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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기업하기 좋은 나라’ 만드는 데 국가 미래 달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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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첨단 기술 경쟁력이 국가 안보까지 좌우

투자 발목 잡는 규제 혁파, 노동개혁 시급

한국 대표 기업의 경쟁력이 한·미 동맹을 업그레이드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방한 첫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세계 최초로 3㎚(나노미터·1㎚는 10억 분의 1m) 공정을 적용한 최첨단 반도체 웨이퍼를 선보였다. 방한 마지막 날에는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미래 신사업 분야에서 앞으로 3년간 미국에 105억 달러(약 13조3000억원)를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이번 방한 일정은 삼성전자로 시작해 현대차로 마무리한 셈이다.

현대차가 초대형 투자 계획을 발표한 날 한덕수 국무총리는 경제·산업 관련 장관들을 모아 경제전략회의를 열었다. 총리 임명장을 받은 이후 첫 일정이었다. 이 자리에서 한 총리는 “우리 경제 여건이 엄중하다. 기업 규제를 완화하고 투자 주도 성장을 이끄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으로 구체적인 부분은 지켜봐야겠지만 현재 경제 상황과 해법에 대한 방향은 제대로 잡았다고 평가한다.

기업 경쟁력이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다. 특히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기업은 국가 안보에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됐다. 첨단 신산업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로 글로벌 경쟁에서 확고한 입지를 구축하는 건 기업뿐 아니라 국가의 생존과 번영에도 필수다. 한국 기업들은 세계 최대의 시장이자 기술 선진국인 미국과 손을 잡아야 한다. 동시에 기업들이 국내에도 적극적으로 투자할 수 있도록 제반 여건을 갖추는 게 시급하다.

새 정부의 핵심 경제정책은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돼야 한다. 민간 투자의 활성화가 일자리 창출과 소득 수준 향상의 선순환으로 이어지도록 하기 위해서다. 대한상공회의소가 322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새 정부의 경제정책이 성공하려면 ‘미래를 위한 투자·인프라 지원’과 ‘규제 혁파를 통한 기업 혁신 유도’가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꼽았다.

기업들이 마음껏 투자할 수 있게 하려면 투자의 발목을 잡는 각종 걸림돌을 제거해 줘야 한다. 기업들은 규제의 ‘완화’나 ‘개선’으로는 한참 부족하고 규제의 ‘혁파’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기업들이 복잡한 규제와 절차 등을 따지느라 투자의 적기를 놓치거나 외국으로 옮겨 간다면 국가 전체에 마이너스다. 이와 함께 대한상의 등 경제 5단체가 공동으로 건의한 기업인들의 사면·복권도 전향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에서 강조한 노동개혁도 시급하다. 소수의 기득권 세력이 아닌 대다수 근로자에 대해 삶의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노동정책을 펴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인상한 법인세 최고세율을 다시 내리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기업의 투자 결정에는 여러 요소가 작용하지만, 적어도 다른 나라보다 높은 세금 부담 때문에 국내 투자를 망설이지는 않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