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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고정애의 시시각각

인사 검증 누가 해야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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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고정애 기자 중앙일보
고정애 논설위원

고정애 논설위원

윤석열 대통령의 집무실 책상에 놓인 명패 문구(‘The Buck Stops Here’,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는 원래 해리 트루먼 대통령의 좌우명이다. 트루먼은 1947년 일부 공직에 대한 충성심·보안 검증을 처음으로 지시한 대통령으로도 알려져 있다. 법무부가 자체 수사 인력으로 출범시킨 연방수사국(FBI)에 이를 맡겼다. 이를 공직 전반으로 확대한 건 후임자인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으로 1953년이었다(행정명령 제10450호). 누군가 FBI를 두고 “법무부(Department of Justice) 소속이지만 그 역사를 살펴보면 썩 정의(justice)로운 기관은 아니다”(『FBI 시크릿』)라고 했는데  실제 논란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도 대통령 지명직 등에 대한 검증은 FBI(security division)가 한다.

건국 이래 인사검증은 대통령실 몫 #법무부 이관은 권한 내려놓기 시도 #제대로 검증 못하면 대통령엔 부담

25일 윤석열 대통령의 용산 대통령실 집무실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윤 대통령에게 선물한 “The Buck Stops Here”(‘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는 뜻)가 적힌 탁상 푯말이 놓여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25일 윤석열 대통령의 용산 대통령실 집무실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윤 대통령에게 선물한 “The Buck Stops Here”(‘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는 뜻)가 적힌 탁상 푯말이 놓여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정부의 인사검증을 법무부가 하는 걸 두고 논란이다. 인사·범죄 정보를 다 가지게 되는데도 견제장치가 없고, 하필이면 장관이 윤 대통령의 측근인 한동훈 장관이라서다. 이른바 ‘검찰 공화국’ 우려다. 타당한 면이 있다.

 하지만 시야를 높일 필요가 있다. 먼저 대통령실이 검증을 전담하는 게 맞느냐는 질문부터 해야 한다. 미 백악관과 달리 우린 대통령실이 건국 이래 해 왔다. 근래엔 민정수석실이다. 윤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에 말했듯 “세평 검증을 위장해 국민 신상털기와 뒷조사를 벌여 왔다”는 논란을 낳곤 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우병우, 문재인 대통령의 조국처럼 대단한 권력자도 많았는데 ‘비서’란 이유로 국회에서 직접 추궁도 받지 않았다. 민정수석은 ‘제왕적 대통령제’를 가능케 한 기제 중 하나였다.

 또 다른 문제는 검증 정보가 정권 간 인수인계가 안 됐다는 점이다. 인사청문회가 국무위원으로 확대된 2005년 이래 비교적 체계적 검증이 이뤄졌는데 데이터베이스(DB)를 다음 정권에 넘겨주지 않았다. 청와대가 생산 주체이다 보니 민감 정보가 적지 않아서라고 한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이행기를 잘 아는 인사는 “DB를 넘기긴 했는데 민감한 정보는 지웠다”고 했다.

 이 때문인지 노무현 대통령 때인 2006년 청와대 밖에 상설 검증기구를 둘 수 있는 법안이 마련된 적이 있다. 당시 경찰청이 검증을 맡아야 한다고 주장한 데 비해 감사원은 “더 권력기관이 된다”고 반대했다고 한다. 노 대통령 자신은 국가청렴위를 염두에 두었다는데 이 역시 반론이 강했다. 진척은 안 됐다.

 물론 이관하더라도 장단(長短)은 있다. 일반 부처라면 이후 정권도 고려해야 하므로 정치적 편향성이 강한 정보를 생산하기 어려울 것이다. 대신 축적은 용이할 것이다. 반면에 “고급 정보와 자료가 축적되면 대통령도 어찌 해보지 못하는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는 국내 최고의 권력기관이 될 것”(황성돈 한국외대 교수)이란 우려도 있을 수 있다. 8명의 대통령을 쥐락펴락했다는 FBI의 에드거 후버 국장이 그 예겠다. 48년간 수장(首長)이었기에 가능했겠지만 말이다.

 보다 근본적인 의문은 ‘공직 후보자의 개인정보를 충분히 그리고 정확하게 확보함으로써 대통령의 인사가 원만히 이뤄지도록 한다’는 목표를 제대로 해내겠느냐는 점이다. “그 어떤 기관도 인사검증과 관련된 자료를 청와대 외에 다른 기관이 요구해 봐야 이에 잘 응하지 않는다는 현실적 애로”(2009년 김진수·박천오 논문)가 있을 수 있어서다. 더욱이 우리는 미국과 달리 도덕성 위주의 청문회를 한다. 매번 논란이 되는 이슈가 달라져 검증이 따라가기도 버거울 정도다. 욕을 안 먹는 게 아니라 덜 먹길 바랄 수밖에 없는 구조다.

 결국 대통령의 권한을 덜어낸다는 이상과 한국적 현실 사이에서 윤 대통령은 건국 이래 처음으로 검증 권한을 법무부로 이관하는 선택을 했다. 여러 조건상 법무부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법무부가 해낼까. 글쎄다. 한 장관의 존재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어떠하든 윤 대통령에겐 ‘The Buck Stops Here’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