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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사 김규식 살던 삼청장, 청와대 개방 계기로 복원해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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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청와대와 인접한 삼청장 터(삼청동 145-20번지)는 2011년 대통령경호처에 매입된 뒤로 일반 시민의 접근이 차단됐다. 경호처는 통제 이유에 대해 “경호시설물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진 구글 지도 캡처]

청와대와 인접한 삼청장 터(삼청동 145-20번지)는 2011년 대통령경호처에 매입된 뒤로 일반 시민의 접근이 차단됐다. 경호처는 통제 이유에 대해 “경호시설물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진 구글 지도 캡처]

“사진 찍으시면 안 됩니다.”

청와대가 일반 시민에게 개방된 지 열흘째 되던 지난 19일. 춘추관 뒷길(금융연수원 건너편)에 위치한 북악산 한양도성길 입구는 등산객들로 북적였다. 하지만 등산로 입구에서 100m가량 떨어진 왼쪽 언덕배기는 여전히 통제선이 처져 있었다. 멀찍이서 사진이라도 찍으려 하자 등산로 관계자들이 “사진 촬영은 안 된다”며 막아섰다. 청와대 개방 이후에도 여전히 출입이 제한된 곳, 바로 ‘삼청장’ 터다.

정확한 주소는 종로구 삼청동 145-20번지. 부동산 등기에 ‘대통령경호처’ 소유로 나오는 이곳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마지막 부주석인 우사(尤史) 김규식이 1950년 납북되기 전까지 살았던 사저, 삼청장이 있던 땅이다.

“김규식, 납북된 탓에 업적 평가 늦어져”

지난 18일 서울 삼청동 삼청장 인근에서 만난 심지연 경남대 명예교수는 우사 김규식에 대해 “오늘날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시대 정신의 화신”이라고 말했다. 우상조 기자

지난 18일 서울 삼청동 삼청장 인근에서 만난 심지연 경남대 명예교수는 우사 김규식에 대해 “오늘날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시대 정신의 화신”이라고 말했다. 우상조 기자

김규식은 이승만·김구와 함께 해방 정국의 ‘세 영수’로 꼽히지만, 납북된 후 죽음을 맞이한 탓에 그 업적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그가 거주했던 삼청장 또한 이승만의 사저 이화장, 김구의 사저 경교장이 사적(史蹟)으로 지정돼 국가 관리를 받는 것과 달리, 청와대 인근에 위치했다는 이유로 일반의 접근이 통제된 채 역사적 의미를 되찾지 못하고 있다. “청와대 개방을 계기로 삼청장을 우사의 정신을 기리는 장소로 복원해야 한다”고 말하는 심지연(74) 경남대 명예교수를 18일 만났다.

삼청장은 물론, 김규식이라는 이름도 다소 생소하게 느껴진다.
“우사는 독립운동부터 좌우합작운동, 민족통일을 위한 노력 등 수없이 많은 업적을 남겼지만, 6·25 전쟁 당시 미처 피난을 못 가고 납북된 탓에 평가가 늦어졌다. 과거만 해도 납북된 이들을 부역자 취급하는 인식이 있었던 데다, 이승만 정권에서는 남북협상을 위해 평양을 찾았던 김구나 김규식을 탐탁잖게 여겼기 때문이다. 김구의 경우 박정희 전 대통령이 존경했기 때문에 일찍이 복원이 이뤄졌지만, 김규식에 대해서는 노무현 정부 들어서야 연구가 시작됐다.”

6세에 부모를 모두 잃은 김규식은 선교사 언더우드 목사의 보살핌으로 성장, 1897~1904년 미국에서 유학한 뒤 귀국했다. 1913년 중국으로 망명한 그는 여운형 등과 신한청년당을 창설, 1919년 파리강화회의에 대한민국임시정부 외무총장으로 파견돼 일제 식민통치의 실상과 한민족 독립을 국제사회에 호소했다. 1935년엔 약산 김원봉과 함께 민족혁명당을 창당해 독립운동의 통일전선을 구축했고, 1942년 중경(충칭) 임시정부에 합류, 국무위원과 부주석으로 활동했다.

삼청장의 원래 소유자는 친일파 민영휘의 아들 민규식이었다. 1945년 광복이 된 뒤 귀국한 우사에게 삼청장을 쓰게 했다. 김규식은 귀국 후 좌우로 나뉜 정세를 통합하기 위한 좌우합작운동, 조국 분단을 막기 위한 남북협상 등을 주도했는데, 삼청장이 바로 이 같은 활동의 주무대가 됐다.

삼청장이 지니는 의미가 무엇인가.
“우사가 여운형과 좌우합작을, 백범과 남북협상 등을 논의했던 장소가 바로 삼청장이다. 이곳에서 우사와 백범이 1948년 김일성·김두봉에 남북협상을 제안하는 편지를 쓰기도 했다. 이처럼 해방정국의 많은 정치지도자가 드나들며 국민통합, 통일국가 건설을 위해 토론한 장소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깊다.”

수차례 복원 탄원서, 문 정부 때 거절 당해

삼청장 앞에서 촬영한 우사 김규식(앞줄 왼쪽에서 세번째)의 가족 사진. [사진 우사 증손녀 김신희씨]

삼청장 앞에서 촬영한 우사 김규식(앞줄 왼쪽에서 세번째)의 가족 사진. [사진 우사 증손녀 김신희씨]

김규식이 납북된 뒤 방치됐던 삼청장은 2007년 국고로 귀속된 뒤 공매로 민간에 팔렸다가 2011년 대통령경호처에 매입됐다. “청와대 인근 경호 문제로 매입했다”는 게 당시 경호처의 설명이었지만, 심 교수는 “김영삼 때 청와대가 안가(安家)를 전부 철거하지 않았나. 그 뒤로 대통령들이 맘 편히 술 한잔할 공간이 없어 이명박 정부부터 삼청장을 안가로 사용했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심 교수는 삼청장 복원 관련 논의에 냉담한 정부 입장에 아쉬움을 표했다. 김규식의 손녀 김수옥 여사가 회장을 맡고 있는 우사연구회는 문재인 정부 들어 여러 차례 ‘삼청장을 복원해달라’는 취지의 탄원서를 대통령에게 보냈지만, 복원은커녕 관람조차 거절당했다. 심 교수는 “6·25 전쟁 등을 거치며 건물은 흔적만 남고 퇴락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현재 정확히 어떤 상태인지는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이라며 “삼청장 원형을 살려 우사 관련 자료를 모아두는 교육장소로 복원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청와대 개방 이후에도 삼청장 터를 접근 통제하는 이유에 대해 경호처 관계자는 “경호시설물로 관리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현재 어떤 용도로 쓰이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보안 문제로 공개하기 어렵다”는 답을 되풀이했고, 향후 활용 방안에 대해서도 “검토가 이뤄지지 않았다. 결정된 바가 없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도 삼청장 복원을 주장하는 이유로 심 교수는 우사의 시대정신에 방점을 찍었다. 그는 “분단에서 비롯된 정치적 양극화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우사와 같은 중도 진영의 업적을 되살리지 않는 한, 우리 사회는 계속해서 양극단으로 나뉠 수밖에 없다”며 “독립·좌우통합·통일 정신을 추구한 우사는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시대정신의 화신’”이라고 강조했다.

“우사가 다녔던 미국 로어노크대학교에도 김규식을 기념하는 표지판이 있는데, 우리나라에는 우사를 기념할 만한 장소가 하나도 없다. 삼청장 복원을 통해 민족의 시대정신을 찾아야 한다.”

심 교수의 제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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