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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여성·흑인 돌풍…세계 미술시장 주류 바뀌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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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지난 19일(현지시간) 경매에 앞서 열린 소더비 뉴욕 전시. 뱅크시 작품(오른쪽)은 경매에서 철회됐고, 흑인 작가 케리 제임스 마셜 그림은 171억8500만원에 낙찰됐다. [사진 Sotheby’s, 연합뉴스]

지난 19일(현지시간) 경매에 앞서 열린 소더비 뉴욕 전시. 뱅크시 작품(오른쪽)은 경매에서 철회됐고, 흑인 작가 케리 제임스 마셜 그림은 171억8500만원에 낙찰됐다. [사진 Sotheby’s, 연합뉴스]

세계 미술시장 판도가 달라지고 있다. 안나 웨얀트(27), 루시 불(32), 에이버리 싱어(35), 크리스티나 콸레스(37), 제니퍼 패커(38) 등 40세 미만의 여성 작가들이 최근 미술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지난 20일(한국시각) 열린 미국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이들의 작품은 예상가를 훌쩍 뛰어넘어 20억~30억 원대에 팔려 시장을 놀라게 했다.

미술시장이 달아오른 건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2억8340만 달러(약 3607억원, 수수료 포함)의 매출을 올리며 마무리된 이번 소더비 경매에선 이전과 달리 여성과 흑인, 젊은 작가 작품이 눈에 띄게 강세를 보였다.

안나 웨얀트의 ‘추락하는 여자’. [사진 Sotheby’s, 연합뉴스]

안나 웨얀트의 ‘추락하는 여자’. [사진 Sotheby’s, 연합뉴스]

이번 경매에선 특히 2000년 이후 작품만 다룬 ‘더 나우(The Now)’ 부문이 특히 화제였다. 과거엔 ‘현대미술’ 부문에서 20~21세기 작품을 함께 다뤘지만, 지난해 11월부터 21세기 작품을 따로 모아 경매에 부치기 시작했다. 신진작가 작품을 찾는 컬렉터 요구에 부응하기 위한 전략이다. 이 섹션에서 여성 6명 등 9명의 아티스트가 최고가를 경신했다.

우선 2억원 안팎에 팔릴 것으로 예상했던 1995년생 작가 웨얀트의 그림 ‘추락하는 여자’가 20억6000만원(162만 달러)에 판매됐다. 치열한 경쟁 끝에 추정가의 10배 가격에 낙찰된 것이다. 1990년생 작가 루시 불의 추상화 ‘특별 손님’(2019)도 당초 1억원(8만 달러)에 팔릴 것으로 예상했으나, 그 11배인 11억5500만원(90만7200달러)에 낙찰됐다. 1984년생 패커의 그림은 30억원(235만 달러), 1985년생 콸레스의 그림은 57억6000만원(453만 달러), 1987년생 싱어의 그림은 66억8000만원(525만 달러)에 팔렸다.

뉴욕타임스는 프랑스에 기반을 둔 경매 분석업체 아트프라이스 보고서를 인용해 “지난해 40세 미만 작가들의 전 세계 그림 경매액은 2020년 대비 177% 증가했다”고 전했다. 이들의 부상이 올해 갑자기 나타난 현상은 아니란 것이다.

시몬 리의 조각 ‘버밍엄’. [사진 Sotheby’s, 연합뉴스]

시몬 리의 조각 ‘버밍엄’. [사진 Sotheby’s, 연합뉴스]

지난 4월 개막한 제59회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최고작가상)을 거머쥔 흑인 여성작가 시몬 리(55)의 흑인 여성 두상 조각 ‘버밍엄’(2012)은 예상가의 10배인 27억6000만원(217만 달러)에 낙찰됐다. 리는 이번 비엔날레에서 본 전시에 초청된 동시에 미국관 대표작가로 참여했다.

미술 전문매체 아트뉴스는 20일 “그동안 미술 경매에서 가장 큰 매출을 올린 것은 대부분 남성 작가 작품이었다”며 “‘더 나우’ 판매에 나온 작품 중 65%가 여성 작가 작품이다. 이번 미술 경매에서 드물게 성 평등이 이뤄졌다”고 전했다.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가 보여준 여성 작가 강세가 시장에서도 현실로 드러난 셈이다.

흑인 작가의 위상도 높아지고 있다. ‘더 나우’에서 최고가를 기록한 작품은 흑인 화가 케리 제임스 마셜(66)의 그림으로, 171억8500만원(1350만 달러)에 판매됐다. 마셜은 흑인의 일상과 역사를 담은 그림을 통해 흑인 정체성을 모색해 온 화가다. 마셜의 다른 작품은 2018년에도 230억원에 팔려, 당시 생존 흑인 작가 최고가 작품으로 기록됐다. 마셜은 “미국 회화 역사에 흑인 작가가 거의 없고, 특히 흑인을 그린 작품은 더 드물다는 사실을 깨닫고 미술을 시작했다”고 밝힌 바 있다.

에이버리 싱어의 ‘해프닝’(2014). [사진 Sotheby’s, 연합뉴스]

에이버리 싱어의 ‘해프닝’(2014). [사진 Sotheby’s, 연합뉴스]

한편 이번 소더비 경매에선 또다른 특별한 기록이 또 나왔다. 이혼한 미국 부동산 재벌 매클로 부부가 50년간 모아온 현대 미술품이 경매에 나와 총 판매액 약 1조1700억원(9억2200만 달러)를 기록했다. 개인 소장 컬렉션 낙찰액으로는 역대 최고다. 부부의 소장품 65점은 1차 경매(8000여 억원)에 이어 이번 2차 경매에서 3100여 억원어치 팔렸다.

이런 호황은 오는 26일 홍콩에서 열리는 크리스티 경매에서도 이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약 2290억원 규모 작품이 출품되는데, 파블로 피카소의 1969년작 ‘액자 속 남자의 흉상’이 포함됐다. 배우 숀 코너리(1930~2020)가 수집했던 것으로 추정가는 약 245억원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주가 하락, 인플레이션 영향에도 불구하고, 미술시장은 여전히 호황이다. 뉴욕타임스는 미국 미술품 딜러 데이비드 벤리몬 말을 인용해 “시장이 그 어느 때보다 강세를 보인다. 증시가 폭락할 때 사람들은 예술에 투자하려고 한다”고 전했다.

국내 미술품 시장도 호황이 이어지고 있다. 국내 양대 경매사인 서울옥션과 케이옥션에 따르면 두 회사의 1분기 매출은 모두 합쳐 325억2000만원으로, 지난해 1분기(228억1000만원)보다 42.5% 증가했다.

국내 한 갤러리 관계자는 “국내 미술계에도 ‘단색화 이후’를 이끌고 갈 중견 작가와 젊은 작가가 다수 포진해 있는데, 아직 바깥으로 향하는 문이 다 열리지 않았다”며 “지금이야말로 넓은 세계 시장을 겨냥해 이들을 더욱 적극적으로 알려야 할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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