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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 늘리면서 임금 깎거나 업무량 줄일 땐 피크제 유효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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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0호 03면

팩트체크 

임금피크제 관련 대법원이 26일 “합리적 이유 없는 임금피크제는 무효”라고 판결하면서 노동계와 산업계가 충돌했다. 노동계는 ‘임금피크제 폐지’를, 산업계는 ‘법 취지에 어긋난다’며 대립하고 있다. 사진은 이날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 외벽 모니터의 고령자 계속 고용장려금 광고. [연합뉴스]

임금피크제 관련 대법원이 26일 “합리적 이유 없는 임금피크제는 무효”라고 판결하면서 노동계와 산업계가 충돌했다. 노동계는 ‘임금피크제 폐지’를, 산업계는 ‘법 취지에 어긋난다’며 대립하고 있다. 사진은 이날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 외벽 모니터의 고령자 계속 고용장려금 광고. [연합뉴스]

대법원의 26일 임금피크제 판결을 두고 노사 단체 간에 해석이 엇갈리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노동단체는 “차별 제도임을 확인했다. 폐지해야 한다”며 환영했다. 그러나 경제단체는 “법(고령자 고용촉진법)의 취지에 어긋난다”며 반발하고 있다. 노사가 이렇게 첨예하게 맞붙는데,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는 아무 반응이 없다. 고용부 고위 관계자는 “기존 정부 방침과 달라진 게 없고, 오히려 대법원에서 입금피크제의 도입 취지를 재확인해줬는데, 무슨 입장문을 내느냐”며 “입장을 표명하려면 기존 방침이나 입장을 수정해야 할 필요가 있거나 달라졌을 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학계의 반응도 고용부와 비슷하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노사가 모두) 대법원 판결을 해석하면서 오해를 하고 있다”며 “임금피크제의 취지를 훼손한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경영학자는 “경영계는 ‘산업현장 혼란’, 노동계는 ‘임금피크제 폐지’라는 극단적 해석을 하며 논란에 불을 붙이고 있다”며 “특히 경제단체가 노동계에 맞불을 놓는다며 고령 근로자 희망퇴직 증가 등 고용불안 심리까지 자극하며 과도하게 해석하는 고질병을 노출했다”고 지적했다. “이런 행동이 오히려 산업현장의 혼란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질타를 덧붙여서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을 통해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합리적 사유’가 무엇이냐”고 회사 측에 물었다. “정년을 연장한 것도 아니고, 경영상 어려움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임금피크제 대상이 된 근로자의 업무량을 줄이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55세 이상 직원의 실적이 나쁜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왜 임금을 깎았느냐. 과도하게 깎은 것 아니냐”고 따졌다. 무턱대고 나이를 기준으로 임금을 삭감한 회사를 꾸중한 셈이다. 그런데, 이는 대법원이 임금피크제의 효력 기준을 제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이 기준은 모두 충족해야 효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전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가 아니다. 임금피크제를 도입할 때 하나라도 합리적 타당성에 맞는지를 따져 효력을 들여다보는 ‘또는(or)’의 개념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 경영계와 노동계 주장을 대법원 판결에 나타난 기준으로 알아본다.

