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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지만 자유엔 대가 따른다…한국, 국제질서 보호 힘써주길"[주한 유럽대사 연속인터뷰] ④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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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24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의 폭주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최대 군사위기를 초래했을 뿐 아니라 전 세계 안보 질서를 흔들고 있다. 미국과 유럽국가들이 초유의 단합 속에 대러시아 제재와 우크라이나 지원에 나섰고 중립국인 핀란드·스웨덴의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도 현실화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80여일을 맞아 이번 전쟁의 의미와 해결책을 찾고 한국과 유럽의 안보·경제 협력을 모색하고자 주한 유럽대사 4인을 순차 인터뷰했다. ①콜린 크룩스 영국대사 ②필립 르포르 프랑스대사 ③미하엘 라이펜슈툴 독일대사 ④마리아 카스티요 페르난데즈 EU 대사 순으로 소개한다.

마리아 카스티요 페르난데즈 주한 유럽연합(EU) 대사가 13일 오후 중구 서울스퀘어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마리아 카스티요 페르난데즈 주한 유럽연합(EU) 대사가 13일 오후 중구 서울스퀘어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주한 유럽대사 연속인터뷰④ 마리아 카스티요 페르난데즈 EU대사

“러시아에 대한 유럽연합(EU) 차원의 강력한 제재가 이어지면서 유럽인의 고통도 큽니다. 하지만 러시아를 고립시켜야 한다는 유럽의 공감대는 어느 때보다 강합니다.”
지난 13일 서울 중구에 위치한 EU대표부에서 만난 페르난데즈 주한 EU대사는 국제 질서 유지, 민주주의 가치 수호를 위한 EU의 역할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대(對)러 제재로 인한 에너지 가격 상승 등에 대해서도 "자유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이라며 "유럽뿐 아니라 국제사회가 고통을 분담하며 러시아의 부당한 침공을 규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 정부를 향해서는 “국제 질서의 수호를 위해 역할과 책임 수행에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했다.

EU 차원의 대러 제재가 이어지면서 유럽인들도 고통을 겪고 있다.
“내 고향인 스페인에서도 최근 전기 요금이 5~6배 올랐다. 코로나19, 기후 변화 등으로 이미 힘들어진 상황에 전쟁이 겹치자 혼란이 가중됐다. 하지만 이는 유럽만의 고통이 아니다. 지리적 거리는 멀지만, 한국도 이번 전쟁 여파로 식료품 가격이 오르고 물류와 공급망 차질 등 어려움을 겪고 있지 않나. 비즈니스 업계가 치르는 대가도 크다. 하지만 국제 질서를 교란시키려는 러시아의 의도를 무너뜨리기 위해 세계가 고통 분담에 나선 것이다. 이같은 연대는 확전을 막는 데도 필수적이다. 몰도바·조지아 등 소련 분리독립국도 (침공) 위험에 처했고 폴란드와 핀란드에 대한 (러시아의) 위협도 가중되고 있다. 전쟁을 막기 위해 러시아를 국제적으로 철저하게 고립시켜야 하고, 이로 인한 고통은 '자유를 누리기 위한 대가'라 생각한다.”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에서 온 피란민들이 NGO 단체가 커피숍을 개조해 만든 드니프로의 피난처에서 식사를 하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에서 온 피란민들이 NGO 단체가 커피숍을 개조해 만든 드니프로의 피난처에서 식사를 하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개전 이후 우크라이나에서 발생한 엄청난 피란민이 폴란드·몰도바 등 주변국으로 대피했다. 난민으로 인한 어려움은 없나.
“러시아는 난민이 발생하면 유럽이 분열될 것으로 기대했겠지만, 유럽인들이 오히려 하나가 됐다. 우크라이나 인접국인 폴란드, 루마니아, 몰도바, 슬로바키아 등은 사실 경제적으로 풍족한 나라가 아니다. 하지만 기꺼이 많은 난민을 수용했다. EU 전역에 퍼진 난민 수는 600만~1000만명에 이른다. 개인적인 도움의 손길도 이어졌다. 유럽인들이 자신의 집으로 난민을 초청해 머물게 하는 등 자발적으로 도움을 주는 모습에, 정말 큰 감동을 받았다. EU 차원에서는 미사용 기금을 전용해 난민을 위한 거주지, 식품, 옷 등을 마련하고 의료 서비스 등을 지원했다. 임시보호 지침도 마련해 모든 EU 회원국에서 난민들은 체류를 하는 동안 아이들이 학교에 갈 수 있게 했다. 한국도 각종 모금행사를 열고 기부하는 등 동참했다.”
지난 2월 우크라이나가 EU 가입 신청했다. 현재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우크라이나뿐 아니라, 몰도바·조지아의 EU 가입 절차가 한꺼번에 진행 중이다. 우크라이나는 가입 신청에 필요한 질문지에 5000페이지에 달하는 답변서를 제출했다. 그만큼 EU 가입이 간절하다는 의미다. 답변서를 검토하고 회원국의 의견을 받고 있다. 우르술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우크라이나는 이미 우리 가족이고 일부”라고 말하기도 했다. 실제로 우크라이나는 이미 EU 회원국에 준하는 대우를 받고 있다. 이번 전쟁에 EU 자금으로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했는데, 이는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마리아 카스티요 페르난데즈 주한 유럽연합(EU) 대사가 13일 오후 중구 서울스퀘어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마리아 카스티요 페르난데즈 주한 유럽연합(EU) 대사가 13일 오후 중구 서울스퀘어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이번 프랑스 대선에서 한때 'EU 탈퇴'를 주장했던 마린 르펜 후보가 인기를 끌었다. 'EU의 위기'라는 분석도 나오는데.
“EU에서 35년 근무하는 동안 많은 위기를 겪었다. 그때마다 'EU 체제 붕괴'에 대한 우려가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모두 극복했다. 또 회원국 수는 15개국에서 27개국으로 늘었다. '공동 번영 추구'라는 EU의 노력에 많은 국가가 공감하고 가입을 원하는 것이다. 만약 EU를 중심으로 한 결속력이 없었다면 이번 코로나19 팬데믹 극복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EU는 다양성을 인정하면서도 결속력 발휘하는 매력적 조직이다. 다자주의가 중요해지는 상황에서 EU의 존재감은 더욱 강해질 것이다.”
한국 정부와 EU가 협력할 과제가 있다면,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연설에서 "보다 세계적인 한국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 국제질서가 도전받는 상황에서, 한국이 EU와 함께 국제질서를 수호하는 역할을 수행하며 책임을 나눠지길 기대한다. 특히 환경 문제에서 협력 강화가 필요하다. 과거 문재인 정부에서 친환경 어젠다와 관련해 야심찬 목표를 설정한 바 있는데, 이제 실행 단계에 접어들어야 한다. 무엇보다 한국과 EU는 전략적 유사입장국으로, 무역을 넘어선 포괄적 협력을 해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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