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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 영웅 '김' 주지사 "태권도 검은띠…총 없어도 러 이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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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고려인 4세인 우크라이나 미콜라이우주 비탈리 김 주지사가 지난 3월 우크라이나 국기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비탈리 김 주지사 텔레그램

고려인 4세인 우크라이나 미콜라이우주 비탈리 김 주지사가 지난 3월 우크라이나 국기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비탈리 김 주지사 텔레그램

“우크라이나가 반드시 승리할 겁니다. 살아있다면 한국에 꼭 갈게요.”

[인터뷰] 고려인 4세 비탈리 김 미콜라이우 주지사

고려인 4세인 비탈리 김(41) 우크라이나 미콜라이우주 주지사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영웅으로 떠올랐다. 그는 SNS에 전쟁 상황과 러시아군을 조롱하는 등 재치 있는 농담이 담긴 영상 메시지를 꾸준히 올리며 팔로워가 200만 명에 육박한다. 그는 러시아군이 3월 초 미콜라이우 진격 공세를 펼치자 어깨에 총을 메고 순찰하는 등 솔선수범하며 공세를 저지했다. 덕분에 우크라이나 최대 물류 거점이자 전략 요충지인 오데사주가 건재할 수 있었다.

우크라이나 언론은 그를 ‘제2의 젤렌스키’라고 부르고, 더타임스 등은 우크라이나의 차세대 지도자로 지목했다. 김 주지사는 1930년대 증조부가 구소련의 강제 이주정책에 따라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간 고려인 후손이다. 그가 하는 한국어는 “안녕하십니까”뿐이지만 태권도는 검은 띠를 땄고, 한국전쟁과 관련한 역사책도 정독했다. 건설업에 종사했던 김 주지사는 2019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의 ‘국민의종’ 당에 들어가 정치 활동을 시작했고, 2020년 주지사로 임명됐다. 그를 지난 20일 서울 용산구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관에서 화상으로 인터뷰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3개월이 지났다
“이렇게 길어질 거라고는 예상 못 했다. 3~5일 안에 전쟁이 끝날 거로 생각했다. 전쟁 후 삶이 완전히 변했다. 지옥에서 산 기분이다. 과거엔 러시아를 좋은 이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2014년 돈바스 공격 후 ‘침공자’로 여긴다. 전쟁이 짧게는 2개월, 길게는 몇 년이 걸릴 것 같은데 어찌 됐든 우크라이나 승리를 확신한다. 그러려면 전 세계의 지지가 필요하다. 우크라이나 역사는 독립과 자유를 위해 싸운 사례가 대단히 많다. 그래서 계속 싸울 것이다. 어린 자녀가 셋(딸 2·아들 1) 있는데 아직 전쟁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끝나야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우크라이나 미콜라이우주 청사가 지난 3월 29일 러시아군 공습으로 파괴된 모습. 비탈리 김 주지사 텔레그램

우크라이나 미콜라이우주 청사가 지난 3월 29일 러시아군 공습으로 파괴된 모습. 비탈리 김 주지사 텔레그램

지난 3월 29일에는 주 정부 청사가 공격받았다. 김 주지사에 대한 걱정이 컸다
“미사일 공격을 받아 9층짜리 청사 건물 가운데가 뻥 뚫렸다. 전쟁 후 사무실에서 생활했는데 다행히 그날은 출근이 늦어 살았다. 전쟁이 시작된 후 가장 힘든 일은 사람들의 죽음을 보는 것이다.”  
도네츠크·자포리자·헤르손 등 우크라이나 남부 지역이 점령되면서 미콜라이우와 헤르손 지역 경계가 최전선이 됐다.
“미콜라이우와 헤르손 사이에서 15~20개 마을이 점령됐다. 러시아군이 동부에 집중하면서 미콜라이우에선 아주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지 않고 있다. 대신 미사일 공습이 잦다. 3000개 이상의 기반 시설과 주거 시설이 파괴됐다. 우리가 잘 막아 우크라이나 남부 지역이 전부 함락되지 않았다. 특히 러시아군의 오데사 진격을 막았다.”
 총을 들고 도시 순찰하는 모습이 베테랑 군인 같았다
“우리 지역 영토는 군대·경찰 등이 잘 지키고 있다. 나는 그저 도울 뿐이다. 우크라이나 남성으로서 20대에 의무 복무를 마쳐서 총을 다루는 법을 안다. 어렸을 때부터 태권도와 킥복싱을 배웠다. 태권도는 검은 띠다. 물론 종주국인 한국의 검은 띠와는 수준 차가 있을 것이다. 탱크·총·칼 등 무기를 다 잃어도 맨몸으로 싸워 이길 수 있다.”  
우크라이나 미콜라이우주 비탈리 김 주지사가 지난 5월 11일 지역 내 순찰을 돌다가 기념사진을 찍었다. 김 주지사 인스타그램 캡처

