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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은 좋은데 회식 싫어요”…이런 MZ 홀린 희한한 와인 매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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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거리두기' 조치가 사라진 5월의 저녁, 퇴근한 직장인들이 서울 시내 한 주점에서 건배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가 사라진 5월의 저녁, 퇴근한 직장인들이 서울 시내 한 주점에서 건배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1차는 소맥에 삼겹살, 2차는 맥주에 노가리 공식에서 벗어나고 싶어요.”

서울 삼성동 소재 회사에 다니는 김모(34)씨는 “이달 들어서만 2번 회식을 했다”며 “좋아하지도 않는 폭탄주로 N차(여러차례)까지 가는 게 고역”이라고 말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사라지면서 회식도 속속 부활하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 기간을 거치면서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천편일률적인 음주 대신 자신의 취향에 맞게 술을 즐기려는 문화가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다.

젊은세대가 술 자체를 꺼리는 건 아니다. MZ세대(1980~2000년대 초반 출생) 연구기관인 대학내일20대연구소에 따르면 전국 만 19~34세 남녀의 절반 이상(50.3%)이 올 들어 혼자서 즐기는 ‘혼술’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최근 편의점 업계가 특색있는 수제맥주·증류주·막걸리·와인·위스키 등을 경쟁적으로 출시하는 것도 술을 즐기는 젊은 인구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집에서 마시는 ‘홈술’ 트렌드가 보편화하면서 국내 와인 수입은 지난해 약 7000억원으로 3년 사이 두 배 가까이 급증했다.

“분위기 띄우라고 하지 마세요”

문제는 술이 아니라 경직된 분위기의 술자리다. 인사관리기업 인크루트가 지난 4월 직장인 남녀 1013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보니 10명 중 9명이 ▶시간 단축 ▶1차에서 마무리 ▶소규모 인원 ▶점심 회식 등 코로나 후 달라진 회식 문화에 만족한다고 답했다.
특히 20대의 65.6%, 30대의 71.2%는 ‘술 없이 점심에 하는 회식이 좋다’고 했다. 직장인 A(29·여)씨는 “MZ들은 회사에서 막내급이고 일찍 출근해야 하는데 저녁 회식은 윗분들의 템포에 맞춰 과도하게 마시게 된다”며 “다음날 컨디션이 안 좋아 업무에 차질을 빚고 결국 야근하는 상황이 온다”고 말했다.

[자료 인크루트]

[자료 인크루트]

심적인 불편함도 적지 않다. “상사와의 술자리는 늘 실수하지 않을지, 그걸로 책이 잡히진 않을지 긴장과 압박감이 크다” “젊은 너희가 분위기를 띄워보라는 요구가 많아 회식이 끝나면 또래끼리 ‘오늘도 아무 말이나 많이 했다’고 힘들어한다” “꼬리를 무는 사적인 질문, 반복되는 과거 시절 이야기 등 대화 내용이 똑같다” 등의 애로가 공통적이다.

술도 ‘선택권’을 달라  

흥미로운 건 과거에 비해 주종이나 마시는 방식에 선택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다는 점이다. B(33·남)씨는 “맥주와 와인 책을 사 볼 정도로 술을 좋아하지만 많이 마시진 못한다”며 “개인별 특성을 고려하지 않는 음주문화는 가급적 피하고 싶다”고 말했다. C(36·여)씨도 “소주를 못 먹고 섞어 마시면 속이 안 좋은데 회식에서 그런 말을 하면 유난을 떤다는 핀잔을 듣는다”며 “친구들끼리 좋아하는 술을 마시는 것과 억지로 정해진 술을 마시는 건 천지차이”라고 했다.
정연우 인크루트 브랜드커뮤니케이션 팀장은 “2030세대는 ‘나 중심’으로 취향과 개성에 따라 소비하는 게 익숙하다”며 “직장이든 사적인 영역이든 이런 특성을 고려하지 못하면 호응을 얻기 어렵다”고 말했다.

취하는 게 술? 취미가 술!   

주류업계는 이런 소비층의 변화에 빠르게 발맞추고 있다. 개인에게 맞는 대상을 골라 추천하는 ‘큐레이션(Curation·선별)’ 전략이 대표적이다.

롯데마트의 잠실 제타플렉스점 '보틀벙커' 에 사람들이 원하는 와인을 맛보기 위해 줄을 서 있다. [사진 롯데마트]

롯데마트의 잠실 제타플렉스점 '보틀벙커' 에 사람들이 원하는 와인을 맛보기 위해 줄을 서 있다. [사진 롯데마트]

롯데마트는 20·30대가 와인에 관심은 높은데 어떤 것을 고를지 고민이 많다는 자체 조사결과에 착안해 마트 안에 4000개의 와인을 맛볼 수 있는 ‘보틀벙커’란 대형 매장을 열었다. 2000원에서 5만원 대까지, 계절·음식·상황별로 원하는 와인을 50mL씩 맛보는 형식인데 잠실점에서만 5개월 동안 약 7만잔이 팔렸다. 한 병에 118만원인 ‘샤또 무똥 로칠드’같은 고가 와인을 잔당 몇 만원에 맛보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음식점들도 ‘시음’에 초점을 두고 있다. 레스토랑 ‘사브서울’은 공부하는 공간을 지향한다. 350종의 와인 중 50가지를 75mL와 150mL 잔으로 판매한다. 손님들은 상주하는 전문가에게 원하는 와인을 추천받거나 직접 태블릿으로 와인별 상세정보를 찾아볼 수 있다.

와인전문 문화공간인 '서울사브' 모습. 약 350종의 와인 중 50가지를 잔으로 맛보고 직접 태블릿으로 정보를 찾거나 소믈리에게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사진 서울사브]

와인전문 문화공간인 '서울사브' 모습. 약 350종의 와인 중 50가지를 잔으로 맛보고 직접 태블릿으로 정보를 찾거나 소믈리에게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사진 서울사브]

이곳 권우 소믈리에는 “손님의 70%가 20·30대”라며 “배부르게 취하기보다 주식 종목 공부하듯 와인을 하나하나 분석하고 배우려는 손님들이 많다”고 말했다. 이어 “지식수준이 높고 질문도 많이 하셔서 소믈리에는 물론 지배인과 매니저들도 매주 교육받고 공부한다”며 “배부르게 취하기보다 술도 하나의 취미로 맛과 향을 즐기려는 분들이 확실히 늘어났다”고 말했다.

서울 역삼역 근처 직장인들이 주 고객인 '청담막식당'에 설치된 와인 전용 분사기(디스펜서) 모습. [사진 와인나라]

서울 역삼역 근처 직장인들이 주 고객인 '청담막식당'에 설치된 와인 전용 분사기(디스펜서) 모습. [사진 와인나라]

퓨전한식당인 ‘청담막식당’의 경우 지난 10일 와인전문점 ‘와인나라’와 협업해 50여개 와인을 뽑아먹을 수 있는 전용 분사기를 설치했다. 식당 관계자는 “돈가스와 막국수 등 익숙한 식사에 잔당 1000~1만원대로 고급와인까지 곁들일 수 있어 근처 20~40대 직장인들에게 반응이 좋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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