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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초밥십인분이 고발한다

'F12'로 내문서 수정한 게 해킹? '괘씸죄 고소' 민주당 어이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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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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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대선 때 이재명 후보 측이 만든 '재밍' 게임에서 고득점 순으로 정리된 랭킹. 이 후보가 불편함을 느낄만한 닉네임들이다. 배경은 경찰의 압수수색 장면. 그래픽=김경진 기자

지난 대선 때 이재명 후보 측이 만든 '재밍' 게임에서 고득점 순으로 정리된 랭킹. 이 후보가 불편함을 느낄만한 닉네임들이다. 배경은 경찰의 압수수색 장면. 그래픽=김경진 기자

2022년 4월 28일 아침, 출근을 준비하다가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경찰이었다. 집에 있느냐고 물어본 뒤 만나자고 했다. 태어나서 처음 겪는 일이라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어렴풋이 짐작 가는 일은 있었다. 대선 기간이었던 지난 2월 22일 더불어민주당이 낸 보도자료가 떠올랐다. 제목은 ‘사이버 공격 선동, 실행한 네티즌 고소 추진’이었다. 현관문을 열고 나가자마자 내 손에 압수수색영장이 쥐어졌다. 범죄 사실에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컴퓨터 등 장애 업무방해’라고 쓰여있었다. 간단히 말해 내가 해킹과 업무방해라는 죄를 지었다는 얘기였다. 영장엔 내 계정 정보와 더불어 이런 글과 숫자가 적혀 있었다. '재밍 닉네임: 사라진초밥십인분, 게임점수: 99,999.' 대선 때 이재명 후보 측이 만든 '재밍' 게임에서 나, 그러니까 사라진초밥십인분이 9만9999점을 기록한 게 문제라는 거였다.

지난 대선 때 이재명 후보 측이 홍보용으로 만든 '재밍' 게임 초기 화면. [게임 홈페이지 캡처]

지난 대선 때 이재명 후보 측이 홍보용으로 만든 '재밍' 게임 초기 화면. [게임 홈페이지 캡처]

부정·분노·우울로 이어진 압수수색 체험 

마치 죽음의 5단계 같았다. 시한부 판정을 받은 환자는 부정·분노·협상·우울·수용의 5단계를 거친 후 비로소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인다고 한다. 나도 그랬다. 처음 상태는 ‘부정’이었다. 집을 수색당하고 휴대전화를 빼앗기는 눈앞의 현실이 믿기 힘들었다. 몇 달 전 가볍게 한 게임 몇 판이 이런 결과로 돌아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그저 멍하니 방구석 의자에 기대어 이 상황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정오쯤 되자 모든 절차가 마무리됐고, 나는 방에 홀로 남았다. 여전히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다음 날도 마찬가지였다. 몸은 일터에 있었지만, 머릿속은 온통 전날에 겪은 압수수색 생각뿐이었다. 퇴근길에 나와 같은 방향으로 걷는 사람들은 전부 나를 미행하는 것 같았다. 집 근처에 주차된 차는 모두 나를 감시하는 잠복 형사가 탄 게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그리고 그 다음 날, 2단계가 시작됐다. ‘분노’였다. 여기에서 약간의 기술적 설명을 해야 할 것 같다. 내가 재밍 게임에서 9만9999점으로 한동안 1등에 오른 경위는 이렇다. 컴퓨터에서 워드 문서 파일을 열면 글 내용은 물론 글씨 크기와 간격을 몇으로 설정했는지를 알 수 있는 것처럼 우리가 컴퓨터를 열면 보이는 인터넷 화면 역시 브라우저에서 F12키만 누르면 그 화면이 실제로 구성된 내용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문서를 수정할 수 있는 것처럼 F12키를 통해 재밍 게임의 점수도 손쉽게 높은 점수로 변경할 수 있다.

해킹 아닌 단순한 정보 입력이었다 

이는 어디까지나 내 컴퓨터 안의 문서를 수정한 것이지 게임 서버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따라서 민주당 보도자료에 적혀있는 ‘서버에 접근’이란 말은 애초에 성립하지 않는다. 단지 내 컴퓨터의 문서 내용을 그대로 서버에 저장하는 ‘재밍’ 게임의 구조가 ‘사라진초밥십인분’을 1등으로 만든 것뿐이다. 사이버 공격이 아니라 '내 문서 수정'이었다. 업무방해? 서버가 다운된 것도 아니고, 오히려 이 게임이 화제가 돼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 홍보에 잘 활용했는데 어떤 부분이 업무방해라는 것인가? 선동 역시 한 적이 없다. 우연히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이 게임이 유행하는 걸 알고 따라서 참가했을 뿐이다. 그러나 민주당 보도자료에 의하면 나는 희대의 사이버 공격 선동가였다.

