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이 XXX아’
이집트의 유명 축구선수 모하메드 살라는 지난 23일 난데없이 한국어로 욕을 들었다. 그의 SNS에는 이렇게 한글로 적힌 댓글이 잇따랐다.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EPL)의 최종전이 진행되던 중 손흥민과 득점왕 경쟁을 벌였다는 이유다. 이날 살라가 골을 넣자 한국인으로 추정되는 누리꾼이 ‘악플(악성 댓글)’을 단 것이다. 적나라한 욕설 댓글이 줄을 이었고 그 중엔 손흥민의 사진을 프로필로 설정한 계정도 눈에 띄었다.
새벽에 해외 축구를 즐겨본다는 30대 직장인 정모씨는 댓글에 대해 “손흥민에 대한 열광과 자부심이 악플이란 어긋난 형태로 표출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SNS서 손흥민 경쟁자 향해 악플 세례
손흥민이 EPL 마지막 경기에서 두 골을 넣으면서 23골 기록으로 아시아 선수 최초 리그 득점왕에 등극하자 한국 사회는 열광했다. 경기 중 축구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선 손흥민을 응원하는 글들이 쏟아졌다. 동시에 경쟁자인 살라에 대한 욕설과 비난 글이 뒤섞였다. 살라를 향해 ‘부상당해라’, ‘(경기에서) 빠져라’고 비난하거나 알파벳 F로 시작하는 욕설 글이 적잖았다.
이런 악플은 전 세계 축구 팬들이 모여드는 살라의 공개 SNS에도 한동안 게시됐다. 일부는 삭제됐지만, 몇몇 악플은 여전히 남아있다.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글이 잇따르자 한 누리꾼은 “보는 내가 부끄럽고, (선수에게) 미안해진다”고 댓글을 달았다.
스포츠 경쟁자에 악플 끊임없어
앞서 손흥민의 경쟁자뿐만 아니라 같은 팀 동료에게도 네티즌들의 화살이 향한 바 있다. 토트넘 홋스퍼에서 손흥민과 함께 뛰었던 아르헨티나 국적 축구선수 에릭 라멜라(세비야)가 타깃이 됐다. 그는 지난해 ‘손흥민에게 (공을) 패스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악플 세례를 받았다. 국내 한 누리꾼이 그의 가족을 겨냥한 욕설 메시지를 보내자 라멜라는 ‘가족은 안 된다’며 해당 계정을 공개하기도 했다.
유사한 사례는 10년 전에도 있었다. 영국 축구선수 톰 밀러가 대표적이다. 그는 지난 2011년 당시 영국 프로축구팀 볼턴 원더러스 FC 소속 이청용 선수에게 과격한 태클로 장기 부상을 입혔다. 이에 국내 일부 누리꾼들은 밀러에 대한 ‘좌표 찍기’에 나섰고, 당시 지역지는 “밀러가 살해 위협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월드컵이나 올림픽 등 전 세계적인 스포츠 이벤트에서도 악플은 끊이지 않는다. 지난 2018년 제23회 평창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500m 경기가 한 예다. 당시 최민정 선수가 실격되고, 캐나다의 킴 부탱 선수가 동메달을 차지하자 그의 SNS엔 욕설과 모욕 등 수천개의 악플이 달렸다.
“국격 떨어뜨려…선수에게도 도움 안 돼”
‘선플(선한 댓글)’ 운동을 주도하는 민병철 중앙대 석좌교수는 “우리 선수를 응원한다는 의도여도 그 형태가 악플이라면 선수에게도 도움 안 된다”며 “K-콘텐트 등으로 전 세계가 한국을 주목하고 있는데 ‘악플’이 하나의 우리 문화로 비친다면 국격(國格)을 떨어뜨리는 일이다”라고 지적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정치·사회적 이슈에선 다양하고 거친 의견이 나올 수 있지만, 스포츠맨십으로 선의의 경쟁을 벌이는 운동선수들에게 그런 악플을 단다는 건 누구도 공감하기 어렵다”며 “오히려 선수와 한국의 위상을 실추시킬 수 있다”고 짚었다.
해외 유명인사가 악플을 단 국내 누리꾼을 상대로 법적 대응까지 한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지만, 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경현 변호사(법무법인 정향)는 “전례가 없다고 법적 책임에서 무한정 자유로운 건 결코 아니다”며 “관할 법원 등은 검토해봐야겠지만, 악플 피해를 본 자가 해외 거주 외국인이라 하더라도 대응 의지만 있다면 형사·민사 소송 모두 가능해 보인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