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휴가를 앞두고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되면서 여행 수요가 폭증했지만 항공권 같은 여행 인프라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항공권은 물론 숙박을 위한 호텔요금, 단체여행 비용 등이 모두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이른바 ‘베케플레이션(휴가를 뜻하는 베케이션과 인플레이션을 합친 신조어)’에 휴가 포기자까지 나오고 있다.
1년차 직장인 장모(30)씨도 그런 경우다. 장씨는 6월 말에 연차를 내고 1주일간 미국 LA 여행을 계획했지만 너무 비싼 항공권 가격에 일정을 미뤘다. 장씨는 “처음 여행을 계획한 3월보다 환율까지 오르면서 현지 체류비가 수십만원은 더 들겠더라”며 "무엇보다 미국행 항공권 가격이 내려가기만 기다렸는데 값이 더 오르기만 했다. 3년 전 가격을 아니까 더 못 가겠다"고 말했다.
미국 왕복하는데 320만원
25일 항공업계 등에 따르면 올해 7월말 기준 인천-뉴욕 노선 왕복 항공권 가격은 320~333만원(대한항공)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전인 2019년과 비교해 2배 이상 올랐다. 유럽 노선도 상황이 비슷하다. 7월 주말에 출발하는 인천-파리 왕복 노선 일부는 300만원을 넘어섰다. 2019년 같은 달엔 100만원 안팎이었다.
베케플레이션은 여행·관광과 관련해 전반적으로 나타나는 추세다. 여행·관광 수요가 코로나19 확산 때 바닥까지 떨어졌던 만큼 회복 속도가 가팔라서다.
우선 관련 서비스물가가 상승했다. 통계청 소비자물가지수를 보면 지난달 국내 단체여행비는 1년 전보다 20.1% 증가했다. 여객선 가격(7.2%)은 물론 골프장 이용료도 같은 기간 5.4% 올랐다. 가족·연인이 많이 찾는 놀이시설·관람시설도 각각 4.2·3.9%씩 비싸졌다.
골프장·놀이시설·기름·외식값 ↑
지난달 국내 호텔숙박료도 1년 전보다 5.4% 올랐다. 캠핑장이나 국립휴양림 야영시설 이용료도 오름세다. 해외는 상승세가 더 가파르다. 로이터 보도에 따르면 유럽 대표 여행지인 스페인은 하루 평균 숙박비가 1년새 36% 상승했다. 회원수 209만명의 여행 커뮤니티 ‘유랑’엔 “3년 전 갔을 때 14만원이었던 로마 숙소가 지금 30만원대 후반” 등 비싼 해외 물가를 호소하는 글이 줄을 잇고 있다.
여행에서 '맛집' 탐방을 빼놓을 수 없는 만큼 외식물가도 국내 여행족의 경비에 영향을 미친다. 올해 1분기 외식물가는 지난해 같은 분기보다 6.1% 올랐다. 특히 관광지가 많은 강원(6.6%)·제주(6.4%)의 외식물가 상승률이 평균보다 높게 나타났다.
높아진 국제유가와 환율도 베케플레이션을 유발한 변수다. 지난 3월부터 100달러 시대로 접어든 국제유가 상승으로 자동차 여행 시 기름값 부담이 커졌다. 유가에 연동되는 항공기 유류할증료도 덩달아 올랐다. 대한항공·아시아나의 6월 국제선 유류할증료는 2016년 비례구간제 적용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수요 폭발하는데…공항은 방역에 막혀
베케플레이션은 공급 측면뿐 아니라 2년간 팬데믹에 억눌린 여행·휴가 수요가 폭발한 것도 한몫하고 있다. 인크루트가 최근 성인남녀 98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78.4%가 휴가 계획이 있다고 답변했다. 2년 전 진행한 조사에서 여름휴가 계획을 밝힌 응답자는 26.8%였다. 올해 여름휴가 계획이 없다고 밝힌 이들은 '비용 부담'(33.6%)을 이유로 들었다.
특히 지난해 6월 잡코리아 조사에서 57.9%(직장인 1285명 대상)가 해외여행을 가겠다는 기대감을 보였을 정도로 해외여행 수요는 오래 억눌려왔다. 하나투어 관계자는 “코로나19 초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문의가 늘었다”며 “해외여행의 경우 환율이 오른 것도 단체여행 상품 가격을 높였다”고 말했다.
2년여 만에 해외여행을 준비하는 소비자들은 항공권 가격 급등에 불만이 크다. 항공업계는 그 이유를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해서”라고 설명한다.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한국의 국제선은 주 4770편이 정기 운항했다. 지난달 기준 국제선 운항 횟수는 주 420회에 불과하다. 2019년의 8.8% 수준으로,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 한다.
항공 운행은 정부 정책에 따라 조정되는 만큼 회복 속도가 더디다. 특히 방역을 이유로 인천공항의 야간비행금지시간(오후8시~오전5시) 규제를 풀지 않고 있어 항공편을 늘리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한항공에 따르면 방역 목적으로 야간비행금지시간을 설정한 건 전 세계에서 한국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