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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워킹맘이 편안하게 돌봄체계 개선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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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윤진 서원대 사회복지학부 교수

이윤진 서원대 사회복지학부 교수

학부모인 필자가 얼마 전 직접 겪었던 일이다. 초등 돌봄교실 신청 시기를 놓쳐 애태우던 중 방과후학교를 4월부터 겨우 시작하게 됐다. 시작 첫날 학교에 전화를 걸어 어떻게 교실로 이동하고 귀가하는지 물어봤다. “그건 제 업무가 아니어서 잘 모릅니다. 업체에 문의해 보세요”라는 건조한 대답만 들었다.

그 와중에 일이 터졌다. 방과후교사에게서 “제 실수로 아이의 동선을 놓쳐 귀가 확인이 안 된다”며 청천벽력 같은 말을 전했다. 수업 후 행정처리 업무 중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고 한다. 다행히 아이는 탈 없이 집에 왔지만 ‘초등돌봄 체계 대전환’이 시급한 이유를 절감했다.

문재인 정부 돌봄 제도 효과 작아
윤 정부 ‘한국형 전일제 학교’ 기대

통계청에 따르면 여성의 경력단절 사유 중 육아로 인한 경력단절은 지난해 43.2%로 2016년보다 10%포인트 이상 증가했다. 2016년 이후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미취학 자녀에 대한 통계 자료이긴 하지만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한다고 경력단절이 바로 극복되지는 않을 것이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돌봄 공백으로 일을 그만두는 워킹맘들이 경력단절로 이어지는 문제는 이전에도 발표됐다. 저출산을 극복하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모든 연령층의 아동들에 대한 체계적이고 알뜰살뜰한 보살핌이다. ‘내 아이 낳아 키울만하다’고 느낄 때 출산이 두렵지 않은 사회가 된다고 확신한다. 키울만하다는 것은 양육에 드는 비용을 각 가정에서 보전할 수 있고, 일하면서도 아이를 키우기에 충분하다는 것일 테다.

지금 초등학교에서 운영하는 공적 돌봄체계는 초등돌봄교실과 방과후학교, 방과후학교 연계형 (틈새)돌봄으로 구성된다. 여기에다 지역사회에서 운영하는 다함께돌봄센터와 지역아동센터, 청소년 방과후 아카데미 등도 있다.

프로그램마다 관할 부처가 교육부·보건복지부·여성가족부로 흩어져 있다 보니 이에 따른 혼선도 적지 않다. 앞서 문재인 정부는 지역사회 돌봄 체계를 강화했으나 접근성 제약, 공간 부족, 수요 불균형 등으로 정책 효과가 미미했다. 학교 내 공적 돌봄을 강화해야 하는 이유다.

우선 자녀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돌봄교실에 선착순으로 신청할 수 있는데 대부분 오후 5시께 종료하다 보니 결국 워킹맘의 퇴근 시간과 맞지 않아 이용을 고민하게 된다. 게다가 대부분 학교에서는 해당 시간 동안 아무런 프로그램도 없다. 교실 이외의 공간에는 나갈 수 없기 때문에 ‘내 아이가 과연 그 시간 동안 간식도 못 먹고 뭘 하고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가시지 않는다.

지난해 ‘범정부 온종일돌봄 수요 조사’에 따르면 45.2%가 초등돌봄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시간 연장(31.6%), 서비스 내용 및 질 강화(32.3%)를 바라는 목소리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여건으로는 돌봄 인력 제공도, 공간 제공도 여의치 않은 실정이다. 결국 각자도생하거나 각자 형편 닿는 대로 하라고 사실상 강제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조부모에 맡기지 않으면, 육아 도우미를 고용하지 않으면, 사교육에 기대지 않으면 엄마가 일 할 경우 아이는 방치되기에 십상이다.

초등 사회적 돌봄 체계 안착이 절실한 상황에서 윤석열 정부의 복지정책 밑그림이 발표됐다. 아동복지 영역에서 ‘한국형 전일제 학교’ 도입 정책이 눈에 띈다. 전일제 학교 도입으로 초등돌봄 시스템을 일원화하고 학교와 지역사회가 함께 책임을 분담해 안전하고 내실 있는 제도로 자리 잡아야 할 것이다.

국가가 책임지는 공교육 영역으로 초등 돌봄을 확대해 워킹맘이 사교육의 바다에서 헤매지 않고도 마음 놓고 일과 육아를 함께할 수 있는 안전하고도 든든한 시스템이 간절하다. 당장 현금을 손에 쥐여주는 것보다 더 시급하다. 한국형 전일제 학교가 새로 출범한 정부에서 성공적인 돌봄 정책으로 조기에 자리 잡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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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진 서원대 사회복지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