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尹의 친기업 행보 덕?…대기업, 600조 돈 보따리 푸는 이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일 경기 평택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방문해 이재용 부회장과 함께 반도체 생산라인을 둘러보며 관계자의 설명을 듣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일 경기 평택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방문해 이재용 부회장과 함께 반도체 생산라인을 둘러보며 관계자의 설명을 듣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삼성과 현대차 등 주요 대기업이 24일 총 600조원 가까운 대규모 투자 계획을 잇달아 발표했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 2주일 만에 나온 투자·고용 청사진이다. 새 정부의 친시장 기조에 호응하면서 러시아 사태, 인플레이션 우려 등 세계 경제에 ‘먹구름’이 가득한 가운데 선도 투자를 통해 미래 먹거리 확보에 나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삼성 “5년 내 450조 투자, 8만 명 고용”

이날 삼성·현대자동차·롯데·한화 등 4개 기업이 향후 3~5년간 집행하기로 한 투자 금액은 총 587조6000억원이다. 올해 본예산(607조7000억원)에 맞먹는 규모다. 조만간 SK·LG 등도 투자 행렬에 동참할 것으로 보여 전체 투자 규모는 더 커질 전망이다.

삼성전자와 주요 관계사는 올해부터 5년간 반도체, 바이오, 인공지능(AI)·차세대 통신 등 신성장 정보통신(IT) 등 미래 먹거리 육성을 위해 450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반도체에서 ‘초격차’를 확보하고 바이오사업을 ‘제2의 반도체’로 키우겠다는 내용이다. 최근 5년간 연평균 투자 규모보다 30% 이상 늘린 수치다. 이 중 80%인 360조원은 국내에 투자한다. 같은 기간 8만 명을 신규 채용하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삼성 측은 “산업구조의 판도 변화와 자국 중심주의 강화, 공급망 재편에 따라 경제안보의 중요성이 커진 가운데 이번 투자를 통해 한국 경제 재도약에 기여하면서 사회에 역동성을 불어넣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현대차·롯데·한화, 국내 신사업에 투자

현대차·기아·현대모비스 등 현대차그룹 3사도 오는 2025년까지 국내에 63조원을 투자한다. 주로 공장 효율화, 전기차 사업 확대, 로보틱스·도심공항교통(UAM) 등 신사업에 투입된다. 정의선 회장이 바이든 대통령과 면담하면서 미국 내 105억 달러(약 13조원)를 투자하겠다고 밝힌 지 이틀 만이다. 현대차 측은 “대규모 투자를 국내에 집중함으로써 ‘그룹 미래사업 허브’로서 한국의 리더십을 강화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말했다.

롯데 역시 주력인 유통이 위축된 상황에서 향후 5년간 37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주로 바이오·모빌리티 같은 신규 사업에 방점을 찍었다. 롯데렌탈은 전기차 24만 대를 도입하고, 충전 인프라 사업도 확대한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올 초 사장단회의에서 “신규 시장과 고객 창출을 위해 투자를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한화그룹도 2026년까지 에너지, 탄소중립, 방산·우주항공 사업을 중심으로 37조60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이 중 20조원이 국내에 투자된다. 이를 통해 5년간 2만 명 이상의 신규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게 목표다. 한화 측은 “한국을 고효율의 태양광 제품을 생산하는 ‘글로벌 핵심 기지’로 성장시키겠다”고 밝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정의선 현대차 회장이 22일 오전 그랜드 하얏트 서울 호텔에서 환담에 앞서 악수를 나누고 있다. [사진 현대자동차그룹]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정의선 현대차 회장이 22일 오전 그랜드 하얏트 서울 호텔에서 환담에 앞서 악수를 나누고 있다. [사진 현대자동차그룹]

“새 정부 친시장 기조에 화답” 

대기업들이 이 같은 ‘역대급’ 국내 투자 계획을 발표한 데는 새 정부의 친시장 기조에 화답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0일 대통령 취임 만찬에 이재용 부회장 등 국내 5대 그룹 총수와 재계 단체장을 초청하는 등 친기업 행보를 이어왔다. 기업 활동에 우호적인 환경이 조성되고 있는 데 대해 기업들이 국내 고용과 투자를 확대하자는데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새 정부가 기업 친화적 정서라는 것을 확신한 재계가 그에 맞춰 투자 계획을 내놓았다고 본다”며 “이 같은 대규모 투자가 다른 기업과 기관 투자가에 긍정적 영향을 미쳐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기업까지 투자를 늘리는 ‘도미노 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고 기대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와 중국의 주요 도시 봉쇄, 인플레이션 우려, 금리 인상 등 악재가 쌓이는 상황에서 경제 활성화에 힘을 보태기 위한 행보라는 평가도 나온다. 경쟁 기업이 위축됐을 때 선제 투자를 통해 향후 시장 지배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포석이다.

“‘국내 투자 홀대’ 지적에 대응 차원도”

일각에서는 바이든 대통령 방한 중 기업들이 대미 투자 프로젝트를 내놓은 데 대해 국내 투자를 소홀히 한다는 지적이 나오자, 이번엔 국내에 ‘돈 보따리’를 풀었다는 견해도 있다. 앞서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을, 현대차는 미국 조지아주에 전기차 전용 공장과 배터리셀 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런 가운데 국내 투자 계획을 제시함으로써 이런 우려를 불식시키고, 국내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는 점을 부각할 수 있어서다.

다만 기업들의 국내 투자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규제를 풀고 혁신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최근 기업들의 대규모 국내 투자 성과가 없었던 터라 이번 발표는 큰 의미가 있다”며 “기업들이 지속적인 투자를 통해 국내 경제를 성장시키고 국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정부도 규제를 합리적으로 개편하는 등 적극적 지원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