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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 죽음의 여신은 지독한 일벌레, 주말에도 쉬지 않는다[BOOK]

중앙일보

입력

청부 살인자

청부 살인자

청부 살인자의 성모
페르난도 바예호 지음
송병선 옮김
민음사

틈만 나면 서구의 자국 중심주의를 비판하면서 정작 우리도 남에 대해 잘 모른다. 콜롬비아도 마찬가지. 이 나라에 대한 우리의 이미지는 모순적이다. 가령 노벨문학상을 받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나라, 그런가 하면 한때 악명 높았던 마약 수출국 정도다(메데인 카르텔).

1942년생 페르난도 바예호는 이번이 국내 첫 소개지만 남미의 대표적인 현대문학 작가라고 한다. 그래서 알아보니, 콜롬비아는 한국전쟁 참전국이었다. 1962년 우리와 수교가 이뤄졌고, 수교 60주년에 맞춰 다음 달 열리는 서울국제도서전의 주빈국이 콜롬비아다.

 '아워 레이디 오브 디 어쌔신스'(2000년)라는 영화로도 만들어진 소설은 콜롬비아에서 1994년 발표됐다. 마약왕 에스코바르 사망 직후, 여러 세대에 걸친 누적된 복수로 인해 살인이 일상화된, 그래서 배관공 공임보다 싼 가격에 청부 살인자를 구할 수 있고 그 희생자들의 피가 강을 이뤄 넘쳐 흐르는(아무래도 남미식 과장이겠다) 콜롬비아의 기막힌 현실을 그렸다.

 여러모로 작가 바예호를 연상시키는 소설의 화자 페르난도는 저명한 문헌학자. 수십 년 만에 귀국한 그는 십 대 소년 알렉시스를 돈으로 산다. 그런데 알렉시스가 청부 살인자다. 그러니까 소년은 몸도 팔고, 돈 받고 사람도 죽인다. 그리고 돈 안 받고도 죽인다. 안면방해하는 이웃을 두고 페르난도가 "죽여 버리고 싶다"고 험담하자, 실제로 며칠 후 이렇다 할 다른 이유 없이 이웃의 이마에 총알을 박아 넣는다.

 소설에 따르면, 이 나라의 죽음의 여신은 지독한 일벌레다. 주말이라고 쉬는 법이 없다. 성경의 소돔이나 고모라처럼 이 나라에 죄 없는 사람은 없다. 존재 자체가 죄가 되고 번식은 더 큰 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죽이거나 웃거나 섹스하거나 무엇보다도 계속 살아가는 건 부적절"하다. (133쪽) 합리적 관점에서 하나님조차 사악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번역자 송병선 교수는 소설이 상징적이라고 평했다. 읽기 쉬운 소설은 아니다. 밑줄 치며 읽었다. 하지만 막판 큰 반전에서 보상받았다. 콜롬비아에 대해 조금 알게 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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