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서경호의 직격인터뷰

자가주거비·공공요금 반영하면 실제 물가 상승 7%대

중앙일보

입력 2022.05.27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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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서경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 실증데이터로 보여준 장용성 서울대 교수

서경호 논설위원

서경호 논설위원

경기 침체와 인플레이션이 동시에 발생하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만 해도 ‘설마’ 수준의 걱정이었는데, 올해 들어서 물가와 성장률 통계가 하나둘씩 나오면서 ‘이러다가’ 진짜 올지도, 혹은 사실상 이미 왔을지도 모른다는 ‘S의 공포’가 시장을 짓누른다. 지난달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월 전망보다 0.5%포인트 낮춘 2.5%로,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0.9%포인트나 올린 4%로 내다봤다. 어찌 됐건 고물가·저성장의 힘든 시기를 견뎌야 한다.

지난 2월 한국경제학회의 ‘2022 경제학 공동학술대회’에서 ‘생산, 고용, 물가 관계의 변화’라는 건조한 제목의 논문이 주목받았다. 장용성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가 대학원생 제자 두 명과 쓴 글인데, ‘스태그플레이션이 온다’는 제목으로 기사화됐다. 장 교수를 24일 줌(Zoom)으로, 25일엔 서울대 연구실에서 만났다.

OECD 잘 사는 나라 대부분 반영하는 자가주거비 우리 물가엔 불포함
전기요금 등 공공요금 인상 억제 … 물가에 시장 상황 제대로 반영 안돼
2000년 이후 한국 필립스곡선 우상향, 고물가와 경기 침체 같이 올 수도
정부가 내세우는 공정·능력주의 제대로 하면 경제 성장에도 도움 될 것
25일 서울대 연구실에서 인터뷰한 장용성 교수는 “이제까지 거시경제를 가르치면서 인플레이션을 간략하게 가르쳤는데 앞으로는 자세히 다뤄야겠다”고 말했다. 최근 30년간 공급망 교란이 없었던데다 세계의 공장인 중국 덕분에 세계 경제는 인플레이션 걱정 없이 지냈다. 돈을 아무리 풀어도 괜찮다는 현대화폐이론(MMT)도 이런 환경에서 나왔다. 이제 경제학계는 다시 인플레이션과 고통스럽게 씨름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25일 서울대 연구실에서 인터뷰한 장용성 교수는 “이제까지 거시경제를 가르치면서 인플레이션을 간략하게 가르쳤는데 앞으로는 자세히 다뤄야겠다”고 말했다. 최근 30년간 공급망 교란이 없었던데다 세계의 공장인 중국 덕분에 세계 경제는 인플레이션 걱정 없이 지냈다. 돈을 아무리 풀어도 괜찮다는 현대화폐이론(MMT)도 이런 환경에서 나왔다. 이제 경제학계는 다시 인플레이션과 고통스럽게 씨름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논문이 어떤 내용인가.
“한국과 미국 자료를 이용해 실업률과 물가상승률 간의 관계를 보니, 한국은 2000년 이후, 미국은 2010년 이후 필립스 곡선의 기울기가 역전돼 우상향하는 모습을 보였다.”

필립스 곡선은 영국 경제학자 필립스가 찾아낸 실증 법칙이다. 물가상승률과 실업률의 역관계를 경험적으로 보여준다. 물가를 낮추려면 실업률의 증가(경기 침체)를 감내해야 하고, 반대로 실업률을 줄이려면(경제 성장) 인플레이션을 감수해야 한다는 정책적 함의가 있다. 곡선의 모양은 음(-)의 기울기, 즉 우하향하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1970년대 말 오일 쇼크 때는 고물가에 실업이 늘어나서, 즉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하는 바람에 필립스 곡선이 우상향하는 이상한 모양새가 됐다. 이게 바로 고물가와 경기 침체가 동시에 덮치는 스태그플레이션이다.