우크라이나 미콜라이우주 비탈리 김 주지사가 지난 5월 11일 지역 내 순찰을 돌다가 기념사진을 찍었다. 김 주지사 인스타그램 캡처

침공 당일 텔레그램 채널을 개설했다. 미콜라이우주 인구는 약 110만명인데, 구독자가 80만명이 넘는다. 
“구독자가 이 정도로 많아질 줄은 몰랐다. SNS 소통으로 사람들에게 제대로 된 전황을 알려주는 데는 도움이 됐다. 최근에는 자주 소식을 알리지 않는데, 그건 우리 군 당국이 정보를 잘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웃으면서 뼈 있는 농담을 잘하는 거로 유명하다. 러시아군을 ‘오크(영화『반지의 제왕』괴물)’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전쟁 전에도 진지한 실무 회의에서 농담을 잘했다. 너무 우울하고 걱정만 한다면 승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어렸을 때부터 스포츠를 많이 했는데, 믿음이 없다면 승리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싸우기로 했다면 승리를 확신해야 한다.”  
우크라이나 미콜라이우주 비탈리 김 주지사가 20일 서울 용산구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관에서 중앙일보와 화상 인터뷰를 가졌다. 화상인터뷰 캡처

우크라이나 미콜라이우주 비탈리 김 주지사가 20일 서울 용산구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관에서 중앙일보와 화상 인터뷰를 가졌다. 화상인터뷰 캡처

인기가 많아지면서 젤렌스키 대통령과 더불어 중요한 정치인으로 꼽힌다
“나는 그저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다. 전쟁이 계속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정치적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할지 계획을 세울 수가 없다. 전쟁이 끝나고 나서 어떤 역할을 할지 생각하겠다.”    
텔레그램 채널에 거의 매일 젤렌스키 대통령 영상을 올리는데, 젤렌스키 대통령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우크라이나 전체의 리더고 우크라이나를 통합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나에게 모범이 되는 사람이다. 또 대통령을 따라 정치에 입문해 영향을 많이 받았다.”  
비탈리 김 주지사가 지난 19일 우크라이나 미콜라이우에서 활짝 웃고 있다. 미콜라이우주 당국 제공

비탈리 김 주지사가 지난 19일 우크라이나 미콜라이우에서 활짝 웃고 있다. 미콜라이우주 당국 제공

정치 경력이 길지 않은데, 미콜라이우를 하나로 만들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19년 선거 캠프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하면서 정치에 입문했고, 이듬해 미콜라이우 주지사로 임명받았다. 미콜라이우 사람들이 나만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잘해야 한다고 다짐한다. 고려인 3세 아버지(올렉산드르 김)의 동양식 교육관이 도움됐다. 아버지는 공경과 규율을 강조했다.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웃어른을 공경하고 신체를 단련하라고 했다. 이런 점이 밑바탕이 됐다”  
아버지로부터 한국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나
“아버지는 젊은 시절 카자흐스탄에서 우크라이나로 이주했고, 나는 미콜라이우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아버지가 한국에 가보려 했지만, 결국 못 갔다. 나와 같은 ‘김’이라는 성이 한국에 많다는 것은 들었다. 또 한국 역사에 관심이 있어 책을 많이 읽었는데, 한국이 민주주의를 위해서 고통스럽고 힘든 여정을 겪었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비탈리 김 주지사가 지난 3월 11일 미콜라이우에서 외신 기자들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비탈리 김 주지사가 지난 3월 11일 미콜라이우에서 외신 기자들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앞으로 우크라이나는 어떤 나라가 되길 바라나 
“경제 등 여러 면에서 세계 10위 안에 드는 국가가 되길 바란다. 한국은 한국전쟁 이후 빠르게 성장하면서 경제적으로 기적을 일으켰다. 우크라이나도 그런 나라로 성장했으면 좋겠다. 한국엔 전쟁이 절대로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전쟁이 끝나고 살아있으면 한국을 꼭 방문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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