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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닐라 향, 맑은 황금색 위스키…이 오크통에서 숙성시킨다 [쿠킹]

중앙일보

입력

장만진의〈랜선 위스키 바〉
세상에는 참 많은 술이 있지만, 위스키만큼 홈술에 제격인 술이 또 있을까요. ‘홈술’은 양보다 질입니다. 취하는 것보다 음미하는 행위에 가깝죠. 위스키는 단 한 잔만으로도 깊이 있는 맛과 적당한 취기를 느낄 수 있고 그런 면에서 홈술에 제격입니다. 새로운 홈술 취향을 찾고 있는 초보 애주가를 위해, 25년 경력의 바텐더 장만진이 알기 쉬운 위스키 가이드를 준비했습니다. 위스키와 관련한 모든 것을 글로 풀어드립니다. 언제든 들려 마음껏 ‘음미’해주세요.

싱글몰트 위스키란 100% 보리를 재료로, 한 곳의 증류소에서 생산한 위스키를 말한다. 사진 pexels

싱글몰트 위스키란 100% 보리를 재료로, 한 곳의 증류소에서 생산한 위스키를 말한다. 사진 pexels

‘싱글몰트 위스키(Single malt, 이하 싱글몰트)’란 100% 보리를 재료로, 한 곳의 증류소에서 생산한 것을 말합니다. 반면, 여러 증류소의 싱글몰트와 그레인 위스키(보리 외에 다른 곡물을 함께 원료로 사용한 위스키)를 블렌딩한 것은 블렌디드 위스키라고 합니다. 예전에 싱글몰트는 블렌디드 스카치위스키의 키 몰트(Key Malts, 블렌디드 속 싱글몰트 중 가장 메인이 되는 위스키)로 많이 사용했지만, 이제는 싱글몰트 그 자체만으로도 어마어마한 제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세계 다양한 나라에서 싱글몰트를 생산하지만, 그중에서도 스코틀랜드산(스카치)이 가장 유명합니다. 싱글몰트 스카치위스키를 만들 때 들어가는 재료는 사실상 물과 보리, 오크통이 전부입니다. 이 간단한 재료를 가지고 발효‧증류‧숙성의 과정을 거치죠. 그중에서도 ‘오크통(Oak Cask)’은 위스키 맛의 60% 이상을 좌우하는 중요한 재료입니다. ‘랜선 위스키 바’의 두 번째 주제는, 위스키 맛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오크통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오크통은 크게 ‘셰리 캐스크(Sherry Cask)’와 ‘버번 캐스크(Bourbon Cask)’로 나눌 수 있습니다. 위스키 시장에서는 이 두 가지가 오크통의 90% 이상을 차지합니다. 셰리 캐스크는 셰리 와인을 담았던 오크통이라 엑스 셰리(EX-Sherry)라고도 하죠. 역시 버번위스키를 담았던 오크통은 엑스 버번(EX-Bourbon)이라고 부릅니다. 셰리 와인은, 와인에 브랜디를 첨가해 알코올 도수를 높인 스페인 와인입니다. 지난 1화에도 설명했듯, 버번위스키는 옥수수를 주원료로 하는 미국 위스키입니다.

위스키에 막 입문한 분들은 이쯤에서 궁금증이 생길지도 모르겠습니다. 네, 싱글몰트 스카치위스키를 만들 때는 새 오크통을 거의 쓰지 않습니다. 위스키를 숙성하기 위해 사용하는 오크통은 나무의 향과 알코올 향이 적절하게 나야 하는데, 새 오크통을 쓰면 나무 향이 너무 강하기 때문입니다. 오크통 향과 알코올 향이 5:5 정도일 때 맛이 잘 배어나죠. 즉, 오크통에 담겼던 예전 내용물이 위스키의 풍미에 영향을 끼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셰리 와인을 담았던 오크통에 숙성시킨 위스키는 건포도나 살구, 무화과 같은 풍미를 가진다. 사진 unsplash

셰리 와인을 담았던 오크통에 숙성시킨 위스키는 건포도나 살구, 무화과 같은 풍미를 가진다. 사진 unsplash

원래는 셰리 캐스크를 주로 사용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제1차 세계대전(1914~1918년)과 스페인 내전(1936~1939년),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1939~1945년)을 거치며 점차 셰리 와인의 수요가 줄어들게 됩니다. 단맛이 강한 디저트 와인을 찾는 수요(셰리 캐스크에 관한 이야기는 다음 화에 자세히 쓸 예정입니다)가 줄었기 때문입니다. 셰리 와인 생산이 줄자 그 대안으로 쓰게 된 것이 버번 캐스크입니다. 미국에서는 버번위스키를 만든 후 오크통을 재사용할 수 없도록 법적으로 금지하고 있어서, 헌(?) 오크통이 필요한 사람들과 이해관계가 맞았다고 볼 수 있죠.

