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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서 ‘경제’ 챙긴 바이든, 日 가서는 中 때린다 [한·미 정상회담]

중앙일보

입력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의 4박 5일 한ㆍ일 순방은 '경제 안보'와 '중국 견제'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데 초점을 맞췄다. 한국에선 전자에, 일본에선 후자에 방점을 찍으면서 한ㆍ미 및 미ㆍ일 동맹을 포괄하는 역내 협력 선언으로 피날레를 장식할 예정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2일 오전 방한 중 머물렀던 숙소인 서울 용산구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을 만난 뒤 연설하는 모습.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2일 오전 방한 중 머물렀던 숙소인 서울 용산구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을 만난 뒤 연설하는 모습. 연합뉴스.

경제 성과 확 땡긴 美

바이든 대통령의 방한에서 키워드는 확실했다. 안보 동맹을 넘어 기술 동맹으로 진화하는 한·미 관계와 이를 통한 경제적 윈-윈이었다.

20일 방한 첫 일정으로 삼성전자 평택 캠퍼스를 둘러본 바이든 대통령은 엄지를 치켜세웠고 "땡큐"를 외쳤다. 지난해 5월 삼성의 텍사스주 투자로 인한 일자리 창출 효과를 강조하면서다.

이튿날인 21일 한ㆍ미 정상회담 기자회견에서도 그는 삼성 등 한국 기업의 대미 투자를 언급하며 "투자를 통해 한ㆍ미는 더 가까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5월 워싱턴에서 열렸던 한ㆍ미 정상회담 후 그가 한국 기업 대표들을 일으켜 세우며 "땡큐, 땡큐, 땡큐"를 외쳤던 장면의 데자뷔다.

바이든 대통령은 방한 마지막 날인 22일 오전도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면담에 할애했다. 정 회장은 이번 바이든 대통령의 방한에 맞춰 오는 2025년까지 총 13조원(105억 달러)의 대미 투자를 공약했는데,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을 선택해 감사하다. 현대차를 실망시키지 않겠다"고 말했다.

미 대통령이 방한 중 한국 기업의 생산 공정을 직접 둘러보거나 재계 총수와 단독 면담을 하는 일정 자체가 이례적이다. 기업가 출신인 전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2019년 6월 방한 때도 주요 기업 총수들을 호텔로 불러 간담회를 갖는 정도였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일 경기 평택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둘러보던 중 양손 엄지 손가락을 든 모습. 대통령실사진기자단. 뉴스1.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일 경기 평택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둘러보던 중 양손 엄지 손가락을 든 모습. 대통령실사진기자단. 뉴스1.

중간 선거 포석 성격도

미국은 윤석열 정부의 '동맹 업그레이드 의지'가 실질적인 경제 협력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특히 공을 들인다는 분석이 나온다. 21일 공개된 한ㆍ미 정상 간 공동성명에도 '전략적 경제ㆍ기술 파트너십' 챕터를 따로 두고 공급망ㆍ기술 관련 협력을 구체적으로 명시했다.

이는 바이든 대통령의 국내 정치적 성과로도 이어진다. 막대한 투자는 곧 일자리 창출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또 바이든 대통령은 방한 중 삼성의 텍사스주 투자, 현대차의 조지아주 투자를 콕 집어 감사를 표했다. 두 지역 모두 전통적인 공화당 텃밭이지만, 최근에는 민주당 기세가 무섭다. 지난 2020년 대선 때 조지아는 공화당의 트럼프 전 대통령 대신 민주당의 바이든 대통령을 택했다. 텍사스주 선거인단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가져갔지만, 지지율 차이는 불과 5.6%p 차이였다.

중간선거를 앞두고 지지율이 곤두박질치는 가운데 두 지역에 대해 삼성과 현대차가 '선물 보따리'를 풀었으니 바이든 대통령으로서는 감사를 연발할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일 경기 평택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만나 웨이퍼에 서명하는 모습. 대통령실사진기자단. 뉴스1.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일 경기 평택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만나 웨이퍼에 서명하는 모습. 대통령실사진기자단. 뉴스1.

중국 견제는 日과 손 잡고

기업인 만남, 경제 협력 강화에 초점을 맞춘 방한 일정과 달리, 22일 저녁부터 시작되는 바이든 대통령의 방일 일정은 일왕 면담, 미ㆍ일 정상회담, 인도ㆍ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 출범식, 쿼드(QUAD) 정상회의 등 정치적 만남으로 채워졌다. 민간 부문 접촉은 납북자 가족 면담 정도로, 대부분 대중 견제를 위한 인도ㆍ태평양 구상 강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23일 미ㆍ일 정상회담 공동성명에도 선명한 대중 압박 메시지가 담길 전망이다. 일본 언론들은 예상 문안으로 "중국의 행동을 '억지'(deter)하고 미ㆍ일이 협력해 이에 '대처'(respond)한다"(니혼게이자이, 18일), "중국 핵 전력의 투명성 제고와 핵 군축을 촉구한다"(요미우리, 20일) 등을 보도했다.

앞서 한ㆍ미 공동성명에선 중국 관련 문구의 수위를 대체로 예년 수준으로 유지했는데, 이때 미처 못 낸 중국 견제 메시지를 일본과는 충분히 낼 거란 전망이 나온다. 바이든 대통령은 일본에서 23일 IPEF 공식 출범을 선언하고 24일쿼드 대면 정상회의로 일정을 마무리하면서 미국 주도의 인·태 지역 구상을 밝히는 것으로 이번 순방의 피날레를 장식하게 된다. 경제와 안보의 양대 산맥으로 중국을 압박하는 전략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1일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한미 정상 환영만찬에서 건배 제의를 하는 모습.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1일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한미 정상 환영만찬에서 건배 제의를 하는 모습. 대통령실사진기자단.

한ㆍ일 관계엔 ‘직구’ 아닌 ‘변화구’

이번 순방을 앞두고 악화된 한·일 관계와 관련해 바이든 대통령이 '중재자' 역할을 할지도 관심을 모았는데, 이번에는 관계 개선을 직접 중재하기보단 양국을 한 데 묶을 보다 포괄적인 다자 협력의 틀을 강화하는 데 집중하는 모양새다. 양자 관계의 즉각적인 변화는 어려운 만큼 미국 주도의 인·태 전략 다자 틀에 양국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여서 자연스럽게 공통의 이익을 발굴하고 협력으로 나아가도록 하는 전략이다.

실제 미국 주도의 IPEF 출범국에 한ㆍ일 모두 참여했다. 한국이 참여하지 않는 쿼드에 대해서도 이번 한ㆍ미 공동성명에 "쿼드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관심을 환영하고, 전염병 퇴치, 기후변화 대응, 핵심기술 개발 등 한국이 지닌 보완적 강점에 주목한다"는 문구를 명시했다.

손열 동아시아연구원장은 "미국은 한국과 일본 등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와 공급망 협력을 한다는 대의 아래 인·태 지역에서 존재감을 높이고 있다"며 "그간 한국 경제에 타격을 줬던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 사드 보복 등 중국의 경제 강압 행보도 미국이 추진하는 공급망 안정화 노력이 결실을 맺으면 향후 재발을 막을 수 있는 문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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