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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침묵의 교란술’…전략무기 공격력, 이젠 숨길 단계 왔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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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지난달 25일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주년을 기념에 진행한 열병식에서 공개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의 모습. 노동신문, 뉴스1

북한이 지난달 25일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주년을 기념에 진행한 열병식에서 공개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의 모습. 노동신문, 뉴스1

북한 관영 매체들은 26일 전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1발과 단거리탄도미사일(SRBM) 2발을 시험 발사한 사실을 보도하지 않았다.

북한은 그간 미사일을 쏘면 다음날 발사 사실을 공개하며 한국과 미국을 비롯한 주변국들을 위협했다. 그런데 최근엔 이같은 '보도 관행' 대신 비공개로 일관하고 있다. 5월 들어서만 벌써 4번째다.

북한은 26일 오후 5시까지 전날 쐈던 미사일 관련 보도를 내놓지 않고 있다. 노동신문은 이날 1면을 코로나19 극복을 독려하는 사설과 분야별 경제 활동을 소개하는 내용으로 채웠다.

北 도발 후 침묵은 새로운 패턴

전문가들은 북한의 이런 침묵 행보와 관련해 국방력을 강화해 '내 갈 길 가겠다'는 의사를 강력히 표시했다는 분석을 내놨다.

북한이 2016년 3월 핵탄두 소형화 성공을 주장하며 공개한 기폭장치 추정 물체를 바라보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모습. 노동신문, 뉴스1

북한이 2016년 3월 핵탄두 소형화 성공을 주장하며 공개한 기폭장치 추정 물체를 바라보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모습. 노동신문, 뉴스1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한의 핵교리가 선제공격을 할 수 있다는 방향으로 전환하고 있다"며 "군사 기밀에 속하는 신형 전략무기의 제원을 굳이 알릴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

북한은 한·미를 향한 위협 차원에서 미사일이나 신형무기 시험 발사 내용을 발표해 왔는데 이젠 자신들의 핵 능력, 미사일 공격력을 노출할 수 있는 세부 제원을 더는 공개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박용한 한국국방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북한은 최근 미사일 발사 정황을 드러내면서도 결과에 대한 언급을 자제하는 모습"이라며 "이런 '전략적 모호성'을 극대화하면서 한·미 당국의 탐지 능력이나 대응 전략을 살피는 교란전술을 구사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핵·미사일 개발 속도전의 일환

북한이 미사일 성능 개선을 위한 시험발사를 우선 진행하고 완결성을 갖춘 후 묶어서 보도할 가능성도 있다. 북한은 자체 국방력 현대화 계획에 따라 구성한 시간표대로 핵·미사일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김정은도 지난달 열병식 연설에서 "핵무력을 최대의 급속한 속도로 더욱 강화 발전시키기 위한 조치 계속 취해나갈 것"이라 밝혔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25일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주년 기념식 열병식에서 연설하는 모습. 노동신문, 뉴스1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25일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주년 기념식 열병식에서 연설하는 모습. 노동신문, 뉴스1

정대진 원주 한라대 교수는 "북한이 기술적으로 준비된 미사일부터 신속히 시험발사를 진행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중국과 러시아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서 미국 주도의 제재에 협조하지 않는 상황을 최대한 활용해 핵 고도화를 신속히 달성하려는 전략"이라고 말했다. 핵·미사일 고도화를 신속히 이뤄 체제 안전을 우선 확보하려는 북한의 전략이 미사일 발사 관련 보도에 영향을 끼쳤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한편 통일부는 이날 북한이 미사일 발사한 것을 보도하지 않는 것과 관련해 정치적 셈법이 고려됐을 것이라고 밝혔다. 통일부 당국자는 "미사일 발사 자체와 발사 사실 보도를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며 "남북 관계, 한반도 상황 등을 고려한 정치적 평가에 기인하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 안정세 강조한 北 

한편 북한은 26일 코로나19 관련 사망자 수가 사흘째 '0명'이라고 주장했다. 북한 국가비상방역사령부는 이날 24일 오후 6시부터 24시간 동안 발열 환자 10만5500여명이 발생했고 사망자는 없다고 밝혔다. 북한이 공개한 통계를 토대로 보면 신규 발열 환자 수가 최근 닷새간 10만명대에 머물며 코로나19 확산세가 누그러지는 모습이다.

노동신문이 26일 공개한 길가에 설치된 코로나19 관련 선전물. 노동신문, 뉴스1

노동신문이 26일 공개한 길가에 설치된 코로나19 관련 선전물. 노동신문, 뉴스1

하지만 전문가들은 북한이 공개하는 사망자 규모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북한 방역당국이 밝힌 코로나19 치명률은 0.002%에 불과한데 이는 전 세계적으로도 낮은 편에 속하는 한국의 치명률 0.13%보다도 훨씬 낮은 수치다. 백신 접종률이 제로(0)에 가깝고 방역용 마스크조차 제대로 공급하지 못하는 북한의 보건·의료 시스템에 비춰볼 때 북한의 '호전' 주장을 신뢰할 수 없는 상황이다.

오경섭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노동신문이 연일 코로나19 방역 총력 대응 관련 내용으로 지면을 구성하는 것을 볼 때, 북한 내 코로나19 상황이 매우 심각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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