버번 캐스크에 숙성한 위스키는 일반적으로 바닐라 향이 있고 맑은 황금색을 띠는 편입니다. 반면 셰리 캐스크에 숙성한 위스키는 버번 캐스크보다 색이 진한 특징이 있죠. 아무래도 짙고 달콤한 셰리 와인이 담겼던 통이라, 건포도나 살구, 무화과 같은 풍미가 위스키에 담긴다고 보면 됩니다. 위스키의 풍미는 오크통의 크기, 그리고 몇 번 재사용했는지에 따라서도 달라집니다. 간단히 예를 들면, 오크통이 작을수록 맛은 디테일하고 섬세해지는 편이며, 오크통을 재사용할수록 나무가 가진 고유의 향은 증발하게 됩니다.

오크통은 크기에 따라서 이름이 달라집니다. 가장 사용 많이 하는 것 위주로 짚어보면, 셰리 캐스크로는 500ℓ 용량의 ‘버트(Butt)’, 버번 캐스크 중에는 250ℓ 용량의 ‘혹스헤드(Hogsheads)’와 200ℓ 용량의 ‘배럴(Barrels)’, 이렇게 세 종류가 있습니다. 재사용 횟수에 따라서도 이름을 달리 부릅니다. 처음 재사용한 것은 ‘퍼스트 필(First fill)’이라고 합니다. 버번이나 셰리 와인을 만드는 데 한번 사용하고 스카치위스키를 담은 건 처음이라는 의미입니다.

버번 캐스크에 숙성한 위스키는 일반적으로 바닐라 향에 맑은 황금색을 띤다. 사진 글렌모렌지 인스타그램 캡처

버번 캐스크에 숙성한 위스키는 일반적으로 바닐라 향에 맑은 황금색을 띤다. 사진 글렌모렌지 인스타그램 캡처

‘리필(Refill)’은 한 번 스카치위스키를 생산한 통을 재분해해서, 두 번째 위스키를 숙성한 오크통입니다. ‘리주베네이티드(Rejuvenated)’는 위스키를 여러 번 숙성한 오크통을 분해해서 속을 깎아내고 새것처럼 재사용한 통입니다. 사이즈에 따라 맛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버번 캐스크 중에 250ℓ 용량의 ‘혹스헤드’ 퍼스트 필에서 숙성한 위스키는 단맛이 나는 바닐라 향, 농익은 과일 향, 버번, 코코넛 향 위주로 결과물이 나옵니다. 혹스헤드 리필에서 생산한 위스키는 단맛, 그리고 가벼운 바닐라 향이 납니다. 그리고 혹스헤드 리주베네이트에서 생산한 위스키는 바닐라 향과 단맛, 스파이시한 향이 특징이죠.

맛집 방송을 보면, 들어가는 재료들의 조합만으로도 저 음식이 어떤 맛일지 상상할 수 있을 때가 있죠. 흔히 접한 식재료일 때, 그리고 역시 자주 먹어본 음식일 때가 특히 그렇습니다. 위스키도 비슷합니다. 오크통을 알면, 마시기 전이라 해도 어느 정도 위스키의 맛과 향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위스키 라벨에 캐스크 종류를 대부분 기재하는 이유이죠. 마지막으로 버번 캐스크에 숙성한 스카치 싱글몰트 세 가지를 소개합니다. 어떤 오크통을 썼는지 확인하며 맛을 음미하면, 더 즐거운 홈술 시간을 가질 수 있을 듯합니다.

① 글렌모렌지 오리지널(Glenmorangie Original)

100% 버번 캐스크에 10년 동안 숙성한 글렌모렌지 오리지널. 사진 글렌모렌지 인스타그램 캡처

100% 버번 캐스크에 10년 동안 숙성한 글렌모렌지 오리지널. 사진 글렌모렌지 인스타그램 캡처

숙성 기간은 10년, 100% 버번 캐스크에 숙성한 제품입니다. 글렌모렌지 위스키의 가장 큰 특징은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긴 목을 가진 증류기를 사용한다는 점입니다. 글렌모렌지의 위스키병 역시 목이 긴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병의 목이 긴 것은 증류기의 목도 길다는 뜻입니다. 글렌모렌지는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긴 목을 가진 증류소죠. 목이 길다는 것은, 환류 작용(증기를 응축하기 전에 다시 액체로 만들어 또 한 번 증류하는 과정)이 더 길어져 가볍고 산뜻한 스타일의 위스키가 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반대로 목이 짧고 두꺼우면 더 크리미하며 맛이 강렬해집니다.

또한, 글렌모렌지는 ‘피트(Peat)’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피트란 쉽게 설명하면 풀뿌리 같은 자연 퇴적물입니다. 습하고 넓은 들판의 토양에서 만들어지죠. 피트를 태울 때 나는 연기로 맥아를 건조하는데, 우리가 아는 병원 냄새(요오드 향)를 내는 것이 바로 피트입니다. 향이 강렬해서 위스키 마니아들은 좋아하지만, 입문자는 즐기기 힘든 향이기도 합니다. 이런 특징들 때문에 글렌모렌지는 싱글몰트 입문자가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위스키이기도 합니다. 시음 노트는 신선한 과일, 버터 스카치, 토피의 향이 있습니다. 여운으로는 과일 맛이 나는데. 마지막에는 생강 향이 두드러진다는 것이 공식적인 평입니다.

