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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눈에 들어 110년 타향살이…靑 '미남석불' 고난의 전말

중앙일보

입력

5월 25일 용산 집무실 앞 집회, 반환 청원서 전달 

서울 종로구 청와대 관저 뒤편 언덕에 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미남석불)이 전시돼 있다. 고석현 기자

서울 종로구 청와대 관저 뒤편 언덕에 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미남석불)이 전시돼 있다. 고석현 기자

청와대 경내에는 1980년대 말 관저를 신축하면서 지어진 것으로 알려진 전통가옥 '침류각'이 있다. 이 침류각 뒤로 돌아가면 샘터가 하나 있는데, 그 앞엔 높이 108㎝, 너비 54.5㎝, 무릎 너비 86㎝로 풍만한 얼굴과 약간 치켜 올라간 듯한 눈이 특징인 불상이 있다. 당당하고 균형 잡힌 모습, 통일신라시대 유행한 팔각형 대좌 대신 사각형 대좌가 있다는 점이 독창적인 보물 1977호, 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이다.

불상 제작 추정 시기는 9세기. 잘생긴 용모 덕에 '미남석불'로 불리는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미남석불은 원래 경북 경주시 도지동의 사찰 이거사(移車寺)에 있었다. 일제강점기 때 고향 경주에서 반출됐다.

지역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미남석불을 본래의 자리인 경주로 옮기자는 '반환운동'이 점화됐다. 역사 적폐청산 차원에서라도 불상을 경주로 옮겨 제대로 관리·보존해야 한다면서다.

경주문화재제자리찾기운동본부는 "오는 25일 서울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30여명이 참여하는 오전 집회를 열고, 청와대 불상 반환 청원서도 윤석열 대통령 측에 전달할 예정이다"고 22일 밝혔다. 

이를 위해 운동본부 측은 지역 시민·사회단체 등을 상대로 반환 요구 서명을 받고 있다. 집회 신고 절차도 확인하고 있다. 박임관 운동본부 위원장은 "청와대도 전면 개방된 만큼 이젠 미남석불을 고향 경주로 되돌려놔야 한다"고 전했다. 해외로 밀반출된 문화재를 국내로 환수한 사례는 여러 차례 있었지만, 국내에서 함부로 옮겨진 문화재에 대한 반환 운동은 이례적이다. 

일제강점기 아픔 가진 문화유산 

청와대 경내 석조여래좌상. 연합뉴스

청와대 경내 석조여래좌상. 연합뉴스

미남석불은 일제강점기의 아픔을 고스란히 가진 유산이다. 미남석불은 대한제국이 일본의 식민지로 병탄(1910년)된 지 2년 뒤인 1912년 경주를 찾은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 초대 총독에 의해 서울로 옮겨졌다고 한다. 당시 데라우치는 경주금융조합 이사인 오히라 료조(小平亮三)라는 일본인의 집 정원에서 이 불상을 처음 봤다. 그 전에 미남석불은 경주시 도지동 이거사에 있었다는 연구가 있다.

총독인 데라우치가 불상을 마음에 두고 있는 것을 눈치챈 오히라는 서울 남산에 있었던 총독 관저로 불상을 옮겼다고 전해진다. 이렇게 고향 경주를 떠나게 된 미남석불은 다시 1927년 총독부 관저(현 청와대)를 새로 지으면서 자리를 옮겨 현재의 위치에 자리 잡게 됐다고 한다.

"반환운동은 지난 정부 때도…긍정적 검토만"

불국사. 통일신라 경덕왕 때 증축됐다. [중앙포토]

불국사. 통일신라 경덕왕 때 증축됐다. [중앙포토]

일반인이 접근하지 못하는 청와대 경내에 있다 보니 불상의 존재는 한참 동안 세간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러다 1994년 청와대 출입기자들에게 미남석불이 청와대 경내에 있다는 것이 알려졌고, 일제강점기 반출 상황도 세상 밖으로 퍼졌다.

미남석불 반환운동은 지난 정부 때도 있었다. 하지만 불상의 경주행은 긍정적으로 검토·조사만 이뤄졌고, 현실화되진 못했다.

박 위원장은 "이번에 미남석불 경주행이 결정된다면 2020년부터 이거사 터 발굴작업이 진행 중인 만큼 이거사 터 작업이 끝날 때까지 경주 불국사 같은 곳에서 종교적인 문화재로 안전하게 보존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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