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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도 명품 시계도 뒷면이 아름다워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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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0호 18면

예거 르쿨트르 CEO 캐서린 레니에

예거 르쿨트르 CEO 캐서린 레니에. [사진 예거 르쿨트르]

예거 르쿨트르 CEO 캐서린 레니에. [사진 예거 르쿨트르]

“남자든 여자든 사람은 자신의 얼굴로 표정을 짓고 손짓을 하고 몸짓과 발걸음으로 자신을 표현한다. 모든 것이 다 정면에 나타나 있다. 그렇다면 그 이면은? 뒤쪽은? 등 뒤는? 등은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뒤쪽이 진실이다.”

프랑스 최고 작가이자 유럽의 대표적 지성으로 손꼽혔던 미셸 투르니에의 에세이 『뒷모습』의 서문이다.

스위스 명품 시계 브랜드 예거 르쿨트르의 상징적인 시계 ‘리베르소’를 보면서 투르니에의 책이 가장 먼저 떠올랐던 것은, 리베르소가 뒷면의 아름다움까지 추구하는 시계이기 때문이다. 리베르소는 180도 회전하는 케이스로 유명하다. 1930년 영국 장교들이 격렬한 폴로 경기를 즐길 때 시계 유리와 다이얼을 보호하길 원하자 생각해낸 아이디어다. 평상시에는 익숙한 시계 다이얼이 위로 오도록 사용하다가 때때로 케이스를 뒤집어서 뒷면이 위로 올라올 수 있도록 고안됐다. 예거 르쿨트르는 그렇게 뒤집힌 시계 뒷면에 이름 이니셜을 새기거나, 좋아하는 문구를 새기거나, 보석 장식을 하거나, 그림을 그리는 등 특별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말하자면 리베르소 시계 뒷면은 나 또는 그 시계를 선물한 사람만이 아는, 세상에 하나뿐인 캔버스다. 실제로 지난 91년간 제작된 리베르소 중 수공예 작업 공방 ‘메티에 라르 아틀리에’가 에나멜을 이용해 고호·클림트 등의 명작을 그대로 옮긴 ‘트리뷰트 히든 트레저’는 시계 명작으로 알려져 있다.

‘리베르소’ 시계 중 ‘트리뷰트 에나멜 히든 트레저’. 180도 회전시킨 뒷면에는 클림트의 명화(아래 사진)가 있다. [사진 예거 르쿨트르]

‘리베르소’ 시계 중 ‘트리뷰트 에나멜 히든 트레저’. 180도 회전시킨 뒷면에는 클림트의 명화(아래 사진)가 있다. [사진 예거 르쿨트르]

예거 르쿨트르는 5월 25일부터 6월 12일까지 서울 성수동 S팩토리에서 ‘리베르소: 1931년부터 이어온 시간을 초월한 스토리’ 전시를 개최한다. 아카이브(기록·보관해온) 유산을 통해 브랜드의 역사와 영감, 장인정신, 창의성을 소개하는 자리다. 이를 위해 방한한 CEO 캐서린 레니에는 리베르소의 뒷면을 “삶의 특별한 순간, 인생의 소중한 시간을 기록하는 작은 메모장”이라고 소개했다.

명품 주얼리&시계 브랜드 까르띠에, 반 클리프 아펠 등을 거쳐 2018년 예거 르쿨트르 CEO로 취임한 그는 홍콩에서 근무했던 시절부터 한국을 여러 번 방문했다. 25일 성수동 전시장에서 만나 ‘한국에 대한 기억’을 물었을 때 망설임 없이 “한식, 그 중에서도 코리안 바비큐를 좋아한다”며 “모든 것이 빠르게 변화하는 서울은 현대와 전통이 잘 어우러진 멋진 문화를 갖고 있어서 늘 많은 영감을 준다”고 답했다. 그는 또 “상하이, 파리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서울에서 대규모 아카이브 전시를 여는 이유도 문화유산에 대한 존중과 이해도가 높은 동시에 개성 있는 현대인의 삶을 추구하는 서울의 젊은 세대와 소통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오래된 공장지대와 젊은 문화가 조화를 이룬 성수동에 전시장을 마련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리베르소’ 시계 중 ‘트리뷰트 에나멜 히든 트레저’. 180도 회전시킨 뒷면에는 클림트의 명화가 있다. [사진 예거 르쿨트르]