우상향하는 필립스 곡선의 의미는.
“실업과 물가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 가능성과, 반대로 두 가지 목표 중 어느 하나도 달성하지 못할 가능성을 함께 시사한다. 지금의 고물가 상황을 보면 물론 후자다. 코로나19 이후에도 필립스 곡선의 역전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면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이 있다.”
물가 상승세는 한동안 이어질 것 같다.
“더 중요한 문제는 우리 물가지수가 저평가됐다는 점이다. 지난 3월 기준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미국이 8.5%(4월 8.3%), 유로존은 7.4%(4월 7.4%)인 데 비해 한국은 4.1%(4월 4.8%)다. 우리가 비교적 선방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우리 물가에는 자가 주거비가 포함돼 있지 않다. 소비자물가지수에 자가 주거비 비중을 포함해 집값과 전·월세 상승을 반영하면 공식 지표보다 인플레이션율이 최대 2%포인트까지 더 오른다.”

물가 선방? 인플레 위협 다른 나라와 비슷

정부가 전기요금 등 공공요금 인상도 억제하고 있다.
“공기업 적자는 결국 국민이 미래에 부담해야 할 세금이다. 한국전력과 한국가스공사의 영업손실을 보전할 만큼 전기료와 도시가스 요금을 바로 인상하면 물가상승률은 추가로 1%포인트가량 올라간다. 자가 주거비와 공공요금을 제대로 반영하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공식통계보다 훨씬 높은 7%대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가 선방한 것이 아니라 인플레이션 위협이 다른 나라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얘기다.”
물가 부담이 낮아지는 4분기 이후 공공요금을 올리면 안 되나.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물가지수는 정부 정책과 민간의 경제활동에 기준이 되는 중요지표다. 시장 상황을 잘 반영해야 한다. 정부의 물가관리 탓에 얼마나 비용을 부담하는지는 알아야 한다. 자가 주거비의 경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잘사는 나라는 대부분 반영한다. 우리도 참고지표라도 활용하는 게 옳다.”

외환위기·금융위기 때와는 달라

환율은 오르고 무역적자도 커졌다. 반면, 위기에 대처할 수 있는 정부의 재정 여건은 나빠졌다. 외환위기·금융위기보다 더 걱정이라는 반응도 있다. 외환위기 때는 신흥국만 힘들었지만 지금은 전 세계가 어렵고, 금융위기 때는 그래도 물가 걱정은 없었다. 다시 경제 위기가 오나.
“동의하지 않는다. 외환위기 때처럼 은행이 무너지고 금융시스템이 흔들리는 것도 아니다. 안전자산인 달러 선호 현상 때문에 원·달러 환율이 올랐지만 금융위기 때처럼 달러 가뭄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한·미 통화 스와프가 필요한 단계는 아니다.”
고용과 생산(경제성장률)의 관계도 분석했던데.
“미국에서 1990년 이후 ‘고용 없는 경기회복(Jobless Recovery)’ 양상이 두드러졌다. 정형화된 루틴한 일자리를 자동화 기계가 대체했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도 1990년대 이후 경기 회복 국면에서 고용이 함께 회복되지 않는 모습이다. 특이한 건, 미국에 비해 한국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고용과 실업의 변동성이 매우 작다는 점이다. 미국의 4분의 1 수준이다. 호황이든 불황이든 우리 실업률은 대체로 3~5%로 변화가 크지 않다.”

한국 노동시장 경직 … 불황의 청소효과 없어

왜 그런가.
“정부가 고용정책을 잘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노동시장의 경직성이 더 큰 이유라고 본다. 이혼을 절대로 못 하게 하면 결혼도 안 한다. 고용도 마찬가지다. 한국과 미국의 경기순환도 차이가 있다. 1970년 이후 평균 불황기간이 미국은 12개월, 한국은 18개월인데, 평균 호황기간은 미국 65개월, 한국 33개월이다. 미국보다 한국의 불황이 길고 호황이 짧은 건, 구조조정을 제대로 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불황의 청소효과라고 할 수 있다. 망할 기업은 망해야 인력과 자본 등의 자원이 더 생산성 높은 곳으로 갈 수 있다.”

장 교수는 특이하게도 서울대 교수로 2004년과 2018년 두 번 부임했다. 미국 로체스터대에서 경제학박사 학위를 받고 펜실베이니아대 교수를 하다 2003~2004년 미국 리치먼드연방은행 선임 경제학자로 일했다. 2004년 모교인 서울대 경제학부 부교수로 돌아왔다가 2007년 로체스터대 교수로 떠났다. 그즈음 몇 년간 장 교수를 비롯해 서울대 경제학부의 젊은 교수들이 영예롭다는 서울대 교수 자리를 잇달아 박차고 떠나자 서울대 연구 풍토에 뭔가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다. 장 교수는 “개인적인 사정”이라고 말을 아끼면서도 연구업적 평가의 문제를 지적했다.

