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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 이긴 알파고, 손쉬운 바둑돌 올려놓기 못한 까닭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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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0호 16면

코딩 휴머니즘 

지난 2016년 알파고와의 5번기 네 번째 대국 중인 이세돌 9단. [뉴시스]

지난 2016년 알파고와의 5번기 네 번째 대국 중인 이세돌 9단. [뉴시스]

인간의 뇌와 인공지능(AI)의 맞대결. 2016년 3월 인공지능 알파고가 이세돌 9단과 바둑 대결에서 승리하던 날, 많은 사람이 한 가지를 궁금해했다. ‘알파고는 왜 손이 없을까?’

알파고, 이세돌의 8500배 에너지 써

알파고는 빠른 속도로 바둑의 수를 계산하고 두어야 할 위치를 결정했다. 그러면 대리인이 손이 없는 알파고를 대신해 바둑판 위에 돌을 올려놓는 방식으로 대국이 진행되었다. 당시 언론들도 이 점이 궁금했는지 알파고를 만든 데미스 허사비스에게 왜 로봇팔을 만들어주지 않았느냐고 질문을 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바둑의 수를 계산하는 것보다 바둑판 위에 바둑돌을 올려놓는 것이 현재로썬 더 어려운 기술이다.”

만약 누군가가 당신에게 “바둑판 위에 바둑돌을 올려놓을래? 아니면 이세돌을 바둑으로 이길래?”라고 묻는다면 무엇을 선택하겠는가. 당연히 바둑판 위에 바둑돌을 올려놓는 선택을 하겠지만, 이것을 인공지능 관점에서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인간의 뇌와 인공지능 사이에서 어렵고 쉽다는 개념은 정반대로 작용한다.

우리가 손쉽게 하는 많은 행동을 인공지능이 따라 하기란 어렵다. 규칙이라든지 일관성을 적용하기가 어렵다. 우리가 바둑돌이 담긴 통 안에 손을 넣고 바둑돌을 움켜쥐는 상상을 해보자. 수많은 돌 중에 바둑돌 하나를 손끝으로 집어 드는 일, 그 돌을 내가 생각한 위치에 정확히 올려놓는 일, 동시에 다른 돌을 건드리지 않는 정교함까지. 이 모든 작업을 미적분과 선형대수학, 확률과 통계를 다 동원해도 계산하기란 어렵다.

바둑돌을 집기도 어렵지만, 더 쉬운 걷기조차 인간을 따라 하기 힘들다. 가장 최신 기술 트렌드를 보여주는 박람회인 ‘CES 2022’가 지난 1월에 개최되었는데, 당시에 선보인 최신 로봇 기술은 다름 아닌 ‘직립보행’이었다. 직립보행이란 어린아이도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로봇에게는 매우 어려운 과제다. 그마저도 제한된 조건 안에서만 넘어지지 않고 할 수 있을 뿐이다.

물론 그렇다 할지라도 인공지능과 로봇이 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하다. 수학과 바둑은 물론이고 원자력 발전소를 가동하거나 대륙 간 탄도 미사일을 쏴서 수천 ㎞ 떨어진 곳을 정확하게 폭파할 수도 있다. 인간이 감지할 수 없는 매우 작은 물질을 더 작게 자를 수도 있고, 태양계를 넘어 수백 광년 떨어진 우주 탐사도 가능하게 할 수 있다. 하지만 바둑판 위에 바둑돌을 올려놓지 못한다.

이러한 차이를 에너지 효율 면에서 따져보면 다른 놀라운 사실을 알 수 있다. 인공지능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겼을 때 사용했던 에너지는 170kW였다. 이세돌처럼 성인의 뇌가 사용하는 에너지는 고작 0.02kW다. 알파고가 바둑을 두기 위해 8500명의 이세돌이 사용하는 에너지를 소비했다는 얘기가 된다. 에너지 측면에서 보면 8500대 1의 싸움이었던 셈이다. 오늘날까지 그 어떤 인공지능도 인간의 뇌처럼 적은 에너지로 작동하지는 못한다. 작년 8월에 테슬라가 발표한 자율주행용 인공지능의 경우, 서버 한 대가 사용하는 전력은 무려 1800kW로, 알파고의 10배가 넘었다.

인간의 두뇌는 에너지 효율을 최적화하는 방향으로 진화해 왔다. 2007년 미국 애리조나 주립대 데이비드 라이클렌 교수팀은 미국 국립과학회보(PNAS)에 흥미로운 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사람이 1㎞를 걸을 때 약 0.06kWh의 에너지를 사용하는 데 비해, 4족 보행을 하는 침팬지의 경우는 무려 4배의 에너지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결국 인간은 직립보행으로 에너지 소모를 4분의 1로 줄이게 되었고, 이러한 에너지 효율을 통해 더 많은 에너지를 두뇌에 투입할 수 있게 되었다.

‘CES 2022’에서 선보인 직립보행이 가능한 인간형 로봇 아틀라스. [AP=연합뉴스]

‘CES 2022’에서 선보인 직립보행이 가능한 인간형 로봇 아틀라스. [AP=연합뉴스]

직립보행을 할 수 있는 로봇은 어떨까? 현재 직립보행을 할 수 있는 로봇 중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받는 보스턴 다이내믹스 (Boston Dynamics)의 아틀라스(Atlas)는 1㎞를 걸어가는데 0.7kWh의 에너지를 사용한다고 한다. 인간의 10배가 넘는다. 아직은 인간을 따라잡기에 멀었다.

CES서 진화된 직립보행 로봇 선보여

인간에게 어려운 것은 인공지능에게 쉽고, 인공지능에게 어려운 것은 인간에게 쉽다. 이러한 아이러니를 ‘모라벡의 역설 (Moravec’s Paradox)’이라고 한다. 미국의 로봇공학자인 한스 모라벡 (Hans Moravec)은 1970년대부터 이러한 차이에 대해 주목했는데 그 원인을 진화에서 찾았다. 인간의 운동·감각 능력은 오랜 시간 진화 과정을 거쳐 형성된 것으로 이를 인공지능으로 구현하기란 매우 어렵다는 얘기다. 인간은 귓속 전정기관과 소뇌가 지속해서 몸 기울기를 오차 없이 파악하고 근육에 신호를 보내 넘어지지 않도록 진화했다. 이 진화 과정은 최소 수만 년에서 수백만 년에 거쳐 이루어진 시행착오의 산물이다. 그 기나긴 시간을 걸쳐 완성된 진화의 힘이 인간의 뇌 속에 기본으로 장착되어 있다. 그 진화의 힘으로 바둑돌을 집어 올리고 내려놓는 것이다.

현재는 두 발로 걷는 것조차 버거운 인공지능이지만 가까운 미래엔 그 또한 능가하는 수준이 되리라 짐작해 본다. 생각해 보면 진화의 힘은 수만 년을 걸쳐 왔지만, 인공지능은 고작 100년을 맞이한 셈이다. 그 짧은 시간을 고려하면 인공지능이 이루어 낸 업적은 실로 놀라운 것이다.

오민수 멀티캠퍼스 minsuu.oh@sericeo.com
정보산업공학을 전공했고 코딩을 배웠으나 글쓰기를 더 좋아한다. 멀티캠퍼스에 입사 후 삼성그룹 파워블로거, 미디어삼성 기자를 병행하면서 ‘디지털 전환’과 관련한 글쓰기를 시작했다. 현재는 ‘멀티캠퍼스’에서 IT 생태계의 저변을 넓히는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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