② 브룩라디 더 클래식 라디 스코티쉬 발리(Bruichladdich The Classic Laddie Scottish Barley)

스코틀랜드산과 아일라산 보리만으로 생산한 브룩라디 더 클래식 라디 스코티쉬 발리. 사진 장만진

스코틀랜드산과 아일라산 보리만으로 생산한 브룩라디 더 클래식 라디 스코티쉬 발리. 사진 장만진

하늘색 병 색깔이 시선을 집중시키는 제품입니다. 날씨 좋은 날, 브룩라디가 있는 아일라섬의 바다색이라고 합니다. 아일라섬에 있는 브룩라디 증류소는 ‘해안가의 언덕’이란 뜻입니다. 1881년 하비 삼 형제가 유통이 편리하다는 이유로 바닷가 앞에 증류소를 만들었다고 하죠. 브룩라디의 위스키 중에서, 더 클래식 라디 스코티쉬 발리는 와인처럼 떼루아를 강조하는 위스키입니다. 떼루아는 포도를 생산하는 데 영향을 주는 토양, 기후, 같은 조건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죠. 더 클래식 라디 스코티쉬 발리 역시 아일라섬의 토양과 물, 기후를 중요시하며 스코틀랜드산과 아일라산 보리만으로 위스키를 생산합니다. 더 클래식 라디 스코티쉬 발리는 스코틀랜드산 보리를 썼으며, 피트 훈연을 하지 않습니다. 또 버번 캐스크에 숙성하며, 연산(숙성 연도) 없이 출시합니다. 옅은 황금빛의 이 위스키는 몰트와 프루티, 플로럴, 약간의 민트향, 꿀, 시트러스 향이 특징이며 달콤한 맛이 크림처럼 녹아드는 맛을 가지고 있습니다.

③ 글렌 그란트(The GLEN GRANT) 18년

풍부한 과일향이 특징인 글렌 그란트 18년 위스키. 사진 글렌 그란트 페이스북

풍부한 과일향이 특징인 글렌 그란트 18년 위스키. 사진 글렌 그란트 페이스북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글렌 그란트 증류소의 위스키입니다. ‘글렌 그란트 18년’은 제임스 그란트(James Grant)와 존 그란트(John Grant) 형제가 1840년에 만든 위스키입니다. 보통 싱글몰트는 ‘글렌(Glen)’ 다음에 동물이나 지역을 붙이기 마련인데, 이 형제는 과감히 자신들의 이름을 넣어 제품에 관한 보증을 나타내는 전략을 택했죠. ‘글렌’은 스크틀랜드 게일어로 계곡, 골짜기라는 뜻입니다. 싱글몰트에는 유독 글렌이란 단어가 붙은 게 많습니다. 증류소들이 깊은 산골짜기에 있는 경우가 많아서입니다.

그런데, ‘글렌 그란트’라는 이름이 보증하는 맛이란 무엇일까요? 바로 최고로 정제된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 글렌 그란트는 긴 목을 가진 증류기와 정화 장치를 고안했죠. 숙성까지만 증류소에서 작업하고 병입은 다른 곳에서 하는 다른 위스키들과는 달리, 글렌 그란트는 숙성과 병입, 포장까지 증류소 안에서 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중에서 오늘은 2016년 처음 출시한 글렌 그란트 18년을 소개합니다. 세계적인 위스키 평론가 짐 머레이가 매년 발간하는 ‘위스키 바이블(2016)’에서 97점을 받았습니다. 그 해부터 4년 연속 싱글몰트 위스키 부문 2위를 차지했죠. 다른 위스키와 달리 이 술은 오픈하고 에어링(원액을 공기와 접하게 하는 것) 없이 바로 마셔도 알코올 냄새 없이 풍부한 과일 향을 즐길 수 있습니다.

DRINK TIP 위스키 맛있게 마시는 법
▪ 싱글몰트 즐기는 법
위스키를 원액 그대로 잔에 따라 마시는 것을 ‘니트(neat)’라고 합니다. 니트로 마실 때는 꼭 싱글몰트 전용 잔(글렌 캐런)을 사용하세요. 일단 위스키를 잔에 따른 후 첫 향을 느껴보세요. 이때 잔을 돌리며 향을 맡기 전에, 잔 안에 바람을 한번 날리면 알코올 향이 먼저 올라옵니다. 알코올 향을 날려버린 다음에는 아로마 향을 더 잘 즐길 수 있습니다. 첫 모금은 입안에 머금고 잠시 가만히 있어 보세요. 머금는 동안 침샘이 나와서 위스키를 더 맛있게 마실 수 있습니다. 그냥 목으로 넘겨버리면, 알코올 맛만 느껴지기 때문이죠. 그다음, 잔에 물 몇 방울을 넣어주면, 더 많은 아로마를 느낄 수 있습니다. 안주로는 초콜릿 또는 말린 과일과 잘 어울립니다.

장만진 cook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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