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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이해 키워드 30] <삼통(三統)해법> 꽉 막힌 한중관계 풀 묘수 ‘정통, 학통, 도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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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중국 민항기 한 대가 홀연히 한국 춘천시에 불시착했다.  

1983년 5월 5일, 중화인민공화국 민항총국 소속 호커 트라이던트 2E 여객기가 춘천시의 주한미군 육군 항공기지인 캠프 페이지(Camp Page)에 불시착했다. [사진 중앙포토]

1983년 5월 5일, 중화인민공화국 민항총국 소속 호커 트라이던트 2E 여객기가 춘천시의 주한미군 육군 항공기지인 캠프 페이지(Camp Page)에 불시착했다. [사진 중앙포토]

이 사건을 계기로 맺어진 한중 양국의 관계는 마치 ‘사랑의 불시착’처럼 위기와 타개를 거듭하며 드라마틱한 명장면을 거듭 연출해왔다.

1992년 한중수교 이후 걸어온 지난 30년, 관계로 말하자면 일면지교(一面之交)에서 막역지교(莫逆之交)로 두터워지고, 규모로 말하자면 2016년 양국 민간교류가 1000만명을 돌파하며 봄 동산 불 번지듯 확대됐다. 성화료원(星火燎原)의 신화를 써내려간 감격의 역사였다.

1992년 8월24일, 베이징 댜오위타이(釣魚臺) 국빈관에서 이상옥 외무장관과 첸지천 중국외교부장이 한중수교 공동성명서에 서명한뒤 이를 교환하고 악수를 나누고 있다. [사진 중앙포토]

1992년 8월24일, 베이징 댜오위타이(釣魚臺) 국빈관에서 이상옥 외무장관과 첸지천 중국외교부장이 한중수교 공동성명서에 서명한뒤 이를 교환하고 악수를 나누고 있다. [사진 중앙포토]

적어도 2017년 북핵 문제가 터지고 한국엔 사드, 중국선 한한령이 발동하기 전까지 양국 관계는 주변국의 시기와 질투를 자아낼 만큼 돈독한 사이였다. 그러나 2022년 수교 30주년을 맞는 오늘, 양국은 외교와 교류 면에서 답답한 상황이다. 통상적으론 썰물 때 갯벌이 드러나면 곧 밀물 때를 기대할 수 있으련만, 오늘 양국의 관계는 언제 물이 들어올지 몰라 손 놓고 태업하고 있는 어부들 모양새다.

마치 양국 사이에 거대한 장벽이 가로놓여진 것처럼, 오늘의 한중관계는 도처에 소통보다는 불통이 신뢰보다는 불신이 더 일상이 되고 있다. 소통이 희미해진 자리에 더 높이 솟아버린 불신의 장벽은 마치 중국 전국시대 사상가 순자(荀子)가 말했듯이, 사방이 꽉 막혀버린 폐색(蔽塞)의 형국과 유사하다. 상호 오해와 불신으로 막혀버린 오늘의 한중관계를 어디서부터 풀어나가야 할까?

막힌 곳을 뚫어야, 즉 ‘해폐(解蔽)’해야 천하가 살 수 있다.   

꽉 막힌 장벽을 어떻게 허물고 소원해진 한중관계를 재정립할 것인가?

과거 양국 전문가들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차례 외교적 해법과 정치적 묘수를 제시해왔다. 그러나 결과적으론 하나같이 가로놓인 장벽에 벽돌 하나 더 얹는 것처럼 답답함이 더 쌓여가는 것 같다. 어째서 형국은 장벽의 돌 하나 허물지 못하고 무력감에 빠져드는 것일까? 이러한 고뇌의 뒤채임은 비단 필자 한 사람만의 몫은 아닐 것이다.

순자는 꽉 막힌 당시 전국시대의 군상을 날카롭게 비평했다. 정치비평가의 눈으로 볼 때 저들은 사실 욕망에 눈이 멀지 않으면 시원(始原)의 프레임에 빠져 허우적대고, 원근(遠近)의 두 줄 타기로 균형을 잃거나 고금(古今)의 도그마에 갇혀 헤어나지 못하는 자들로 비춰졌다. 이를 현대적 어법으로 옮기면 세계는 이익추구란 국가지상주의, 근본주의에 기댄 신념체계, 들쑥날쑥한 이중적 외교술, 이데올로기의 대립구도 등에 가로막혀 꼼짝달싹 못 하는 무대로 그려진다.

오늘의 한중 관계도 이러한 폐색(蔽塞) 국면서 자유롭지 못하다.   

양국 사이로 길게 드리운 국가이익, 안보위협, 이념대립, 시각 차이 등의 장벽은 미중(美中) 대립과 코로나 팬데믹 시기를 거치며 해소되기는커녕 도리어 더 강고해진 느낌이다. 게다가 이 장벽을 북돋우는 양국의 포퓰리즘 정서는 사태의 해소를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한중관계 [사진 셔터스톡]

한중관계 [사진 셔터스톡]

이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이 거대 장벽을 지우고 어떻게 관계 개선을 이룰 것인가?

