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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준비했는데 "급했다"…尹 정부 들어 또 연기된 환경정책

중앙일보

입력

세종시 어진동 일회용컵 보증금제 시범매장. 편광현 기자

세종시 어진동 일회용컵 보증금제 시범매장. 편광현 기자

"소상공인 죽이는 일회용컵 보증금 제도를 기사화해주세요"
지난 11일 기자에게 이런 내용의 제보 메일이 도착했다. 부산시에서 프랜차이즈 카페를 운영한다는 제보자는 일회용컵 보증금제가 시행되면 한 달 손해가 수십만원에 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회용컵 보증금제란 소비자가 사용한 일회용컵을 프랜차이즈 카페·베이커리·패스트푸드 매장에 반납하면 보증금 300원을 돌려받는 제도다.

[현장에서] 일회용컵 보증금제 시행 3주 전 '유예'

제보자가 프랜차이즈 본사로부터 받았다는 공지문엔 일회용컵 1개당 22원의 비용을 가맹점주가 부담한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라벨비용 7원, 회수처리비용 10원, 카드수수료 5원(예상) 등이었다. '6월 10일부터 홍보 문구를 붙이지 않은 사업자에게 3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처분한다'는 안내도 있었다.

1회용 컵 보증금제도 공개 시연. 장진영 기자

1회용 컵 보증금제도 공개 시연. 장진영 기자

자영업자들의 항의가 쏟아진 건 이 제보메일이 도착했을 때부터였다. 일회용컵 관리·수거 부담뿐 아니라 라벨 구입비용까지 자영업자의 몫이라는 항의글이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확산됐다. 자영업자 반발이 거세지자 지난 18일 국민의힘에선 정부에 제도 유예를 요청했고, 결국 환경부는 지난 20일 "제도를 12월 1일까지 유예한다"며 물러섰다.

일회용컵 보증금제는 국내에서만 매년 40억개씩 버려지는 일회용컵을 재활용하기 위해 마련된 정책이다. 환경부에 따르면 이 제도로 모이게 될 플라스틱컵은 연간 23억개에 달한다. 일회용컵을 소각했을 때 나오는 온실가스를 66% 감축할 수 있고, 재활용 편익은 445억원으로 추산된다. 윤석열 대통령도 '보증금제 6월 시행'을 국정과제로 꼽았고, 새로 임명된 한화진 장관도 불과 2주 전 취임사에서 이 제도를 강조했다.

2년 준비했는데 현장선 "급했다" 

일회용컵 보증금제는 2년 전부터 예고됐는데도 현장에선 "제도 시행이 급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020년 5월 국회가 자원재활용법을 개정해 법적 근거를 마련한 뒤 정부는 프랜차이즈 본사와 상당기간 협의를 진행했다. 하지만 가맹점주들은 이달 초중순에서야 구체적인 협의 내용을 파악할 수 있었다. 경북 영주시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한 점주는 "3월 간담회까지만 해도 프랜차이즈 본사에서 대부분의 비용을 부담하는 걸로 알았다. 그런데 5월에 갑자기 가맹점주 부담을 명시한 공지문을 받았다"고 했다.

업계에선 자영업자 반발이 없었더라도 6월 10일 제도 시행이 쉽지는 않았을 거란 예상이 많았다. 보증금 300원에 대해 비과세하고 카드수수료를 면제하는 포스(POS)기가 마련된 곳이 없기 때문이다.

환경부 자원순환보증금관리센터가 시행하는 일회용컵 보증금제도. 자원순환보증금관리센터 홈페이지

환경부 자원순환보증금관리센터가 시행하는 일회용컵 보증금제도. 자원순환보증금관리센터 홈페이지

전문가들은 정부의 정책 시행이 세심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최근 가맹점주들의 항의는 대부분 미리 해결책을 마련할 수 있었던 문제다. 환경부는 본사가 아닌 자영업자인 가맹점주의 편의에 초점을 맞춰 준비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새 정부 국정과제이기도…"환경정책 또 후퇴"

새 정부에서 환경정책이 후퇴한다는 우려도 있다. 지난달 환경부는 카페 매장 내에서 일회용컵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정책을 재시행했지만 단속 및 과태료 부과는 연기했다. 이때도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자영업자 부담 완화를 이유로 정부에 유예를 권고했다. 새 정부가 자영업자 반발을 의식해 두 개의 주요 환경 정책 시행을 미룬 것이다.
누군가 반발할 때마다 정책 시행을 미룬다면 정부 정책의 신뢰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취지가 좋더라도 불편함을 주는 환경 정책에선 특히 이해 당사자를 설득하는데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제도 유예가 결정된 뒤에도 자영업자 커뮤니티엔 "제도 폐지 (국회) 청원을 부탁한다"는 글이 올라오고 있다. 청원에 동의했다는 한 자영업자는 "6개월 뒤라고 정부가 제대로 준비할 지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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