돔 내 2000여 객석이 관객으로 꽉 들어찼다. [사진 전주국제영화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다룬 다큐멘터리 ‘그대가 조국’이 상영된 날 전주돔 내 2000여 객석이 관객으로 꽉 들어찼다. [사진 전주국제영화제]

나는 한국영화를 좋아해서 아사히신문 기자를 그만두고 한국으로 유학 온 사람이다. 때문에 한국영화의 미래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다. 최근 한국으로 출장 온 일본영화 관계자들은 “오랜만에 만난 한국영화 관계자들 대부분이 영화가 아니라 OTT 시리즈물을 만들고 있었다”며 놀라워했다. ‘오징어게임’을 비롯해 세계적인 흥행작이 나오면서 OTT 시리즈물 수요가 늘어난 건 반가운 일이지만, 영화 팬으로서는 조금 복잡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나는 외할아버지가 영화관을 경영했던 이유도 있어서 극장에 대한 애착이 강한 편이다. 이번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이창동 감독은 OTT에 대한 의견을 물어보는 질문에 “쇼핑하듯 보고 지루하면 돌려버리는 방식으로 소비하는 영화가 아니라, 영화에 나를 맡기고 느끼면서 같이 경험하는 그런 영화들이 살아남아야 한다”고 답했다.

영화 ‘범죄도시2’. [사진 각 영화사]

영화 ‘범죄도시2’. [사진 각 영화사]

하나 더, 이번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인상적이었던 영화는 신수원 감독의 ‘오마주’다. 주인공 지완(이정은)이 1960년대 영화를 복원하기 위해 그 필름을 수소문하며 오래된 극장을 찾는데 영화 속에서 그 극장은 문 닫기 직전이다. 신수원 감독은 “시나리오를 쓸 땐 코로나19 전이었는데 촬영을 하면서 실제로 코로나19 때문에 극장에 사람이 없는 상황과 겹쳐져서 묘한 기분이 들었다”고 했다. 영화에서 복원하려는 영화는 홍은원 감독의 ‘여판사’라는 작품인데, 주인공 지완은 이 필름을 찾으면서 60년대 여성 영화인들이 겪었던 어려움에 대해 알게 된다. 남성 중심적인 영화계에서 고군분투하며 찍은 작품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그 시대 여성 영화인들에게서 용기를 얻는 현대 여성 감독 ‘지완’은 바로 신수원 감독 자신이다.

원래 전주영화제는 일본영화 관계자와 팬들이 방문해 한국을 비롯한 다른 해외 영화인들과 교류할 수 있는 장이었다. 그런데 이번 영화제 때는 초대 게스트 외에는 비자 받기가 어려웠다. 6월부터 관광 비자를 발급하면 앞으로 한국에서 열리는 영화제에 참가하는 일본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다.

영화 ‘오마주’. [사진 각 영화사]

영화 ‘오마주’. [사진 각 영화사]

그런데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2년 이상 쇄국에 가까운 상황을 지내는 사이, 한국에선 해외에서 온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시스템이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영화제 티켓을 구매하는 것도 온라인 예매가 기본이 됐고, 현장 구매는 어려워졌다. 온라인 구매는 대부분 한국 휴대전화 번호나 주민등록번호가 없으면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는 영화제뿐만 아니다. 최근 일본에서 지인들이 출장 왔을 때도 길거리에서 바로 택시를 잡을 수 없어서 내가 대신 모바일 앱으로 예약을 해야 했다. 앞으로 여행을 목적으로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이 늘어날 텐데 택시도 마음대로 못 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아무튼 ‘범죄도시2’에 이어 앞으로 개봉하는 영화에도 관심이 높다. 그 중 하나가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브로커’다. 송강호, 강동원, 배두나, 이지은(아이유) 등 인기 배우들이 출연해 벌써 171개국에 선 판매 됐다고 한다. 고레에다 감독은 부산국제영화제 단골 감독으로 일찍부터 한국 영화인들과 교류해왔다. ‘공기인형’(2008)에 배두나가 주연으로 출연했을 때, 한국 배우가 나오는 영화를 다시 찍길 기대했는데 아예 한국영화의 감독을 맡을 줄은 몰랐다. 고레에다 감독은 ‘어느 가족’으로 2018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후,  프랑스에서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을 찍었고, 이번에는 한국에서 ‘브로커’를 연출했다. 훌륭한 감독이 일본이 아닌 해외에서 연달아 작품을 만드는 것을 두고 일본 영화계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오지만, 이제 ‘월드 스타 감독’으로서 세계 영화인들과 호흡을 맞추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라 생각된다.