분노했다. 압수수색을 당하고 휴대전화를 빼앗길 만큼 나쁜 짓은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면 아무도 기억조차 못 할 일이었다. 민주당이 진짜로 고소하지 않았다면 평소 글쓰기와도 거리가 먼 내가 중앙일보에 이런 글을 쓸 일조차 없었을 것이다. 그들의 고소가 재미를 좇던 평범한 회사원 ‘사라진초밥십인분’을 분노한 투사로 만들었다. 페이스북에 입장문을 올렸다. 몇몇 지인에게 연락해 이 상황을 널리 알려주길 부탁했다. 소시민도 거대 정당에 맞서 싸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하나둘 기사가 났다. 기자들의 연락도 받았다. 어느 정도 화가 풀렸다.

사라진초밥십인분이 SNS에 올린 글. [SNS 캡처]

사라진초밥십인분이 SNS에 올린 글. [SNS 캡처]

그리고 다음 단계가 찾아왔다. ‘우울’이었다. '협상' 단계는 생략됐다. 처음부터 협상을 할 대화 창구는 없었고 일방적으로 당한 일이니 당연하다.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받은 고소장에 적힌 범죄사실은 단 여섯 줄이었다. 분량이 문제가 아니라 범죄 근거 자체가 제대로 기술되지 않은 고소장이었다. 그 안에 적힌 ‘관리자 권한 침입’은 컴퓨터 관련 지식이 조금만 있어도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주장인지 알 것이다. 내가 F12 키로 내 문서를 수정한 게 어떻게 관리자 권한 침입이 될 수가 있나? 경찰 조사에서 적절한 소명을 거쳐 무혐의 처분을 받는다고 해도 결국 나에게 남는 것은 상처투성이 승리뿐이다. 그동안 받은 정신적 고통, 낭비한 시간, 비용은 누가 보상해 줄 것인가? 167석을 가진 대한민국 다수당과 싸우기에 일개 개인은 무력하기 그지없다. 괴롭히기용 고소라는 내 판단은 우울감을 더했다.

'불온한' 닉네임 때문에 고소됐을 것

사실 수십 명이 ‘사라진초밥십인분’의 점수를 가볍게 뛰어넘었다. 심지어 무한대 점수를 기록한 사람까지 나왔다. 조직적 선동을 통한 사이버 공격이 아닌, F12키를 통해 손쉽게 점수에 접근이 가능하도록 설계된 게임 프로그램의 구조적 허점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 하지만 그중 단 세 명만이 고소 대상이 됐다. 뒤늦게 어떤 기자를 통해 알게 된 내용이다. 나머지 둘이 누군지는 모른다. 민주당이나 이재명 후보 측이 가장 마음에 안 드는, 이 후보의 아픈 부분을 건드리는 닉네임을 가진 세 명을 선별해 고소한 것으로 짐작할 뿐이다.

'재밍' 개임에는 사라진초밥십인분의 9만9999점을 뛰어넘는 점수가 많이 기록됐다. 무한대까지 있었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은 세 명만 고소했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재밍' 개임에는 사라진초밥십인분의 9만9999점을 뛰어넘는 점수가 많이 기록됐다. 무한대까지 있었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은 세 명만 고소했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현재는 ‘수용’ 상태 같다. 일어난 일은 돌이킬 수 없다. 나의 일상을 지키며 최대한 흔들리지 않도록 하고자 한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한다. 이미 민주당의 시대는 저물기 시작했다. ‘우린 무조건 옳고 상대는 무조건 나쁘다’는 그들의 이분법적 세계관은 지난 5년 동안 국민을 분열시키며 수많은 갈등을 빚었고 5년 만에 정권을 내놓게 됐다. 최근 민주당 의원의 '짤짤이' 논란만 봐도 알 수 있다. 이들은 자정 능력을 상실했기에 앞으로의 미래도 밝아 보이지 않는다. 내가 할 수 있는 복수는 내 자리를 굳게 지키며 이들의 미래를 지켜보는 일이 될 것이다. 부디 윤석열 정부는 이들을 반면교사로 삼아 교만하지 않고 표현의 자유가 살아있는 세상을 만들어가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