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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세 희귀병 환자 "한달에 10번 응급실 실려가느니 안락사 선택"

중앙일보

입력

서울의 한 시립병원 호스피스 완화의료 병동에서 연명의료 중단을 선택한 환자의 모습. [중앙포토]

서울의 한 시립병원 호스피스 완화의료 병동에서 연명의료 중단을 선택한 환자의 모습. [중앙포토]

 대구광역시 김경태(42) 씨는 9년 전 자전거를 타다 넘어지면서 어깨를 다쳤다. 타박상이라고 생각했는데 엄청난 통증이 찾아왔다. 팔이 불타는 듯하고, 바늘로 찌르거나 면도칼로 끊는 것 같았다. 복합부위 통증증후군(CRPS) 진단을 받았고, 의료진은 "치료 방법이 없다"고 했다. 항상 목욕탕 열탕보다 뜨거운 물에 팔을 넣은 듯한 통증이 온다. 돌발적 통증은 기절할 정도로 고통스럽다. 심할 때 한 달에 10번 응급실 실려 간 적이 있다.
 모르핀계 마약성 진통제가 유일한 치료약이다. 월 16mg까지만 건강보험이 되고 초과하면 건보가 안 된다. 경제적 여유가 없는 김 씨에게는 이것도 고통이다. 김 씨는 "해결 방법이 없으니까 죽는 수밖에 답이 없다. 사는 것도 고통인데 죽는 것도 고통받아야 하나.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안락사를 받아주는 스위스의 디그니타스에 진료 기록, 가입 동기 등을 보내 가입 허가를 받았다. 올 2월 스위스로 가려 했으나 주변에서 말렸다. 김 씨는 "3년 안에 치료제가 나온다는 얘기가 있어 버텨보기로 했다. 10년 견뎠는데, 3년 더 못 버티겠나"라고 말한다.
 디그니타스는 의사조력자살(Doctor aided suicide)를 시행하는 비영리 단체이다. 의사가 독극물을 처방하고 환자가 복용하는 방식이다. 의사가 독극물을 환자에게 주입하는 일반적인 안락사와 차이가 있다. 둘 다 적극적 안락사로 분류한다. 의사조력자살은 최근 뇌졸중을 앓는 프랑스 배우 알랭 들롱(87)이 이 방식을 결정하면서 관심을 끌었다.
 한국은 20여년 논쟁 끝에 2018년 2월 연명의료중단을 합법화했을 뿐 안락사는 허용하지 않는다. 심폐소생술·인공호흡기·수혈 등의 연명의료 행위를 하지 않아도 의사와 가족을 처벌하지 않는다. 이후 21만 2881명(4월 기준)이연명의료 중단을 이행하고 세상을 떠났다. 연명의료행위 유보 또는 중단은 소극적 의미의 안락사로 분류하기도 한다.
 이런 분위기가 바탕이 돼서인지 국민의 76.3%가 안락사나 의사조력자살 입법화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윤영호 교수팀은 지난해 3~4월 성인 1000명을 면접 조사해이런 결과를 얻었다. 찬성 이유로 ▶남은 삶의 무의미(30.8%) ▶좋은(존엄한) 죽음에 대한 권리(26.0%) ▶고통의 경감(20.6%) ▶가족 고통과 부담(14.8%) 등을 들었다. 이번 조사의 찬성 의견이 2016년 조사(찬성 50%)의 약 1.5배로 늘었다고 한다. 윤 교수는 "독거노인 공동 부양, 성년 후견인, 장기 기증, 유산 기부, 인생노트 작성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넓은 의미의 웰다잉 체계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고윤석 서울아산병원 호흡기내과 자문 교수는 "드물게 안락사를 요청하는 환자가 있긴 하다. 1인 가구 증가 등으로 이런 요구가 점점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된 후에 논의가 진행돼야 하는데, 지금은 이르다"고 말했다. 허대석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도 "대만이 2019년 지속적 식물인간과 중증 치매환자를연명의료 중단 대상에 포함했는데, 우리도 이것부터 먼저 논의해서 결론 낸 후 의사조력자살 논의로 넘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유은실 울산대 의대 명예교수는 "의사조력자살 논의를 시작할 때가 됐다. 다만 용어를 분명하게 정의해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락사=의사가 독극물을 주사해 환자가 숨지는 방식이다. 네덜란드·벨기에 등이 허용한다. 의사가 독극물을 처방하고 환자가 먹는 의사조력자살도 안락사이다. 미국 오리건·워싱턴 등 10개 주가 허용한다. 연명의료중단은 약을 먹는 게 아니라 의사가 불필요한 행위를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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