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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인의 회고록은 백서 "지금은 기정학 시대..과학기술 중요"[BOOK]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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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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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성찰의 기록

김진현 지음
나남출판

그는 소위 ‘회고록주의자’다. 장관ㆍ총리 등 공인으로서 나라를 이끈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응당 회고록을 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가 말하는 회고록은 일종의 ‘백서’(白書)다. 공인으로서 경험했던 일들을 낱낱이 기록해, 후임자ㆍ후세들에게 교훈으로 남겨야 한다는 의미다.

그렇기에 자화자찬으로만 가득 찬 수많은 회고록은 그가 말한 회고록이 아니다. 아쉬움ㆍ실수ㆍ후회ㆍ반성 등도 적나라하게 구체적으로 적혀야 한다. 대형 사건·사고가 난 뒤에는 반드시 진실을 명명백백하게 밝히는 백서가 따라야 한다. 인생도 마찬가지이지만, 회고록을 쓰는 주체가 살아있는 자신이다 보니 차마 ‘백서’를 쓰지 못한다.

1986년 김수환 추기경을 인터뷰할 때의 모습. 왼쪽이 저자. [사진 나남출판]

1986년 김수환 추기경을 인터뷰할 때의 모습. 왼쪽이 저자. [사진 나남출판]

언론인 출신으로, 정부 각료와 대학 총장 등을 지낸 김진현(86) 전 과학기술처 장관이 회고록을 냈다. 그는 백서를 만드는 심정으로 회고록을 썼다고 말했다. 그래서 제목에 ‘성찰의 기록’이라는 표현을 넣었다. 600여쪽에 이르는 두꺼운 회고록은 저자가 일기처럼 평생 일지를 써온 덕분에 가능했다. 언론인과 장관ㆍ총장 등 공인으로 살았던 당시 특정 날짜의 구체적 사건과 함께 감상들이 날 것으로 살아있다. 그의 ‘연구실’은 책상이든 탁자든 온통 책과 서류뭉치로 뒤덮여 어지러울 정도다. 논설주간에서 장관으로, 대학 총장으로, 언론사 사장으로 자리를 옮길 때면 그의 평생 기록과 수집한 자료ㆍ책들이 덩치를 불려가며 함께 따라다닌다.

그의 회고록이 백서라면, 미ㆍ중 패권경쟁과 기정학(技政學)이 뜨거운 이슈로 떠오른 지금에 교훈 삼아야 할 것이 적지 않다. 그는 지론은 과학기술이 정치ㆍ경제에 앞선 상위개념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장관 시절 당시 노태우 대통령이 출연한 한국과학기자클럽 간담회는 그의 이런 노력의 일환이었다. 김 전 장관은 대통령 연설문 초고를 직접 썼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세계를 지배하는 원동력은 군사력이었으나 이제는 기술력으로 바뀌었습니다. … 이제부터는 과학기술의 발전이 주도하여야만 산업과 사회의 발전과 평화가 가능한 새 시대, 새 환경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이전에도 이후에도 지금까지도 과학기술 언론인 모임에 대통령이 나타난 경우는 없었다.

1992년 우리별 1호 발사를 위해 프랑스 파리에서 남미의 프랑스령 가이아나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오른쪽이 저자 [사진 나남출판]

1992년 우리별 1호 발사를 위해 프랑스 파리에서 남미의 프랑스령 가이아나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오른쪽이 저자 [사진 나남출판]

그는 동아일보 논설주간이던 1990년, 당시 대통령의 일방적 부름을 받고 과학기술처 장관에 오른다. 대학에서 이공계가 아닌 사회학을 전공했고, 관료 출신도 아니면서 그나마도 석ㆍ박사 학위도 없던 그가 어떻게 과기처 장관이 됐을까. 결정적 계기는 1990년 말 발생한 안면도 사태였다. 과학기술처가 안면도 일대에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을 신축하는 계획을 발표하자, 안면도에서 폭동 수준의 시위가 발생했다. 지역주민과 환경단체가 군청직원을 납치하고, 무기고를 방화하고, 소방차를 탈취했다. 며칠 뒤 동아일보에는 ‘안면도 민란-진실로 주민들의 행동이라 믿고 싶지 않다’라는 제목의 사설이 그의 손을 거쳐 나갔다. 안면도 사태로 곤경에 빠졌던 청와대는 평소 과학기술 정책에 관심 컸던 그에게 과기처 장관이란 SOS를 친 것이었다.

취재기자로서 그의 주 경력은 경제부처 출입이었지만, 당시에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발족 등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과학기술 분야에 관심을 가졌다. KIST 초대 소장을 맡았던 최형섭 과기처 장관(2대)의 회고록 『불이 꺼지지 않는 연구소』에 나오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가 창립멤버였던 활동했던 한국미래학회가 과학기술처의 용역을 받아 만든 ‘서기 2000년 프로젝트’도 경제 기자로서 그의 초점이 어디에 맞춰졌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김 전 장관은 "지금은 30년 전보다 과학기술이 더 중요한 기정학의 시대가 됐다”며 “부처를 넘어서 대통령이 직접 주재하는 과학기술 정책이 절실하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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