임금피크제는 연령 차별이다?
노동계는 “대법원이 임금피크제는 연령 차별이라고 판결했다”고 해석했다. 폐지를 주장하는 근거다. 대법원은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합리적 이유’가 없는 경우 연령 차별”이라고 봤다. 임금피크제의 필요성이나 임금체계로서의 제도 자체를 부정하지 않은 것이다. 이번 판결의 대상이 된 회사는 원래 정년이 61세였다. 임금피크제를 시행할 근거가 없었던 셈이다. 그런데도 임금피크제를 도입해 55세 이상 근로자의 임금을 깎았다. 연령 차별로 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노동계의 주장은 이런 점을 쏙 빼고 유리한 쪽으로 편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동안 법원과 정부는 “정년 연장으로 근로자의 생애 소득이 증가하기 때문에 일정 연령부터 임금을 줄이는 것은 차별로 볼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임금피크제 도입 당시에도 고용부는 “정년이 60세로 연장되면 기업의 인건비 부담이 커져 희망퇴직 등이 가속화할 수 있다. 장기적으로 근로자 전체의 고용안정과 소득 증대라는 이익을 얻게 된다. 세대가 상생할 수 있는 제도”(이기권 당시 고용부 장관)라고 설명했다. 2020년 11월 삼성SDI 근로자가 낸 임금피크제 무효 소송에서 울산지법도 같은 취지로 판결했다. 울산지법은 “만 55세였던 정년을 만 60세로 연장하면서 없던 연령구간에 대해 새로운 임금제도(임금피크제)를 신설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근로자의 이익이 불이익하게 변경된 것이 아니다”고 판시했다.
임금피크제 취지를 훼손했다?
대법 판결이 나온 뒤 경제단체는 강하게 반발했다. 황용연 한국경영자총협회 노동정책본부장은 “임금피크제의 도입 목적과 법의 취지, 산업계에 미칠 영향이 충분이 반영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임금피크제의 도입 목적은 앞서 지적한 대로 정년 연장에 따른 인건비 부담 완화와 고령자의 고용안정이다.  “임금피크제는 현행 연공급(年功給·근속연수 등에 비례한 임금 상승)에서 정년 연장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강석구 대한상공회의소 조사본부장), “근로자의 고용안정을 도모하고 기업의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많은 기업에서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추광호 전국경제인연합회 경제본부장)고 주장한 것과 다르지 않다. 단순히 임금을 깎을 목적으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정년을 연장하지도 않고, 경영사정이 나빠지지도 않았는데 무턱대고 임금을 깎는 행동이 오히려 법 취지에 어긋난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따라서 ‘임금피크제 취지와 법 취지 훼손’ 주장은 과도한 확대 해석이란 지적이다.
임금 줄었는데 업무는 그대로…이것도 임금피크제 무효 사유?
일각에선 삼성전자·LG전자 등 일부 대기업은 임금피크제의 적용을 받는 직원의 업무를 조정하지 않고 기존 업무 그대로 하고 있기 때문에 임금피크제 무효 요건이 된다는 주장을 편다. 대법원 판결문에 등장한 ‘업무량’과 관련된 해석이다. 하지만 이는 과도한 해석에 따른 오류라고 보는 것이 맞다. 이들 기업은 정년을 기존 55세에서 60세로 늘리면서 임금피크제를 도입했기 때문에 그것으로 효력이 인정된다고 봐야 한다. 역으로 정년을 늘리지 않더라도 업무량을 확 줄이고, 그에 합당하게 임금을 깎으면 임금피크제의 효력이 인정될 수 있다. 일본은 이런 방식의 임금체계를 1990년대 후반부터 도입해 지금은 거의 모든 기업이 채택하고 있다. 이른바 ‘역할급’이다. 업무수행 능력이 떨어지면 그에 맞는 업무로 재배치하고, 그 역할에 맞게 임금을 조정하는 것이다. 부장직을 수행하다 나이가 들어 업무 수행에 부대끼면 차장이나 과장 역할을 맡을 수 있고, 그에 합당한 임금을 받는 식이다. 학계에서 “이참에 역할급이나 직무급, 성과급제로 임금체계를 개편하는 것이 불필요한 소모적 논쟁을 줄일 수 있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와 궤를 같이한다.
과도한 삭감은?
어느 정도가 과도한 삭감인지 법리적 기준을 제시하기는 힘들다. 회사마다 사정이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향후 삭감 규모의 적정성을 두고 논란이 지속할 소지가 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노동대학원장)는 “회사가 처한 환경과 사정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적정한 삭감 규모를 사례별로 달리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다만 업무량의 변동이나 근로시간을 줄인 것도 아닌데 3분의 1 이상 깎으려 들면 과도하다는 합리적 의심이 생길 수 있다. 삭감 규모가 3분의 1 이상이면 사회 통념상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라며 “이런 경우 회사는 그만큼 깎을 수밖에 없는 합리적 근거를 제시하고, 설득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예컨대 ‘줄인 임금으로 청년을 몇 명 더 채용했다’ ‘경영상 인건비 부담이 너무 크니 고연봉자가 자발적으로 깎아주면 좋겠다’ ‘근로시간이나 업무량을 줄이겠다’ 등의 근거를 내놔야 한다는 얘기다. 이런 게 없이 무턱대고 깎으면 임금피크제의 효력을 두고 회사와 근로자 간에 다툼이 생길 수 있다. 이는 대법원이 판결로 제시한 감액된 재원이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목적에 부합하게 사용됐는지와 연관된다. 청년 채용을 위해서라면 실제 몇 명이나 채용됐는지 등을 따져 그 합리성을 들여다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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