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영토 회복? 현실 직시하라" NYT 파문…서방 갈라졌다

중앙일보

입력 2022.05.25 05:00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젤렌스키 대통령은 자국의 영토 양보를 전제로 하는 평화협상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AFP=연합뉴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젤렌스키 대통령은 자국의 영토 양보를 전제로 하는 평화협상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AFP=연합뉴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평화협상 재개 움직임이 이는 가운데,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서방이 분열 조짐을 보인다고 외신이 보도했다. 우크라이나의 '영토 양보' 문제와 유럽 각국이 갖는 역학관계의 변화에 대한 우려가 쟁점이다.

우크라이나는 영토에 단호한 입장이다. 지난 22일 볼라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영토 양보'를 전제로 한 협상은 없을 것이라고 재차 밝혔다. 이는 서방 일각에서 제기된 "우크라이나의 고통스러운 영토 결정(뉴욕타임스)"에 대한 반발 성격이 크다.

텔레그래프는 최근 뉴욕타임스(NYT)의 사설이 우크라이나에서 파장을 일으켰다고 이날 전했다. NYT는 지난 19일 우크라이나가 2014년 이후 러시아가 점령한 모든 영토를 되찾으려는 군사적 목표는 현실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 또 현실적으로 미국이 우크라이나를 무한 지원하긴 어렵다며, 조 바이든 행정부는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한 한계를 분명히 해야 한다고 했다. 특히 "영토 문제 등 고통스러운 결정을 내려야 할 당사자는 우크라이나 지도자들"이라고 강조했다. 러시아를 무찌르거나 무력화하는 '승리의 환상'을 쫓기보단 현실적인 조력을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날 미 상원이 400억 달러(약 50조원) 규모의 지원 패키지를 통과시켰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관리들은 노골적으로 반발했다. 안드리 예르마크 우크라이나 대통령 비서실장은 이날 SNS에서 "전쟁은 반드시 우크라이나 영토·주권 회복으로 끝나야 한다"고 했다. 앞서 러시아와 협상을 이끄는 마하일로 포돌랴크 대통령실 보좌관도 로이터에 "전투 중단은 없다. 당분간 휴전 협상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강력한 우군이자 반러 전선 동지인 폴란드도 영토를 양보하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22일 키이우를 방문한 안제아 두다 폴란드 대통령은 "영토를 1㎝라도 내줘선 안 된다"며 "우크라이나만이 그들의 미래를 결정할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NYT의 사설은 동맹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미국 기득권층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았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텔레그래프는 전했다. 또 유럽 중 프랑스·이탈리아 등도 공공연하게 '우크라이나의 휴전'을 언급했으며, 그 자체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영토 점유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라고 전했다.

23일 이탈리아는 우크라이나 평화정착을 위한 4단계 로드맵을 제시했으며, 여기에도 영토 문제에 대한 양측의 협상안이 들어가 있다고 안사 통신 등이 전했다. 단, 사전에 우크라이나와 조율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키신저, 두달 안에 협상 재개해야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 23일 다보스포럼에서 우크라이나가 영토 회복 대신 평화협상을 재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로이터=연합뉴스]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 23일 다보스포럼에서 우크라이나가 영토 회복 대신 평화협상을 재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로이터=연합뉴스]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부장관도 우크라이나가 현실에 입각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텔레그래프 등 외신에 따르면 키신저 전 장관은 23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서 양측은 두 달 안에 협상을 재개해야 한다며, 이상적인 협상의 조건은 '개전 전 상태로의 복귀'라고 말했다. 지난 2월 침공 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루한스크 일부를 점유 중이었다. 키신저는 우크라이나는 이를 되찾겠다고 해선 안 되며,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미국도 분위기에 휩쓸려 러시아에 대한 전쟁을 확대하는 우를 범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하지만, 지금 러시아군은 도네츠크·루한스크 지역의 대부분을 차지한 상태다. 이 부분에 대해서 키신저는 별도의 언급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결과적으로 우크라이나는 유럽의 국경이 되기보단 중립적 완충지대 역할을 하는 게 현실적이라고 그는 지적했다. 그는 국제관계에서 현실주의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텔레그래프는 키신저의 발언이 석달간의 전쟁으로 글로벌 식량·에너지 위기가 심화하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대한 서방의 제재가 한계에 도달했다는 조짐을 보인 가운데 나왔다고 전했다. 이날 다보스포럼에선 로베르트 하벡 독일 부총리는 러시아 석유 금수에 반발하는 헝가리를 비난하기도 했다.

우크라이나 지원 패키지를 승인한 미 의회의 결의도 항구적일지 알 수 없다. 이날 크리스토퍼 쿤스 상원의원은 "푸틴은 서방이 흐트러지기를 기다리는 중이며, 그것은 우리의 도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이란 제재에 핵심 역할을 한 에릭 칸토 전 하원의원도 "(서방의) 단결이 지속할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고 말했다. 텔레그래프는 서방의 분열은 지금까지 우크라이나의 선방에 기대어 가려졌지만, 이젠 전면에 등장했다고 전했다.

"독일·프랑스, 키이우-바르샤뱌 동맹 꺼려"

지난 6일 독일 브란덴브루크 광장에 함께 선 에마뉘엘 마크롱(왼쪽) 프랑스 대통령과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6일 독일 브란덴브루크 광장에 함께 선 에마뉘엘 마크롱(왼쪽) 프랑스 대통령과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 [로이터=연합뉴스]

랄프 게르트 쉘하머 웹스터비엔나대 교수도 22일 월스트리트저널에 같은 맥락의 글을 기고했다. 그는 '유럽이 우크라이나 지원을 꺼리는 이유'라는 칼럼에서 프랑스·독일 등 유럽연합(EU) 주도 국가가 우크라이나의 EU 가입에 적극적이지 않다며, 이는 우크라이나가 EU에 가입할 경우 키이우-바르샤바(폴란드) 축이 강화될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 최근 유럽의 일부 국가는 이 전쟁에서 누가 승리할 것인가보다 전쟁을 끝내는 데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며, 특히 독일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있는 옵션에 관심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주장했다. 또 최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등을 대상으로 제안한 '유럽 정치 공동체'는 사실상 우크라이나가 정식 EU 멤버가 되는 길을 요원하게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에 대한 거부 입장을 밝혔다.

이런 배경엔 EU 회원국이 저마다 정치적 계산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쉘하머 교수는 주장했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은 향후 유럽의 역학관계를 바꿀 수 있는 주요한 요인이라는 점을 주목했다.

지금 EU의 중심축인 독일·프랑스는 우크라이나가 EU에 합류할 경우 키이우·바르샤바가 더 끈끈한 관계가 될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으며, 그래서 이들이 원하는 바가 아니다. 즉, EU에서 독일 등의 영향력이 줄어들고 대신 동유럽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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