“노벨상 학자도 한국 대학 재임용 힘들어”

“한국 대학은 창조적 연구를 적극적으로 장려하지 않는 것 같다. 과학논문 인용색인(SCI)나 사회과학논문 인용색인(SSCI) 등 국제 학술지에 게재된 논문 숫자를 중시한다. 노벨상 받은 학자도 한국 대학에선 재임용 못될 것이라는 자조적인 농담이 나올 정도다. 논문 숫자를 채우기 위해 좋은 연구를 서둘러 마무리하고 게재하기 쉬운 학술지에 논문을 보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지식의 상품화와 기업의 연구개발(R&D) 투자가 경제 성장의 원동력임을 보여준 내생적 경제성장 모형으로 2018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폴 로머도 한때 로체스터대에서 임용 후 3년간 논문을 한 편밖에 못써 재임용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2년 뒤 ‘홈런’을 쳤다. 영화 ‘뷰티풀 마인드’의 주인공이자 비협조적 게임이론으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존 내시가 한평생 쓴 경제학 논문은 3편뿐이다. 홈런을 치려면 삼진을 많이 당할 수밖에 없다.”

미국 지역연방은행에서 일했다. 미국 경제는 어떤가.
“한국보다 고용시장이 좋아 기준금리 인상 여력이 더 있다고 봤다. 주택 경기와 장단기 금리 차를 눈여겨보는데 최근에 선행지수 역할을 하는 주택경기가 꺾이고 있다. 기업의 구인난이 사라졌고 기업 실적도 나빠졌다. 이제까지 주택 경기가 침체하면 거의 불황으로 이어졌다.”
뉴딜 정책의 절반은 실패했다고 지적한 적이 있다.
“테네시강 유역 토목공사로 대표되는 확대 재정정책이 뉴딜의 상징처럼 많이 알려졌는데 실제로 이에 대한 평가는 인색하다. 저임금·미숙련 일자리만 늘렸기 때문이다. 오히려 독과점 기업과 노조의 이해를 대변하는 뉴딜 초기의 정책 오류를 폐기하고 시장 경쟁과 노동시장 유연성을 높이는 쪽으로 정책을 바꾼 덕분에 경제 체질이 개선되고 대공황 극복에 크게 기여했다는 게 최근의 평가다. 위기 대응을 위해 재정을 늘리더라도 미리 충분히 논의되지 않은 새로운 사업을 하는 것보다 이미 계획된 사업을 앞당겨 실시하는 게 좋다. 경제 불황이 정부 몸집을 불리는 계기가 돼서는 안 된다.”

혈연·지연·학연  깨야 생산성 높아져  

한국 경제의 진짜 성장 능력을 보여주는 장기성장률이 1990년대 초 이후 5년마다 1%포인트씩 하락해왔다는 연구(서울대 김세직 교수)가 있다. 예전에 인적자원의 재배치(sorting)가 생산성을 높인다는 주장을 폈는데.
“한국처럼 연공서열을 중시하거나 혈연·지연·학연 등 능력 이외의 요인을 따지는 사회는 인적자원의 재배치가 더디고 결국 생산성을 떨어뜨린다. 우리 경제가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전환하려면 혈연·지연·학연과 성별을 이유로 재능 있는 사람을 배제하지는 않는지 살펴야 한다. 공정과 능력주의를 내세우는 윤석열 정부가 그 일을 제대로 한다면 경제 성장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장용성 서울대 교수
1966년생. 서울대 경제학과 85학번. 미국 로체스터대 경제학 박사. 미국 리치먼드연방은행에서 선임 이코노미스트를 지냈다. 이질적 경제주체로 이뤄진 일반균형 거시모형 개발·응용으로 유명하다. 2011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토머스 사전트 뉴욕대 교수가 자신의 대학원 교과서에 장 교수와 김선빈 연세대 교수와의 공동 연구를 소개할 정도다. 지난해 다산경제학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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