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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한동훈의 보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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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허진 기자 중앙일보 기자
허진 정치팀 기자

허진 정치팀 기자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검찰 내부에서 ‘천재’라는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수재 집단에서도 수준급 실력을 보여 얻은 수식어다. 윤석열 대통령의 당선을 예측한 관상 전문가는 한 장관을 “천재 관상인 원숭이상”이라고 풀이한다. 지난 17일엔 취임식에 맞춰 ‘얼굴 천재 한동훈 장관님 사랑합니다’라는 꽃바구니가 배달됐다. 평범한 사람은 하나도 얻기 힘든데, 그는 쌍(雙)천재 소리를 듣고 있다.

권력과 싸우다 핍박받던 준수한 외모의 엘리트 검사가 윤석열 정부의 ‘소통령’으로 화려하게 부활하자 그는 단숨에 최고의 뉴스메이커가 됐다. 한 언론사의 디지털콘텐트 담당자는 “한동훈을 다루면 조회수가 폭발한다”며 혀를 내두른다. 그가 지난 9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거대 야당의 역대급 똥볼까지 끌어내자 팬들은 열광했다. 동영상 조회수가 100만이 넘은 한 장관의 취임식을 보고 여권 인사는 “대관식을 보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한 장관은 그렇듯 이미 차기 대선 잠룡의 반열에 올랐다.

지난 17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취임식 모습. 그는 ‘정의(Justice)’를 강조했다. [뉴스1]

지난 17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취임식 모습. 그는 ‘정의(Justice)’를 강조했다. [뉴스1]

그러나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지는 법. 그는 청문회에서 범실을 저질렀다. 야구로 치면 보크였다. 투수가 규칙에 어긋나는 투구 동작을 하는, 페어플레이에 어긋나는 행위 말이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한국쓰리엠’ ‘이모’와 같은 삼류에도 끼지 못할 실책을 범해서 가려졌지만 그 실책은 컸다. 이유는 간단하다. ‘에이스’답지 못했다. 한 장관은 딸의 스펙 부풀리기 의혹이 불거지자 적극적으로 방어했다. 부모라면 누구나 했을 법한 행동이다. 그러나 그는 장관, 더군다나 영문명이 ‘Justice’인 부처의 장관이다. 자신도 취임사에서 이를 언급하며 “항상 시스템 안에서 ‘정의(Justice)’에 이르는 길을 찾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게다가 그는 ‘인사 검증’까지 맡는 윤석열 정부의 황태자 아닌가.

그러니 한번 생각해 봤어야 한다. 부모의 조력에 의해 만들어지는 허울 좋은 스펙이 정의에 부합하는지 말이다. 수준 낮은 야당 덕에 우리 사회에서 가짜 스펙이 어떻게 쌓이고 어떻게 활용되는지 제대로 파헤칠 기회가 사라졌지만, 있던 일이 없던 일이 되는 건 아니다. 혹자는 “강남에서는 누구나 그렇게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장관은 누구나 하는 자리가 아니다. 우리 교육도 항상 (올바른) 시스템 안에서 정의에 이르는 길을 찾아가야 한다.

에이스라면 결정적 순간에 보크를 범한 뒤 모자를 벗고 고개를 숙여 사과했을 것이다. 그런 에이스에게 팬들은 야유가 아닌 박수로 응원한다. 그게 진정한 에이스다. 우리는 이미 과거에 ‘쌍천재’ 법무부 장관을 경험했다. 천재와 정의의 수호는 관계없다는 게 역사적 경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