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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달-조코비치-페데러 천하 내가 끝낸다...그리스 테니스 신 치치파스

중앙일보

입력

역전승을 거두고 프랑스오픈 2라운드에 진출한 치치파스. 그의 목표는 첫 메이저 대회 우승이다. [AP=연합뉴스]

역전승을 거두고 프랑스오픈 2라운드에 진출한 치치파스. 그의 목표는 첫 메이저 대회 우승이다. [AP=연합뉴스]

프랑스오픈은 지난 17년간 남자 테니스의 '빅3'인 노바크 조코비치(35·2회 우승), 라파엘 나달(36·13회), 로저 페데러(41·1회) 천하였다. 2005년부터 한 차례 대회를 제외하고 16개의 우승 트로피를 셋이 번갈아들었다. 나달이 13회로 대회 역대 최다 우승, 디펜딩 챔피언 조코비치는 2회 정상에 섰다. 페데러는 1회 우승했다.

올해 프랑스오픈(총상금 4360만 유로·약 586억원)은 상황이 다르다. 기존 전설들에 도전장을 낸 특급 신예가 있다. 지난 대회 준우승자 스테파노스 치치파스(24·그리스)다. 세계 랭킹 4위 치치파스는 25일(한국시간) 프랑스 파리의 스타드 롤랑가로스에서 열린 대회 남자 단식 1회전에서 66위의 신예 로렌초 무세티(20·이탈리아)를 상대로 풀세트 접전 끝에 3-2(5-7 4-6 6-2 6-3 6-2) 짜릿한 역전승을 거뒀다. 1, 2세트를 연달아 내주며 벼랑 끝에 몰린 치치파스는 이후 세 세트를 연달아 따냈다.

3시간 30분 이상의 혈투 끝에 승리한 치치파스. [EPA=연합뉴스]

3시간 30분 이상의 혈투 끝에 승리한 치치파스. [EPA=연합뉴스]

키 1m93㎝의 거구 치치파스는 최고 시속 210㎞의 강서브로 서브에이스에서 무세티를 10-4로 앞섰다. 3시간 34분간 이어진 혈투는 현지시간으로 자정이 넘어서야 끝났다. 치치파스는 "시간이 흐를 수록 내 서브가 상대보다 날카롭다는 것을 느꼈다. 득점 기회가 많아질 것 같아서 더 열심히 했다. 좋은 흐름에서 이기지 못했다면 많이 아쉬웠을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프랑스오픈 공식 홈페이지는 "자정을 넘겨 경기 한 치치파스가 파리 테니스 코트의 유령을 내쫓았다"고 전했다. 치치파스의 2회전 상대는 즈데네크 콜라르(134위·체코)다.

그리스 대표 스포츠 스타 치치파스(가운데)와 아데토쿤보(오른쪽)는 요리가 취미다. 관심사가 같아서 친한 사이다. [사진 아데토쿤보 인스타그램]

그리스 대표 스포츠 스타 치치파스(가운데)와 아데토쿤보(오른쪽)는 요리가 취미다. 관심사가 같아서 친한 사이다. [사진 아데토쿤보 인스타그램]

치치파스는 세계 2위 알렉산더 츠브레프(25·독일), 3위 다닐 메드베데프(26·러시아)와 함께 '차세대 빅3'로 불리는 차세대 스타다. 2017년부터 본격적으로 프로 무대에 뛰어든 그는 강력한 포핸드와 서브를 무기로 짧은 시간 안에 세계 정상급 선수 반열에 올랐다. 4대 메이저 대회(호주오픈·윔블던·US오픈·프랑스오픈)에서 모두 3회전 이상 진출하는 성과를 냈다. 2019년 호주오픈 16강에선 당시 디펜딩 챔피언 페데러를 꺾은 데 이어 지난해 호주오픈 8강에선 나달까지 꺾으며 큰 주목을 받았다. 생애 첫 메이저 대회 결승에 진출한 지난해 프랑스오픈에선 조코비치를 상대로 2세트나 먼저 따냈지만, 경험 부족으로 내리 세 세트를 허용했다.

프랑스오픈 최다 우승 기록은 '흙신' 나달이 기록한 13회다. [AFP=연합뉴스]

프랑스오픈 최다 우승 기록은 '흙신' 나달이 기록한 13회다. [AFP=연합뉴스]

치치파스는 '그리스 괴인'으로 불리는 미국프로농구(NBA) 수퍼 스타 야니스 아데토쿤보(28·밀워키 벅스)와 더불어 그리스를 대표 스포츠 스타다. 치치파스의 별명은 '그리스의 신'이다. 공교롭게도 그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처럼 코트 안팎에서 장난 섞인 행동을 즐기는 것으로 유명하다. 테니스는 경기 후 승자가 중계 카메라 렌즈에 소감을 한두 마디 적는데, 치치파스는 '노란 잠수함' '주황색 의자' '분홍 게' 등 의미를 알 수 없는 단어로 채웠다. 그는 이날도 '영혼을 그곳에 둬라, 발할라(신들이 사는 곳)가 당신을 기다릴 것이다'라는 철학적 메시지를 남겼다.

메드베데프(왼쪽)와 치치파스는 앙숙이다. [AP=연합뉴스]

메드베데프(왼쪽)와 치치파스는 앙숙이다. [AP=연합뉴스]

메드베데프와 천적 사이가 된 것도 기행을 저질러서다. 2018년 마이애오픈에서 벌어진 '배스룸 브레이크(Bathroom Break·화장실 휴식)' 사건이다. 둘은 1라운드에서 맞붙었는데, 치치파스가 경기 도중 화장실을 다녀온다면서 5분 이상 코트를 비웠다. 화장실 휴식은 시간이 제한이 없지만, 일반적으로 1~2분이면 경기에 복귀한다. 한술 더 떠 치치파스는 경기 도중 네트를 타고 들어온 공에 대해 통상적인 '미안하다' 제스처도 하지 않자, 메드베데프가 폭발했다. 메드베데프는 2-1로 경기에서 이긴 뒤, 치치파스와 언쟁을 벌였다. 주심이 내려와서 말려야 했을 정도였다. 이후 메드베데프는 치치파스와 맞대결에서 5연승 하며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저런, 또 이겼네'와 같은 글을 올렸고, 치치파스는 메드베데프의 경기 스타일에 대해 '지루하다'고 악평했다. 이후 둘은 볼 때마다 으르렁거리는 사이가 됐다.

치치파스는 지난해 호주오픈 앤디 머레이와의 1회전 도중에도 화장실에 간 뒤, 8분 뒤 돌아왔다. 경기에 패한 머레이는 "치치파스에 대한 존경심을 잃었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휴식 시간을 통해 테니스에선 금지된 경기 중 코치의 지도를 받는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치치파스는 땀에 젖은 옷을 갈아입었을 뿐이라고 항변했다. 전문가는 '전략적 선택'이라고 분석한다. 당시 월스트리트저널은 "조코비치도 화장실 휴식의 달인이다. 메이저 대회에서 화장실에 다녀온 12번 가운데 10번, 다음 세트를 따냈다"고 분석했고, 워싱턴포스트는 "포핸드나 서브와 같은 하나의 무기인 것 같다"고 평가했다.

사건·사고를 통해 성장한 치치파스는 이번 대회에서 생애 첫 메이저 대회 우승에 도전한다. 치치파스는 "1라운드를 훌륭하게 치렀다. 다음 경기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한편 권순우(71위·당진시청)는 24일 1회전에서 탈락했다. 안드레이 루블료프(7위·러시아)에게 1-3(7-6〈7-5〉, 3-6, 2-6, 4-6)으로 역전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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