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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쇠퇴, 중국의 부상...월가 억만장자가 본 세계질서의 재편[BOOK]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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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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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하는 세계 질서

레이 달리오 지음
송이루·조용빈 옮김
한빛비즈

“모든 제국은 쇠퇴하고 오래된 제국을 대체할 새로운 제국이 부상한다.” 미국 뉴욕의 월가에서 활동하는 억만장자 투자자 레이 달리오(73)의 말이다. 세계 최대 헤지펀드 운용사 브리지워터 어소시에이츠의 창업자인 그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예측한 것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저자에 따르면 역사적으로 모든 강대국은 흥망성쇠의 ‘빅 사이클’을 겪어왔다. 한때 전 세계 해상 무역을 장악했던 네덜란드나 영국은 물론 현대의 미국이나 중국도 예외가 아니다. 마치 인간이 태어나서 청년기와 중년기를 거쳐 노년기에 접어드는 것과 닮았다. 월가의 거물 투자자답게 저자는 통화, 즉 돈 가치의 변동으로 역사적 사이클을 파악하려고 시도한다.

저자의 세계관과 역사관을 바꾼 결정적 사건은 1971년 8월의 어느 일요일 밤에 일어났다. 당시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은 TV에 나와 미국 달러화를 더는 금으로 바꿔주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종이돈의 가치를 실물 자산인 금에 고정하는 제도(금본위제)를 궁극적으로 폐기한 대사건으로 '닉슨 쇼크'라고 불린다. 뉴욕증권거래소에서 아르바이트하던 저자는 다음날인 월요일 아침에 출근하면서 주가 폭락을 예상했다고 한다. 그런데 주가는 오히려 상승했지만 달러화 가치는 폭락했다. 이때 생전 처음으로 통화 가치 하락을 목격한 저자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이 책은 상당히 많은 분량을 할애해 미국의 쇠퇴와 중국의 부상을 다루고 있다. 특히 과거 냉전 시절의 소련과 현재의 중국은 차원이 다르다고 본다. 1984년부터 수없이 중국을 오가며 직접 사람들을 만나고 중국의 역사와 경제를 들여다본 저자의 결론이다. 그는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이 실제 군사력을 동원한 전쟁으로 이어질 위험도 있다고 본다. 심지어 전쟁이 일어날 확률이 약 35%라는 숫자까지 제시한다. 다만 계산의 근거는 개인적 추측이다.

만일 전쟁이 일어난다면 가장 위험한 지역은 대만이라고 본다. 중국은 '하나의 중국'이란 신념을 절대 양보하지 않겠지만 미국으로선 피를 흘려 가며 지켜야 할 만큼 가치가 있다고 여길지는 의문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승패에 상관없이 전쟁을 겪은 국가는 모두 가혹한 대가를 치르고 많은 빚을 지게 된다"고 경고한다. 저자가 모든 미국인을 대표하는 건 아니지만 미·중 분쟁에 대한 미국 금융계 거물의 시각이란 점에서 가볍게 들리지 않는다.

덧붙이자면, 중국에 대한 저자의 서술에선 왜곡된 역사관과 편견도 엿보인다. 알게 모르게 동북공정의 영향을 받은 흔적이 있다. 저자는 중국 역사에서 제국의 흥망성쇠를 서술하며 당나라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고구려가 국가의 존망을 걸고 중국의 침공에 맞서 싸우던 시기다.

그런데 저자는 중국이 주변국을 정복하며 영토를 확장했던 역사적 사실을 외면하고 정반대의 역사 인식을 드러낸다. 이런 식이다. "다른 국가들을 정복하고 점령한 일반적인 제국들과 달리 중국이 멀리 떨어져 있는 국가들을 점령하는 일은 비교적 드물었다…〈중략〉…대부분의 전쟁은 영토를 장악하기 위해 중국인끼리 벌였다. 하지만 때로는 외국에서 건너온 침략군을 상대로 전투가 벌어지기도 했다."

저자는 중국의 집단주의 사고방식과 상명하달식 의사소통에 대해서도 우호적이다. 탱크를 동원해 민주화 시위를 진압한 1989년 천안문 사태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시각을 전한다. "대부분의 중국 친구들은 당시 정부가 올바른 조치를 취했다고 믿게 됐다. 그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혁명이 불러올 무질서였기 때문"이라는 식이다.

그는 또 "중국 지도자들은 한 세기 이상을 내다보고 미래를 계획한다"며 "중국 지도자들이 미국 지도자들보다 훨씬 더 철학적이라는 점도 알게 됐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회의를 마치고 돌아온 중국 지도자가 마음을 진정시키고 평온을 얻기 위해 임마누엘 칸트의 『순수이성 비판』을 읽었다는 일화를 소개한다. 트럼프가 잘했다는 건 아니지만, 여기서 왜 갑자기 칸트가 나오는지는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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