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안산시에서 전자부품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박모씨는 최근 불어나는 빚 걱정에 밤잠을 설치고 있다. 2019년 공장 설비를 늘리기 위해 은행에서 무리하게 대출을 받은 게 화근이었다. 코로나19 여파로 매출도 뚝 떨어졌는데, 설상가상으로 납품하던 대기업이 공장을 해외로 이전해 하청 물량도 끊기며 적자 행진이 시작됐다. 그는 “연 매출이 70억원까지 나오던 시절도 있었는데, 이제는 대출 이자도 못 갚을 정도”라며 “코로나19 대출 원금 상환 및 이자 유예조치가 끊기면 공장을 닫고 길거리에 나앉아야 할 판”이라고 토로했다.
대출금리가 가파르게 오르며 중소기업이 짊어진 ‘빚 폭탄’도 커지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 등 방역정책 완화에도 빚을 내 버텨야 할 만큼 경기 회복은 더디다. 한국은행이 26일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하며 대출금리는 더 뛸 전망이다. 빚으로 버티는 중소기업이 ‘이자 폭탄’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가 더욱 커지고 있다.
은행권의 중소기업 대출 잔액은 500조원을 코앞에 두고 있다. 지난 23일 기준 4대 시중은행(국민·신한·하나·우리)의 중소기업 대출 잔액은 496조6700억원이다. 지난해 1월 말(427조1900억원)보다 16% 늘었다.
한 시중은행의 기업 대출 담당자는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생산비가 늘면서 직원 월급조차 주지 못해 은행을 찾는 기업이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은행의 기업금융 담당자는 “최근 마이너스통장 개설 등을 문의하는 부품업체 등이 많아졌다”며 “이런 업체 대부분이 지난해 코로나19 여파로 소득신고조차 제대로 하지 못해 대출이 거절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회사채 금리가 뛰면서 시장을 통한 자금조달 통로가 막힌 것도 기업의 은행 대출 증가의 또 다른 이유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신용등급 AA-급 우량기업의 3년 만기 회사채 금리는 지난 25일 3.717%를 기록해 지난해 말(2.415%)보다 1.3%포인트 올랐다. 같은 날 투자등급 중 가장 낮은 BBB- 등급의 금리(3년물)도 연초(8.271%)보다 0.85%포인트 오른 9.570%로 올라서며 9%대를 돌파했다.
돈을 빌릴 곳이 마땅치 않은 기업들이 저축은행과 대부업으로 밀려나면서 대출 ‘풍선효과’도 나타나고 있다. 대형 저축은행 관계자는 “과거엔 신용도 낮은 기업이 많았다면 요즘은 신용도는 좋은데 시중은행 대출 한도가 꽉 차서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빚으로 버티는 기업은 금리 상승의 직격탄을 맞을 가능성이 크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3월 중소기업의 평균 대출금리는 연 3.57%로 지난해 연중 최저점(2021년 4월, 연 2.82%)과 비교해 1년여 만에 0.75%포인트 뛰었다.
더 큰 문제는 대출금리 상승으로 빚 부담이 커지며 돈을 벌어 대출금 이자조차 갚지 못하는 좀비 기업이 늘어나는 것이다. 지난해 코스닥에 상장한 중소기업(총자산 5000억원 이하·1275개 기업) 중 돈을 벌어 이자도 못 갚는 ‘한계 기업’은 39.1%(498곳)로 나타났다.
김동헌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더는 소상공인 부채와 관련된 논의를 미뤄선 안 된다”며 “기업의 부채와 관련된 출구전략과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겠다는 신호를 시장에 줘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