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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선, 13조 투자..."실망시키지 않겠다" 바이든의 세일즈 외교 [바이든 순방 동행기]②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2일 서울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에게 미국 투자에 대한 감사를 표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2일 서울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에게 미국 투자에 대한 감사를 표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체어맨 정, 미국을 선택해줘서 감사합니다. 우리는 당신을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세계 최강국 미국 대통령 입에서 “실망시키지 않겠다(We will not let you down)”는 말이 나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2일 서울 그랜드하얏트 호텔에서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을 만난 뒤 생중계 연설 중에 이렇게 말했다. 현대차그룹이 미국 조지아주에 55억 달러(약 7조원)를 들여 전기차 전용 공장과 배터리셀 공장을 짓는 등 총 100억 달러(약 12조원) 대미 신규 투자를 발표한 데 대한 감사의 표현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한국 도착 첫날인 지난 20일엔 경기도 평택에 있는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견학했다. 삼성 임직원과 한·미 양국 기자들 앞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향해 “삼성이 지난 5월 미국에 170억 달러(약 21조원)를 투자해 이 시설 같은 최첨단 반도체 칩을 제조하는 시설을 만들겠다고 발표한 데 대해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취임 후 처음 한국을 찾은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20~22일 2박 3일 짧은 일정 중에 기업 총수를 두 차례 만났다. 핵심 일정이었던 한·미 정상회담과 정상 만찬 못지않은 비중을 차지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방한 어젠다는 역대 미국 대통령과 동일하게 당연히 안보가 핵심 이슈였다. 그런데 이번엔 안보만큼이나 경제 세일즈라는 보따리를 들고 왔다. 삼성 반도체와 현대 전기차로 대표되는 재계 일정이다.

이번 바이든 방한에서 한국은 동맹 강화와 안보 협력, 북핵 대응 등 지난 70년간 한ㆍ미 대화를 지배한 전통적 어젠다를 강조했다. 양국은 도널드 트럼프, 문재인 두 전임 대통령을 거치며 약해진 것으로 평가받는 한·미 동맹, 안보 협력, 북핵 대응 등을 이전 상태로 되돌리거나 강화하기로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여기에 더해 경제, 즉 먹고 사는 문제를 전면에 올렸다. 백악관은 커뮤니케이션 수단 가운데 특별히 강조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을 때 대통령 발언(remarks)을 주로 활용하는데, 삼성전자와 현대차 일정에 각각 9분, 7분 안팎의 발언을 배치한 게 이를 보여준다.

세계 유일 초강대국 미국 대통령이 ‘세일즈 외교’에 나선, 보기 드문 모습이다. 기업 방문, 대기업 총수 두 명과 각각 회동은 역대 미국 대통령의 방한에선 흔치 않았다.

세일즈 외교란 말은 영어에서는 안 쓰는, 한국식 표현이다. 대통령이 세일즈맨처럼 여러 나라를 누비며 외교력을 발휘해 국익에 도움 되는 거래를 성사시킨다는 의미로 쓰인다. 그런데 경제 성장기 한국에서 자주 쓰던 ‘세일즈 외교’가 이번 바이든 방한에 딱 맞아 떨어진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2일 서울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과 언론 행사를 마치고 건물로 걸어가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2일 서울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과 언론 행사를 마치고 건물로 걸어가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은 세계에서 돈이 가장 많이 몰리는, 해외직접투자의 종착역이다. 그런데도 바이든 대통령이 한국 기업 유치에 열을 올리는 건 일자리 만들기와 첨단 제품 미국 내 생산이라는 두 요소가 결합했기 때문이다.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5개월 앞둔 바이든 대통령은 “제대로 돈을 받는 노동조합 일자리(good paying union job)”를 확대하겠다는 대선 공약의 마감시한이 임박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사태 이후 반도체 품귀 현상으로 자동차 공장이 멈춰선 경험을 한 미국인들에게 반도체, 배터리 등 첨단 제품 공급망을 재편하겠다고 약속했다. 미국 제조업 강화를 위해 국내 생산품을 우대하는 ‘바이 아메리칸(Buy American)’ 정책의 결실도 필요하다. 한국에 찾아와 세일즈 외교에 나선 이유다.

아직은 한ㆍ미 양국 모두 '윈윈'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한국 기업 입장에선 거대한 미국 시장, 여전히 미국이 앞서는 첨단 기술과 설비, 소재 협력이 필요하다. 민주주의와 권위주의의 진영 간 대결이 심화하고 또 다른 감염병 리스크를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미국이 주도하는 산업 정책, 공급망 재편에 올라타지 않을 수도 없다. 단 이런 현상이 일방적으로 지속하고 점점 확대된다면 한·미 간 일자리 경쟁은 제로섬(zero-sum) 게임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 역시 존재한다.

뭐가 됐건 이번 바이든 대통령 방한은 세계 최강대국 대통령도 경제 살리기를 위해선 팔을 걷어부치고 해외에 나가 기업 총수를 만나 직접 세일즈 외교에 나선다는 선명한 선례를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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