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경찰 “개구리소년 자연사” 또 주장…유족 “사과하라”

중앙일보

입력 2022.05.24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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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년 전 발생한 ‘개구리 소년 사건’ 유족들이 “소년들의 사망 원인은 타살이 아니라 저체온증에 의한 자연사”라고 주장한 전직 경찰에게 공식 사과를 요구하고 나섰다. 개구리 소년 사건은 1991년 대구 달서구 와룡산에서 소년 5명이 실종됐다가 유골로 발견된 사건이다.

‘전국미아실종가족찾기시민의모임(이하 전미찾모)’ 나주봉 회장은 지난 18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자연사 주장을 한) 전직 경찰이 사과하지 않을 경우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거나 책 판매 금지 가처분 신청을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1991년 실종된 대구 개구리 소년 5명의 부모들이 서울역 앞에서 어린이들을 찾아달라는 내용의 전단을 행인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중앙포토]

1991년 실종된 대구 개구리 소년 5명의 부모들이 서울역 앞에서 어린이들을 찾아달라는 내용의 전단을 행인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중앙포토]

사건 직후부터 유족들을 도와온 그는 “개구리 소년 중 김영규(실종 당시 11세)군의 엄마가 책에 담긴 경찰의 주장을 읽고 한참을 목놓아 울더라”며 “당시 초동 수색 실패와 수십년간 범인을 찾지 못했다는 경찰의 잘못을 덮기 위해 법의학팀의 결론까지 엎으면서 자연사라고 주장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번 논란은 사건 당시 수사책임자이자 대구경찰청 강력과장이던 김영규 전 총경이 최근 아이들의 자연사를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93년 퇴직한 김 전 총경은 지난 3월 출간된 『아이들은 왜 산에 갔을까?』라는 책을 통해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김 전 총경은 개구리 소년 사건을 30년 추적한 저자에게 “9~13세 소년 5명은 저체온증으로 자연사했으며 이제 수사를 종결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러한 김 전 총경의 주장은 당시 유골 감식 등을 통해 사인을 ‘날카로운 흉기에 의한 타살’로 결론냈던 경북대 법의학팀의 추정과 상반된다.

김 전 총경은 책에서 “두개골의 골절흔은 아이들이 사망 후 유골로 발견될 때까지 11년 6개월 동안 여름철 홍수 등으로 칼날 같은 돌이 사체 아래쪽으로 떨어지면서 생겼다”고 주장했다. 그는 “소년 5명 중 우철원(실종 당시 13세)군에게 가장 많은 25군데의 상처가 발견된 것은 철원군 사체가 폭포 쪽에 가장 가깝게 있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김 전 총경은 또 경찰이 전국을 뒤졌지만, 상흔과 일치하는 범행도구를 찾지 못했다는 점, 아이들 옷에 묶인 매듭은 누군가 강제로 묶은 게 아니라 추워서 직접 묶었을 것이라는 추정 등을 저체온증으로 인한 자연사의 근거로 들었다.

전미찾모에 따르면 김 전 총경은 앞서 2007년 10월 유족들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자연사를 주장했다. 그는 당시 편지에서 “철부지한 아동들이 용돈 몇푼 마련하려고 험준한 사격장 탄착지점에서 탄환알을 수집하던 중 때마침 들이닥친 폭풍우를 피하려고 그 계곡에 서로 옹기종기 끌어안고 있다가 한기가 들어 꼼짝 못 하고 사망한 것이 분명하다”고 썼다.

또 “경찰이나 어느 누구도 그때 아동들이 집에서 그렇게 멀리 갔으리라고는 몰랐기 때문에 경찰에서 유골 발견 지점을 수색 대상 지역에서 제외한 잘못”이라며 “이제부터는 그 아이들의 타고난 운명으로 생각하시고, 모든 것을 잊어버리시길 바란다”고 했다.

반면 유족들은 아이들이 다른 곳에서 살해된 뒤 옮겨진 것으로 본다. 법의학팀의 유골 감식 결과 타살로 결론이 난 데다 실종 당일 기온이 크게 낮지 않았던 점 등이 근거다.

경북대 법의학팀은 2002년 11월 “3구 이상의 두개골에서 사망 당시 생긴 것으로 추정되는 인위적 손상 흔적이 발견됐다”면서 “이는 소년들이 타살됐음을 뜻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소년들의 유골에 나타난 손상 흔적은 넘어지거나 추락하는 등 사고로 인해 생길 수 있는 외상은 아니다”고 했다.

유족 측은 소년들이 실종된 91년 3월 26일의 기온은 최저 3.3도, 최고 12.3도였다는 점도 강조한다. “도롱뇽 알을 주우러 간다”며 오전에 나간 아이들이 오후 6시쯤부터 내린 8.2㎜의 비 때문에 사망했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본다.

유족들은 와룡산이 아이들이 실종될 정도로 깊은 산이 아니라는 점도 지적한다. 와룡산은 총면적 870만㎡, 해발 300m 정도의 산이다. 2002년 아이들의 유골이 발견된 지점은 주거지와는 3.5㎞, 와룡산이 시작되는 지점으로부터는 5㎞ 정도 떨어진 곳이다. 유골 발견 당시 대한산악연맹 대구지부 관계자는 “애들 집에서 유골 발견 지점까지는 어린이 걸음으로 1시간, 민가까지는 5분이면 충분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지난 17일 오후 대구 달서구 와룡산 선원공원. 입구에서 5분 정도 올라가니 숲속놀이터가 보였다. 이곳에는 2020년 집라인 등이 조성됐다. 놀이터 아래로 낙엽이 쌓인 골짜기가 있었고, 아이들의 유골이 발견된 곳에는 조화가 놓여 있었다. 인근을 지나던 50대 주민은 “그 당시에 이곳에서 민가 불빛이 보였을 것 같다”고 말했다.

개구리 소년 사건은 2019년 재수사에 착수했다. 대구경찰청 미제사건수사팀이 현재까지도 수사하고 있지만 뚜렷한 단서는 찾지 못하고 있다. 대구경찰청 관계자는 “제보에 초점을 맞추고 수사를 하고 있는데 사실상 답보 상태”라고 말했다. 이번 논란에 대해 경북대 법의학팀 측은 “당시 감식 결과가 바르다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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