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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인 듯 삶 관조하는 어른인 듯, 인간을 닮은 자작나무 모습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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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0호 18면

중국 내몽골 설원에서 칼날 같은 바람을 맞고 서있는 자작나무.(2015년) [사진 이만우]

중국 내몽골 설원에서 칼날 같은 바람을 맞고 서있는 자작나무.(2015년) [사진 이만우]

“나무는 생명이 시작한 그 자리에서 성장하고 살아가다 죽음이라는 끝을 맞이한다. 누구나 알던 사실이 깨달음으로 다가온 건 내몽골을 찾았을 때였다.”

이만우 사진가는 이 순간 자신의 시선을 끌었던 것은 “한파가 찾아온 영하 35도의 설원에서 칼날 같은 바람을 온몸으로 막으며 아이를 보호하듯, 애절한 모습으로 서있는 자작나무 가족이었다”고 했다. 서둘러 촬영을 준비했지만 구름과 폭풍이 휘몰아치고 매서운 눈보라 때문에 급히 삼각대를 걷고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아쉬움에 돌아본 순간, 한 자리에 뿌리를 내리고 평생 눈보라와 폭풍을 맞닥뜨려야 하는 자작나무의 삶과 죽음에 대한 깨달음이 이 사진가의 발목을 붙잡았다. 결국 이 사진가는 그날 눈을 함께 맞으며 폭풍우가 지나가길 기다렸고, 그렇게 자작나무 가족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냈다.

5월 27일부터 6월 9일까지 서울 삼청동 공근혜갤러리에서 열리는 전시 ‘자작’은 10년 동안 수백 번도 넘게 오간 강원도·내몽골·시베리아에서 이 사진가의 걸음을 멈추게 한 자작나무들의 이야기와 감동을 나누는 자리다. 사실적 표현과 함께 때로는 빛을 이용한 회화적 표현으로 완성된 자작나무들의 모습은 인간을 닮았다. 연초록빛 잎사귀를 뽐내며 빛날 때는 푸른 청춘의 모습인 듯 하고, 단풍으로 붉게 치장한 모습은 화려한 날들의 한 조각 같다. 인적 드문 눈밭에 묵묵히 서 있는 모습은 삶을 관조하는 어른의 모습을 닮았다.

자작나무는 깜깜한 밤에도 그 존재감을 훤히 드러낸다. 줄기 껍질이 종이처럼 얇고 하얗게 벗겨져 빛나기 때문이다. 북반구에 널리 분포돼 있어 우리에게도 꽤 친숙한 자작나무는 너무 흔해서 그 가치가 가려진 수종이다. 자작나무 껍질은 거의 기름이기 때문에 오랫동안 썩지 않는다. 신라 경주 ‘천마총’은 자작나무 껍질에 하늘을 나는 말이 그려진 ‘다래(말을 탄 사람의 옷에 흙이 튀지 않도록 가죽 같은 것을 말의 안장 양쪽에 늘어 뜨려놓는 기구)’가 출토되어 이름 붙여졌다. 국보 ‘팔만대장경’의 일부도 이 자작나무로 만들어져 오랜 세월의 풍파 속에서도 벌레 먹거나 뒤틀리지 않고 현존할 수 있다고 한다. 우리는 종종 가까이 있는 것의 소중함을 지나치고 산다. 이만우 사진가의 자작나무들이 우리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바로 이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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