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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손흥민 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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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장주영 기자 중앙일보 기자
장주영 사회에디터

장주영 사회에디터

지난 23일 한국 축구사가 새로 쓰였다. 손흥민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골든부트(득점왕)의 주인이 됐다. 토트넘과 노리치시티의 리그 마지막 경기에 출전한 손흥민은 22·23호 골을 연달아 넣으며 모하메드 살라(리버풀)와 함께 공동 득점왕에 올랐다. 한국은 물론, 아시아 선수 최초의 EPL 득점왕이다. 유럽 5대 축구리그에서 득점왕에 오른 아시아 선수 역시 손흥민뿐이다.

득점왕을 결정지은 마지막 슛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후반 30분, 페널티 라인 왼쪽 외곽에 있던 손흥민에게 공이 넘어왔다. 달걀 다루듯 섬세하게 공을 받아낸 손흥민은 상대 수비 1명을 따돌린 후 과감히 슛했다. 그의 발을 떠난 공은 아름다운 호를 그리며 골대 우측 상단으로 빨려 들어간 후 골망을 흔들었다. 원정팀 득점에 야유와 욕설이 난무하는 EPL 경기장이지만, 너무도 완벽한 득점에 홈팀 노리치의 응원석은 한숨 소리만 나왔다.

어디서 자주 본듯한 이 장면. 이른바 ‘손흥민 존(zone)’에서 터져 나온 득점이었다. 손흥민은 유독 페널티 라인 좌·우측 외곽에서 뛰어난 결정력을 보여준다. 왼발과 오른발도 가리지 않는다. 득점왕을 차지한 올 시즌 첫 득점과 마지막 득점 역시 모두 이 손흥민 존에서 나왔다. 영국 신문 이브닝 스탠더드는 23호 골에 대해 “잘 감긴 슈팅이다. 그의 트레이드마크이기도 하다”고 평가했다.

손흥민 존에서 과감히 슛을 시도하는 선수는 많지 않다. 상대도 ‘설마 여기서?’라는 생각에 대부분 뒷걸음질 치며 수비한다. 거리가 멀고 성공률이 낮아서다. 그렇다면 손흥민의 비법은 뭘까. 허무하게도 ‘피나는 노력’이었다. 본인이 딱 그렇게 표현했다. 그는 지난해 1월 JTBC와의 인터뷰에서 “처음부터 그 위치에서 슈팅을 잘하지는 않았다”며 “거기서 훈련을 정말 많이 했다. 다른 거 없이 피나는 노력인 것 같다”고 말했다.

손흥민의 활약에 ‘할 수 있다’는 용기와 자신감을 얻었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코로나와 취업난에 힘들어하는 젊은 세대가 특히 그럴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하나 더, 깊은 울림의 메시지도 함께 기억해야 할 것 같다. 타고난 재능이 아무리 뛰어나도 노력 없인 자기만의 영역을 구축하기 어렵다는 단순한 진리를, 손흥민은 증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