‘리베르소’ 시계 중 ‘트리뷰트 에나멜 히든 트레저’. 180도 회전시킨 뒷면에는 클림트의 명화가 있다. [사진 예거 르쿨트르]

리베르소를 말할 때 역사와 문화유산은 중요한 키워드다. 리베르소가 처음 탄생한 1930년대는 아르데코(기하학적인 것에 대한 취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던 장식미술 사조)가 유행했다. 대부분 둥근 모양의 회중시계를 사용할 때 예거 르쿨트르는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는 특별한 디자인을 고민했고, 선과 기하학적인 디자인이 중요한 아르데코 스타일과 수학적으로 가장 균형 잡힌 황금비율을 적용해 사각 형태의 리베르소를 만들어냈다. 이 완벽한 조합은 오늘날까지 91년간 이어지고 있다.

“과거 어느 시대의 문화가 현대와 자연스럽게 융합되도록 한다는 것은 단순히 기술적인 발전만을 추구하는 시계와는 달리 예술과 스타일, 장인정신을 존중해온 브랜드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때문에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젊은 세대와 만나는 것은 우리에게 꼭 필요하고 소중한 기회다. 한국의 요즘 젊은 세대는 한옥을 사랑하고 한옥 모티프의 카페 등을 즐긴다고 들었다. 리베르소가 옛것을 지키면서도 시대에 맞게 변화해온 것처럼, 한국의 젊은이들은 옛것과 현대의 융합을 즐길 줄 아는 세대다.”

아르데코 스타일의 ‘1931 카페’. [사진 예거 르쿨트르]

아르데코 스타일의 ‘1931 카페’. [사진 예거 르쿨트르]

그는 서울의 풍경 중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인상적인 모습을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로 꼽았다.

“한국적인 아름다움은 곡선의 매력에 있다. DDP를 설계한 건축 디자이너 자하 하디드 역시 동대문 지역의 역동성에서 모티프를 얻어 곡선과 곡면으로 부드럽게 이어지는 디자인을 하게 됐다고 들었다. 나 또한 DDP가 한국의 문화적·역사적·민족적 특성을 가장 잘 살린 디자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해외 출장이 있을 때마다 그 나라의 문화를 직접 경험하고자 노력한다고 했다. 방안에 앉아 디지털 도구로 전 세계 모든 정보를 얻을 수 있지만, 직접 도시를 걸으며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보고 입으로 즐겨보는 아날로그적인 경험이 확실하고 매력적으로 오래 기억되는 방법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중요한 큰 전시가 열릴 때마다 전시장 옆에 리베르소 디자인의 영감이 됐던 1930년대 아르데코 스타일의 팝업 카페 ‘1931 카페’를 함께 준비하는 것도 이런 맥락 때문이다. 이 카페의 실내 가구와 장식은 아르데코 스타일로 꾸며져 있다. 매장에서 선보이는 디저트와 음료 원재료는 브랜드 본사가 있는 스위스에서 공수한다.

“우리의 철학을 한 번에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우아하고 세련된 카페를 통해 우리들 영감의 원천인 아르데코 스타일과 홈(본사)의 분위기를 자연스레 체험해 보길 제안하고 있다. 시계에 흥미가 없던 사람도 멋진 카페에 먼저 들렀다가 전시장까지 돌아보고, 그로 인해 우리의 메시지를 읽을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

젊은 세대가 즐기기에 명품 시계 가격은 너무 높은 게 아닌가 물었더니 그는 애플 워치를 예로 들며 설명했다.

“디지털시계는 매우 실용적이지만 문화적 감성과의 깊은 연결성은 없다. 애플 워치는 언제든 지겨우면 버릴 수 있는 소모품이지만, 리베르소는 오랜 시간 쌓은 장인정신, 창의성, 역사, 무브먼트 기술력이 응집된 평생 간직하고 싶은 작품과도 같다. 때문에 처음부터 접근방법이 달라야 한다. 사실 애플 워치의 사각형 디자인이 리베르소에서 영감을 얻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만큼 명품 시계는 내면과 외면에 풍부한 디자인 역사와 유산을 품고 있어서 어느 시대에도 세련된 감성과 스타일에 영감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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