영화 ‘브로커’. [사진 각 영화사]

영화 ‘브로커’. [사진 각 영화사]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드라이브 마이 카’가 상영됐을 때 “사실 부산에서 찍기로 했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포기하고 일본에서 찍었다”고 밝힌 바 있다. 일본에서 찍었지만 한국 배우들도 출연했다.

현재 일본에서 개봉 중인 재일코리안 이상일 감독의 ‘유랑의 달’에는 홍경표 촬영감독이 참여했다. 일본에서는 ‘기생충’을 촬영한 홍경표 감독이 일본영화를 찍었다고 화제가 됐는데, ‘브로커’도 홍경표 촬영감독이 맡았다. 촬영감독이 조명 받는 일은 흔치 않은데 홍경표 감독은 일본에서 ‘한국 영화계의 레전드’로 유명하다. ‘유랑의 달’을 본 일본 관객들 중에는 “대사가 아닌 영상으로 주인공들의 심리를 그렸다” 등 그만의 영상 미학에 대해 언급하는 사람이 많았다. 이렇듯 한국과 일본의 영화인들이 함께 만든 영화가 잇따라 나오고 있다.

일본에도 친숙했던 강수연 배우 추모

한일 영화인의 교류를 거슬러 올라갈 때 대부분 1998년부터 단계적으로 시작된 일본 대중문화 개방과 2000년대 드라마 ‘겨울연가’로 인한 한류 붐을 계기로 활발해졌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사실 일본에서는 1988년부터 매년 한국영화를 극장 개봉해왔다. 88년은 서울올림픽이 열린 해로 한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시기였다. 88년 일본에서 개봉한 한국영화는 ‘고래사냥’ ‘미미와 철수의 청춘 스케치’ 등이다. ‘고래사냥’ 개봉에 맞춰 주연을 맡은 안성기 배우가 일본을 방문해 “올림픽뿐만 아닌 또 다른 한국에 대해서도 알게 되는 기회가 되면 좋겠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당시 마이니치신문은 ‘지적인 마스크의 한국영화계 톱스타’라고 소개했다.

‘미미와 철수의 청춘 스케치’는 최근 별세한 강수연 배우가 주연을 맡았는데, 그가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씨받이’는 89년에, 모스크바 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아제 아제 바라아제’도 91년에 일본에서 개봉했다. 때문에 이 시기부터 한국영화를 봤던 일본 팬들은 강수연 배우를 잘 기억한다. 드라마 ‘여인천하’로 강수연 배우를 좋아했던 사람들은 SNS에 “더 많이 보고 싶었는데”라며 아쉬워하는 글을 올렸다. 개인적으로는 2015~17년 부산국제영화제가 어려움을 겪었던 시기에 집행위원장으로서 활약했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생각해보면 영화가 어렵지 않았던 시기가 있었나 싶을 만큼 많은 어려움을 극복해왔다. 코로나19가 진정돼가는 지금, 선배 영화인들에 감사하면서 다시 희망을 걸어보고 싶다.

나리카와 아야(成川彩) 전 아사히신문 기자. 2008~2017년 일본 아사히신문에서 주로 문화부 기자로 활동했다. 동국대 박사과정을 밟으면서 프리랜서로 일본(아사히신문 GLOBE+ 등)의 여러 매체에 영화 관련 칼럼을 집필 중이다. 2020년 한국에서 에세이집 『어디에 있든 나는 나답게』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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