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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남정호의 시시각각

바이든 미소와 한국의 국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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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남정호
남정호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남정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남정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정 회장님, 미국을 선택해줘서 감사합니다. 우리는 당신을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한·미 정상회담차 방한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그는 지난 22일 서울 그랜드하얏트 호텔에서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105억 달러(13조여원) 규모의 대미 투자 방침을 밝히자 감격스러운 목소리로 감사를 표했다. 이번 바이든 방한의 하이라이트로 꼽힐 만한 장면이다. 앞서 삼성 역시 170억 달러(21조여원) 규모의 반도체 투자 계획을 밝힌 바 있다.

미국, 삼성·현대차 투자로 일자리 창출 #IPEF 설립, 미국 국익에 유리 비판도 #주도적 세부 협상으로 국익 챙겨야

이렇듯 외국 업체의 미국 투자는 쌍수를 들고  환영하는 그이지만 자국 기업의 해외 진출은 세금으로 때려잡는다. 바이든 행정부는 해외 진출 기업의 법인소득세를 21%에서 28%로 올렸다. 반면 국내로 돌아오면 10%의 세금 감면 혜택을 준다. 이 덕에  지난해 1300여 개 미국 기업이 돌아왔다고 한다. 그럼 한국은? 고작 26개에 불과하다. 아무리 양국 경제 규모가 다르고, 국내의 격렬한 노동운동이 기업의 등을 떠민다 해도 너무하다. 요컨대 미국은 삼성·현대까지 유치하면서 '리쇼어링(reshoring) 정책'으로 큰 재미를 본다. 반면 청년 실업이 큰 문제인 한국에선 질 좋은 대기업의 일자리가 뭉텅뭉텅 빠져나가는 것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22일 오전 그랜드하얏트 호텔에서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지켜보는 가운데 현대차의 105억 달러 대미 투자 계획에 대해 감사를 표했다. 뉴스1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22일 오전 그랜드하얏트 호텔에서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지켜보는 가운데 현대차의 105억 달러 대미 투자 계획에 대해 감사를 표했다. 뉴스1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첫 한·미 정상회담이 굳건한 안보 동맹 확인과 온갖 덕담 속에 끝났다. 하지만 바이든의 이번 아시아 순방과 관련, 간과해선 안 될 대목이 있다. 그가 반도체·배터리 등 전략물자의 공급망에서 중국을 쫓아내기 위한 새 기구를 설립한다는 사실이다. 23일 일본에서 출범한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가 바로 그것이다.
윤 대통령은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IPEF에 참여해 우리의 역내 기여와 역할을 확대하기 위한 전략도 만들어 나갈 것"이라며 가입을 공식화했다. 문재인 정권 때 흐트러진 한·미 동맹을 추슬러야 할 현 정부 입장에서는 당연한 결정일 것이다. 하지만 유념해야 할 건 중국이 대놓고 반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16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박진 외교부 장관과의 첫 화상대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디커플링과 공급망 차단의 부정적인 경향에 반대하고 글로벌 산업·공급망의 안정성과 원활함을 유지해야 한다”고. 덕담을 주고받는 첫 상견례에서 남의 나라를 대놓고 몰아세우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사드 배치에 따른 중국의 경제 보복으로 관광 업계만 21조원의 피해를 봤다고 한다. 그러니 행여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게 단도리를 해야 한다.
이뿐 아니다. IPEF에 참여하더라도 맹목적인 미국 추종은 현명하지도, 온당하지도 않다. IPEF가 민주주의 국가 간 협력이란 달콤한 구호로 포장돼 있지만 실은 미국의 국익을 위해 철저히 봉사하는 교역 체제로 보이는 까닭이다. 호혜적 무역 질서의 기본은 관세의 적절한 인하다. 그래야 국가 간 교역이 활성화돼 서로 이익을 볼 수 있다. 하지만 IPEF에선 관세 인하는 빠진다. 관세 인하는커녕 노동과 환경 문제 등과 관련된 규제 조치들이 들어간다고 한다.

아무리 동맹 관계라도 따질 건 따져야 한다. 미국과 전통적 우방이라는 유럽연합(EU)은 숱한 무역 문제를 두고 피 터지게 싸워왔다. 유전자변형 식품, 미국산 바나나, 성장호르몬 주입 소고기 등을 둘러싼 양측 간 분쟁은 끊일 줄 몰랐다. 트럼프 행정부는 유럽산 철강에 대해 25%의 관세를 부과해 EU 측의 큰 반발을 사기도 했다. 그렇다고 관계가 나빠지지 않았다.
바이든은 거칠고 무례한 전임 도널드 트럼프와는 다르다. 신사의 풍모를 지녔다. 그렇다고 부드럽고 달콤한 그의 미소와 립서비스에 취해 마땅히 챙겨야 할 대가를 잊어선 안 된다. IPEF의 구체적 내용은 협상을 통해 만들어진다 하니 국익에 도움이 되도록 논의를 주도해야 한다. 요컨대 한·미 동맹의 큰 틀은 유지하되 대중정책까지 포함, 사안별로 시시비비를 따져 실리에 맞게 대응하는 게 가야 할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