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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세권·1층 상가 큰 매력 없다"…코로나가 바꾼 상권 지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6일 오후 5시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있는 한 족발집. 지하 1~지상 1층까지 2개 층 규모인 이 가게 지상 1층에는 100여 개의 포장용 봉투가 즐비했다. 오후 영업이 시작되는 5시부터 쏟아지는 배달 주문에 대응하기 위해 준비해둔 물량이다. 삼삼오오 식사하려는 손님들이 몰려오자 지하 1층으로 안내했다. 지상 1층은 배달을 위한 전용공간이라서다. 이 가게 아르바이트생인 서모씨는 “지하 1층에서 배달 준비를 하면 배달기사가 음식을 빠르게 가져가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서 지상 1층을 배달 전용 공간으로 쓰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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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권이 달라지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소비 트렌드가 ‘오프라인→온라인’으로 바뀌면서 외식업 중심의 주요 상권도 ‘방문 고객→배달(포장) 고객’ 중심으로 달라진 영향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외식업체의 배달 앱(애플리케이션) 이용 비중은 2017년 6.2%에서 지난해 29.5%로 뛰었다. 월 매출이 100만원이라면 배달 앱으로 벌어들이는 매출이 6만2000원에서 29만5000원으로 늘었다는 의미다. 업종별로는 치킨(85.7%)이나 피자(69%)뿐 아니라 일식(55.4%), 서양식(52.3%)도 배달 앱 이용 비중이 커졌다.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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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배달 앱인 배달의 민족 거래액은 2016년 1조8000억원에서 2020년 15조7000억으로, 6년 새 9배 가까이 급증했다. 지난 1월 배민 이용 음식점주의 월매출은 2년 전보다 30%, 주문건수는 20% 이상 늘었다. 최화준 아주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이전의 아르바이트생을 통한 전단지·책자 배포 같은 주먹구구식 광고가 아니라 배달 앱을 통한 효율적 관리도 모객이나 변동 비용 감소의 효과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는 상권 지각 변동을 일으키고 있다. 그간 상가시장에서 로열층은 단연 1층이었다. 눈에 잘 띄고 드나들기 편해 고객의 발길을 끌기 좋아서다. 그만큼 임대료도 비쌌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모임이나 외출이 어려워지면서 방문 고객이 확 줄고 배달 고객 비중이 커지자 1층의 가시성이나 유동성 매력이 떨어졌다.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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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공간 필요 없어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 1분기 전국 소규모 상가(연면적 330㎡ 미만 2층 이하) 1층의 월평균 월세는 ㎡당 1만9400원으로, 2층(1만100원)보다 92% 비싸다. 코로나19 발생 초기인 2020년 1분기만 해도 1층 월세(1만9900원)는 2층(1만원)보다 99% 비쌌다.

선호하는 매장 크기도 작아지고 있다. 방문 고객이 줄어들면서 굳이 넓은 공간이 필요하지 않아서다. 이 때문에 중대형 상가 월세 하락세가 소규모 상가보다 가파르다. 소규모 상가의 전국 평균 월세는 2019년 ㎡당 2만400원에서 지난 1분기 1만9400원으로 떨어졌다. 2년간 4% 감소했다. 반면 중대형 상가(연면적 330㎡ 이상이거나 3층 이상) 월세는 같은 기간 2만8000원에서 2만5500원으로, 8% 하락했다.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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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예 방문 고객을 위한 공간을 없애고 배달 고객만을 위한 매장도 늘었다. 빕스는 2019년 배달 전용 매장이 한 곳도 없었지만, 현재 27곳이다. 아웃백 스테이크 하우스도 2019년 4곳에 불과했던 배달 전용 매장이 지난해 40곳으로 크게 늘었다. 전체 매장의 51% 수준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공유 주방(Shared Kitchen)까지 생겼다. 하나의 주방에 여러 음식점이 입점하는 형태다. 이곳에선 배달 음식만 만든다. 외식업계에선 국내 공유주방 시장 규모가 2019년 1조원에서 지난해 2조5000억원으로 성장했다고 본다.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에서  타코 가게를 운영하는 이모(48)씨는 “이전에는 사람이 많이 몰리는 역세권이나 1층을 찾았는데 지금은 눈에 띄지 않는 좁은 골목이어도 오토바이만 들어올 수 있으면 매출에 큰 상관 없다”며 “월세 부담을 줄일 수 있는 것도 장점”이라고 말했다.

배달 고객만을 위한 매장도 속속 

주요 상권 지도도 바뀌고 있다. 서울에서 그간 인기 상권으로 꼽혔던 곳은 업무시설이나 유동인구가 몰렸던 강남‧잠실‧광화문 등이다. 최근엔 이들 상권보다 주거시설이 모여 있는 동네 상권이 부상하고 있다. 모임이 어렵고 재택근무가 활성화하면서 집 근처에서 대부분의 소비가 이뤄진 영향이다.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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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서울 도심 상권(광화문‧남대문‧동대문‧명동‧시청‧을지로) 평균 월세는 2020년 1분기 ㎡당 7만5000원에서 지난 1분기 7만100원으로, 6% 하락했다. 논현역이나 신사역 상권도 각각 7%, 10% 월세가 떨어졌다. 주거시설밀집지역인 상계역 상권 평균 월세는 같은 기간 3% 올라 ㎡당 2만6300원이다. 주거지역을 끼고 있는 숙명여대 상권 월세도 15% 올랐다.

전문가들은 외식업 창업을 준비하고 있다면 메뉴를 고를 때 음식 맛뿐 아니라 조리시간을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배달 고객의 경우 주문 후 맛을 보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배달을 고려해 매장 인테리어만큼 음식 사진이나 포장에 신경 써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서용희 한국외식산업연구원 수석연구원은 "누구도 코로나19의 종식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코로나19 이후 방문 고객보다 배달 고객 서비스에 집중한 업체의 고객 감소율이 낮은 만큼 정부와 민간이 다각적인 노력으로 위기를 돌파해야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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