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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 만에 뭉친 두 남자 “계단 육탄전 보면 에구구 하실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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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칸국제영화제 미드나이트 스크리닝 부문에 초청된 영화 ‘헌트’의 주연 정우성(왼쪽)과 감독 겸 공동 주연 이정재. 두 사람은 ‘태양은 없다’ 이후 23년 만에 한 작품에서 뭉쳤다. [뉴스1]

칸국제영화제 미드나이트 스크리닝 부문에 초청된 영화 ‘헌트’의 주연 정우성(왼쪽)과 감독 겸 공동 주연 이정재. 두 사람은 ‘태양은 없다’ 이후 23년 만에 한 작품에서 뭉쳤다. [뉴스1]

“태어나서 이렇게 오래 박수를 받아본 적이 없는데, (정)우성씨가 같이 있어서 그나마 긴장이 덜했죠.” ‘오징어 게임’의 월드 스타 이정재(50)도 감독 데뷔 무대에선 긴장했다. 각본·주연을 겸한 첫 연출작 ‘헌트’를 지난 20일(한국시간) 제75회 칸국제영화제 미드나이트 스크리닝에서 선보인 그는 상영 직후 7분간의 박수갈채에 “쑥스럽고 난감했다”고 했다. 배우 경력 30년이 넘는 그인데도, 외워둔 영어 멘트가 하나도 기억나지 않을 정도였단다.

얼어 있는 그를 곁에 있던 공동 주연배우 정우성(49)이 와락 껴안았다. 그 모습이 뤼미에르 대극장 스크린에 생중계됐고, 환호가 터졌다. “준비된 도전이라고 얘기할 수도 있지만, 위험한 도전이었잖아요. 그 결과물이 칸에서 상영돼 뿌듯했어요. (이정재 감독이) 그간 아주 외롭고 고독한 시간을 보냈는데 안아주고 싶었어요.”(정우성)

21일 프랑스 칸 현지에서 만난 정우성·이정재의 눈빛에서 서로에 대한 신뢰와 애정이 묻어났다. 영화 ‘태양은 없다’(1999)에서 가진 것 없는 청춘의 표상으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헌트’로 23년 만에 한 작품에서 뭉쳤다.

250억 들인 안기부 요원 소재 첩보물

영화 ‘헌트’ 시사회에 참석한 홍정인 메가박스 중앙㈜플러스엠 대표, 이정재 감독, 배우 정우성(왼쪽부터)이 인사하고 있다. [뉴스1]

영화 ‘헌트’ 시사회에 참석한 홍정인 메가박스 중앙㈜플러스엠 대표, 이정재 감독, 배우 정우성(왼쪽부터)이 인사하고 있다. [뉴스1]

‘헌트’에서 두 사람은 각자 비밀을 감춘 채 대립하는 안기부 요원 박평호(이정재)와 김정도(정우성)를 연기했다. 조직 내 북한 간첩을 색출하라는 명령에 서로를 의심하며 파멸로 치닫는다. “그릇된 신념 때문에 대립하고 갈등하지 말자”(이정재)는 메시지로 전두환 독재정권 전후 한국 현대사의 기점들을 엮어냈다. 이를 한국과 미국 워싱턴, 일본 도쿄를 무대로 한 대규모 총격 액션, 심리전에 담았다. 투자·배급사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에 따르면 총제작비가 250억원에 달한다.

원래 첩보 장르를 좋아한 이정재는 영화 ‘인천상륙작전’(2017) 출연 당시 한재림 감독 소개로 ‘헌트’의 원작 시나리오(‘남산’)를 알게 됐고, ‘대립군’(2017) 출연 즈음 영화화 판권을 샀다. 처음엔 직접 연출할 계획이 없었다. 한재림·정지우 감독이 각본 과정에서 줄줄이 하차해 결국 직접 시나리오 개발부터 착수했다. “자존심 상해서 (남이) 안 써주면 나라도 써야겠다, 했죠. 노트북이 익숙지 않아 몇 번 날려버리곤 까무러쳤죠. 시나리오라는 걸 처음 써봤어요.”

그렇게 4년이 걸렸다. “한재림도 한계가 있다고 한 시나리오를 내가 뭐라고 아집을 부리며 써나가나. 바보 같은 일이라고도 생각했죠. 한 달 있다가, 머리를 식히고 다시 생각하면 뭐가 좀 될 것 같은 느낌이 생겨 노트북 켜놓고 6시간이고 10시간이고 계속 있었어요. 한 줄이 풀리면서 쭉 써졌죠.” 시나리오의 큰 흐름을 대여섯 번 뒤집어엎었다.

대립하던 평호와 정도가 서로의 입장을 깨닫고, 한 몸처럼 뒹굴며 육탄전을 벌이고, 결국 모두 얼굴이 잿더미로 뒤덮이는 장면들에 그가 새긴 메시지는 하나다. “멍청하게 13년 동안이나 누군가의 선동 때문에 대립하고 갈등하면 안 된다는 얘기죠. 잘못됐다면 바꾸자고 얘기하고 싶었어요.”

이정재 “정우성은 생각이 섹시한 배우”

정우성은 처음에 출연 제안을 거절했다. “할 마음이 없다기보다 조심성이었다”고 했다. 두 사람이 다시 한 작품에 서는 데 23년이나 걸린 이유다. 그는 “우리가 오랜만에 (작품에서) 만나는 게, 사람들이 영화 안으로 들어오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냉정해야 했다. 우리끼리 현장에서 즐기기만 해선 안 됐다”고 말했다. 출연 결정 후엔 치열함에 집중했다. 둘은 뒤엉켜 계단을 뒹구는 치열한 육탄전을 직접 소화했다. 그는 “이젠 긴 시간 촬영하지 않아도 힘드니까 바로 치열해진다”며 “촬영 당시를 담은 홍보영상이 공개되면 아저씨들이 ‘에구구 에구구’ 하며 보실 것”이라고 했다.

정우성은 “(이정재와) 옛날에 ‘밀리언 달러 베이비’를 조조 영화로 보고 너무 뭉클해서 낮술을 했다”는 일화를 전한 뒤 “그가 선택한 작품과 연기를 볼 때마다 자극도 되고 응원하고 싶어졌다. 이정재는 나를 늘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서 칭찬을 가장 많이 해주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이정재는 “(정우성은) 생각이 섹시한 배우”라며 “잘생겼다고 해서 멋있는 연기를 할 수는 없다. 생각이 멋지고 바르고 섹시해야지 그 모습과 행동이 나온다. 정우성씨에겐 그 모든 게 있어서 찍기 편했다”고 말했다. ‘헌트’는 오는 8월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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