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사람 나이 80세에 늦둥이 4남매 봤다…총상 이긴 이들의 사랑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에버랜드 큰고니 부부인 날개(수컷, 왼쪽)와 낙동(암컷)이 늦둥이 새끼들과 물놀이를 하고 있다. 에버랜드

에버랜드 큰고니 부부인 날개(수컷, 왼쪽)와 낙동(암컷)이 늦둥이 새끼들과 물놀이를 하고 있다. 에버랜드

경기도 용인 에버랜드 동물원 버드 파라다이스에 경사가 났다. 큰고니(백조) 부부인 ‘날개(수컷)’와 ‘낙동(암컷)’ 사이에서 지난 22일 4마리의 새끼가 태어난 것이다. 2020년 5월 탄생한 첫째 미오(암컷·2)에 이은 두 번째 자연 번식 새끼들이다.

이들의 출산이 더 큰 화제가 된 건 부부의 나이 때문이다. 야생 큰고니의 평균 수명은 25년으로 날개와 낙동이는 그보다 더 오래산(27세로 추정) 장수 커플이다. 사람 나이로 따지면 80세 이상인 노인이 출산한 셈이라는 게 동물원 측의 설명이다. 김수원 사육사는 “2년 전 태어난 첫째 미오도 사람으로 치면 70세 이상인 할머니가 출산한 것이라 이들이 더는 새끼를 갖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4마리의 늦둥이가 태어나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총상 입고 요양 온 큰고니 부부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이자 천연기념물 제201-2호인 큰고니는 겨울 철새다. 겨울철만 우리나라에서 머물고 여름엔 러시아 북부의 툰드라와 시베리아 등에서 번식한다.

날개와 낙동이가 에버랜드로 이사를 오게 된 이유는 부상 때문이었다. 1996년 남양주시 와부읍 팔당리 인근에서 심하게 다친 채 함께 발견됐다. 총상이었다. 조류보호협회의 구조로 에버랜드 동물원으로 옮겨진 이들은 수의사와 사육사들의 극진한 보살핌으로 겨우 목숨을 구했다. 하지만 날개는 오른쪽 날개 일부를 절단해야 했다. 낙동이 역시 오랜 기간 치료를 받았다.

에버랜드 큰고니 부부인 날개(수컷, 왼쪽)와 낙동(암컷)이 늦둥이 새끼들과 물놀이를 하고 있다. 에버랜드

에버랜드 큰고니 부부인 날개(수컷, 왼쪽)와 낙동(암컷)이 늦둥이 새끼들과 물놀이를 하고 있다. 에버랜드

사육사들은 날개와 낙동이가 부부인 것으로 추정했다. 한 장소에서 발견되기도 했지만, 치료 기간에도 잠시 떨어지면 ‘꽥꽥’거리며 서로를 찾았다.

큰고니는 한 번 짝을 맺으면 평생을 함께하는 일부일처의 습성을 지녔다고 한다. 짝이 정해진 무리는 이방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더는 날 수 없는 날개와 다른 짝을 찾을 수 없는 낙동이는 결국 에버랜드에 터를 잡았다.

24시간 붙어 다니다 2년 전 미오 탄생

날개와 낙동이는 함께 먹고, 자고, 물놀이하며 24시간을 꼭 붙어서 지냈다. 얼굴을 비비는 등의 애정표현도 서슴지 않는다. 짝이 있어도 바람을 피우는 다른 일부일처 동물들과 달랐다. 사육사들 사이에서 “진정한 부부 금실의 상징은 원앙이 아니라 큰고니”라는 말이 돌 정도였다고 한다.

큰고니는 이른 봄 교미해 4~5월에 산란한다. 40일 정도 알을 품은 뒤 새끼를 부화한다. 하지만 총상 등으로 인한 스트레스 탓인지 큰고니 부부에겐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낙동이는 몇 차례 알을 낳긴 했지만, 부화시키지 못했다. 난임이었다.

애버랜드 큰고니 커플 날개(수컷)와 낙동(암컷)의 늦둥이 새끼들. 에버랜드

애버랜드 큰고니 커플 날개(수컷)와 낙동(암컷)의 늦둥이 새끼들. 에버랜드

에버랜드는 큰고니 부부가 2세를 가질 수 있도록 낙엽과 나뭇가지 등을 인근 야산에서 직접 공수하는 등 자연에 가까운 환경을 만들어줬다. 외부 접촉을 최소화하고 영양식을 공급했다. 20여년에 걸친 노력 끝에 태어난 새끼가 미오다.

첫째 독립하자 다시 ‘신혼 모드’

올해 3월, 성인이 된 미오가 다른 큰고니 무리로 독립했다. 우리에는 날개와 낙동이만 남았다. 노년인데도 사랑은 여전했다. 둘은 다시 신혼으로 돌아간 듯 시도 때도 없이 애정표현을 했다.

지난 4월 초 수상한 움직임이 포착됐다. 날개와 낙동이가 집 안에 둥지를 만들기 시작했다. 사육사들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둥지 재료를 우리 안에 넣었다. 고령인 나이를 고려해 채식으로 바꿨던 식단도 영양식으로 바꿨다.

애버랜드 큰고니 커플 날개(수컷)와 낙동(암컷)의 늦둥이 새끼들. 에버랜드

애버랜드 큰고니 커플 날개(수컷)와 낙동(암컷)의 늦둥이 새끼들. 에버랜드

4월 중순. 낙동이는 둥지 속에 알을 낳았다. 하지만 사육사들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과거처럼 무정란일 가능성이 있어서다. 김 사육사는 “무정란이면 낙동이가 먼저 포란(몸체를 이용해 알을 품는 것)을 포기하는데 20일이 지나도 알을 품고 있어서 유정란이라고 확신했다”고 말했다. 40일 뒤인 지난 22일 알에서 아기 큰고니 4마리가 부화했다.

늦둥이들에 대한 큰고니 부부의 애정은 강하다고 한다. 낙동이는 항상 새끼들을 품 안에 둔다. 날개는 사육사들이 밥을 주러 들어오거나 새끼들을 쳐다보기만 해도 크게 날갯짓을 하며 경계한다고 한다.

어른 주먹만 한 크기의 아기 큰고니들은 현재는 회갈색의 털을 가지고 있지만, 5~6개월 뒤에는 엄마·아빠처럼 화려한 흰색 털을 뽐낼 예정이다. 김 사육사는 “독립한 첫째 미오도 현재 다른 수컷 큰고니와 연애 중”이라며 “큰고니 가족들이 건강하게 잘 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