문제를 해결하려면 먼저 그 원인을 꼼꼼히 살펴보아야 한다. 장벽을 쌓아 올린 벽돌을 하나하나 분석하면 하나의 공통 질료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곧 정치질료를 말한다. 정치적 논리, 국가적 시각 그리고 군사안보로 대표되는 이 정치질료가 장벽의 주된 원인이다. 정치질료는 무소불위의 위력을 발휘하며 경제적 제재와 매스미디어 영역까지 장악해 간다. 키워드로 잡아보면 북핵이란 사태는 양국에 국가이익, 군사안보, 경제제재, 국민혐오 등을 생산하면서 마치 불길한 금융파생상품 폭발하듯 격변해갔다.

양국의 관계를 개선하려면 정치질료로 쌓아 올린 거대장벽을 허물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떤 지혜를 빌어 이 교착의 국면을 타개해 나갈 수 있을까? 그 지혜 역시 고대 유가(儒家)의 사상 전통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유가는 일찍이 ‘삼통(三統)’이란 세 사상 전통을 보여주었다. ‘삼통’은 곧 정치적 논리인 ‘정통(政統)’, 학술적 논장인 ‘학통(學統)’, 그리고 보편의 철학인 ‘도통(道統)’으로 구성된다. 층위로 보자면 정통이 가장 낮고 그 위에 학통이 있고 맨 위에 도통이 있다. 그러나 생산의 순서로 보면 반대로 도통이 설파된 후에 이를 해석하는 학통이 생기고 다시 이를 응용하는 정통이 구사된다.

‘삼통’의 눈으로 보면 오늘 교착국면의 주된 원인은 양국이 모두 정통(政統), 즉 정치적 논리와 해법에만 쏠려있는 데 있다. 정치논리로 막혀버린 국면을 다시 정치해법으로 풀려 하니 거대 장벽은 해소되지 않고 더 견고하게 굳어가는 것이다. 양국이 단순하게 국가안보와 국제질서에 대한 인식 차이를 확인하고 그 간격을 좁히거나 상호 양보하는 방식으로 사태가 해결될 수 있겠는가? 해법은 정치적 논리를 더 날카롭게 세우는 방향이 아니라, 정통을 벗어나 학통과 도통의 논장(論場)을 회복하는 방향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논리를 내세워 다스리는 것이 정통이라면 여러 목소리를 펼쳐놓고 듣는 것이 학통(學統)이다. 학통의 우월성은 초대받은 전문가들이 간섭받지 않고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론의 장이 확보되는 데 있다. 순자가 활약했던 전국시대, 제나라에 존재했던 직하학궁(稷下學宮)은 학통이 구현되었던 실제 사례였다. 당시 최고의 학자들은 직하학궁에 몰려들어 자신의 견해를 마음껏 유세했다. 제나라가 천하에서 인정받은 것은 패(霸)라고 하는 하드파워뿐 아니라 학통의 논장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중 양국은 무너진 학통의 장을 다시 확보하는 데로 방향의 전환을 꾀해야 한다.   

의심과 불신의 눈초리를 거두고 마음껏 자신의 견해를 말할 수 있는 독립된 담론의 장을 함께 열어야 한다. 어떠한 논박과 비판도 담담히 접수되고 용인되는 언론의 장 위에서 상호 소통의 공간은 다시 열릴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공자가 일찍이 말했던 다문궐의(多聞闕疑: 많이 듣되 의심나는 부분은 판단을 보류함)의 위대한 학통의 한 전통이다. 학통의 영감을 흠뻑 받는다면 꽉 막혔던 정통의 출로가 조금씩 눈에 들어올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면 다시 도통(道統)의 집에 모여 머리를 싸매고 인류 보편의 가치를 함께 논의하려 할 것이다. 이 집에선 아마도 한반도의 안위를 넘어선 동아시아 전체의 평화, 일개 국가의 핵심이익에 앞선 만국법의 설계 등이 허심탄회하게 논의될 수 있을 것이다. ‘학통’이 살아나고 ‘도통’이 숨 쉬게 된다면 시나브로 ‘정통’도 재정립될 날이 오고야 말 것이다. 한중수교 30주년을 맞는 동북아의 주인공들이 적어도 이 정도의 사유는 전개해야 하지 않겠는가?

임중이도원(任重而道遠: 책임은 막중한데 갈 길은 멀다)이라지만 한 발자국씩 앞으로 나아가는 양국의 지혜가 절실한 때이다.

글 강진석 한국외대 중국외교통상학부 교수 겸 국제지역대학원 중국학과 주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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