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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 1분기에만 7조 적자, 민간 발전사 이윤 줄여 메꾼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전남 신안군 안좌면의 태양광 발전 시설. 전력거래가격 상한제가 적용되면 재생에너지 발전 사업자의 이익이 줄어들 전망이다. 프리랜서 장정필

전남 신안군 안좌면의 태양광 발전 시설. 전력거래가격 상한제가 적용되면 재생에너지 발전 사업자의 이익이 줄어들 전망이다. 프리랜서 장정필

한국전력이 막대한 적자를 줄이기 위해 발전 자회사에서 전력을 사올 때 기준이 되는 전력시장가격(SMP)에 상한을 두는 방안을 추진한다. 전력구매 비용을 줄여 적자를 메우겠다는 일종의 ‘극약 처방’이자 내부 정산을 통해 적자를 줄이겠다는 고육책이다. 한전은 1분기 연결 기준 7조7869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분기 기준 역대 최대 규모 적자로 지난해 연간 적자액(5조8601억원)보다도 2조원 가량 많다.

24일 산업통상자원부는 ‘전력시장 긴급정산 상한가격’ 제도 신설을 담은 ‘전력거래가격 상한에 관한 고시 개정안’을 행정예고했다. 개정 고시는 이날부터 다음달 13일까지 20일간 행정예고 후 시행한다. 이번 개정안의 핵심은 한전이 각 발전사에서 전력을 살 때 정산 가격의 기준이 되는 전력시장가격(SMP)이 비정상적으로 상승할 경우 한시적으로 가격 상한을 두는 데 있다. SMP는 전력시장에서 시간대별로 거래되는 전력 중 가장 연료비가 비싼 발전원을 기준으로 한다. 예를 들어 원자력·석탄·LNG(천연액화가스) 발전소에서 동시에 전력을 구매 해도, 가장 비싼 LNG 발전소 가격을 기준으로 전체 전력 구매 가격을 정산한다.

이 때문에 요즘처럼 국제 에너지 가격이 치솟을 때는 한전의 전력 구매 비용이 늘어나고, 저렴한 연료원을 쓰는 발전소 이익은 늘어난다. 개정안을 시행하면 에너지 가격이 아무리 올라도 SMP가 일정 수준 이상을 넘지 못하기 때문에 발전사 이윤이 지금보다 줄고 그만큼 한전의 부담이 줄어든다. 다만 실제 연료비가 상한 가격보다 더 높으면 상한 가격이 아닌 실제 연료비를 기준으로 보상해 주기로 했다.

이 조치가 시행되면 그동안 이익을 과도하게 보장해줬다는 비판을 받은 신재생에너지 사업자와 민간 발전사의 이익이 줄어들 전망이다.

발전원에 따른 전력 구입단가

발전원에 따른 전력 구입단가

한전이 지난 2월 신재생에너지를 사들이는데 쓴 총 정산 비용은 7472억원으로 원자력(1조3307억원)의 절반이 넘었다. 하지만 이 기간 신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전력의 구매량(3585GWh)은 원자력(1만3307GWh)의 4분의 1 수준(26.9%)에 불과했다. 적은 전력을 그만큼 비싼 돈을 주고 샀다는 의미다. SMP 상한을 두면 신재생에너지 사업자 이윤이 줄 게 되고 장기계약 등을 통해 미리 연료를 싸게 구매한 일부 민간 발전사업자 이익이 제한될 수 있다.

양금희 국민의힘 의원이 한전에서 입수한 ‘발전원별 전력 구매 단가’에 따르면 지난 2월 신재생에너지(대수력 제외) 구매 단가는 킬로와트시당(㎾h) 202.78원이었다. 같은 기간 원자력(67.99원/㎾h) 구매 단가의 297% 수준이다. 지난해 신재생에너지 평균 구매 단가(103.48원/㎾h)는 원자력(56.28원/㎾h)의 183.8%였는데 LNG 가격이 치솟은 지난 2월에는 297%까지 벌어졌다.

SMP 상한제가 한전의 경영 상황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순 없다는 비판도 있다. SMP 상한제는 결국 발전사 자회사의 이익을 한전이 대신 가져가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번 조치가 신재생에너지 확대라는 기존 에너지 정책 방향에 역행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신재생에너지는 연료비가 들진 않지만, 초기 투자 비용이 많아 고정적인 이윤을 보장해 주지 않으면 사업 참여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결국 전기요금을 연료비 원가 수준 정도까지 보전해 주지 않으면 한전 적자 문제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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