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가전 업계의 화두는 ‘라이프 스타일’이다. 사용자의 생활 양식에 초점을 맞춰 필요와 취향을 섬세하게 반영하는 가전이라는 의미에서 라이프스타일 가전이라는 카테고리가 생길 정도다. 1인 가구가 40%를 넘어선 지금, 가전 업계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1인 가구는 어떤 가전을 원하고 또 어떻게 소비할까.
혼자서도 잘 먹고 혼자서도 잘 살아요 #'1코노미(1인 이코노미)' 가이드
생활 가전은 소소익선, 서비스로 대체도
중견기업에 다니는 1인 가구 이은화(39)씨는 최근 이사를 하면서 기존 오래된 대형 세탁기 대신 10kg 소형 세탁기를 들였다. 평소 빨래 양이 많지 않은 데다 대부분 ‘런드리고’같은 세탁 대행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운동복이나 속옷, 수건 몇장 정도가 고작이라 일반 대형 세탁기가 거추장스러웠다고 한다.
‘나 혼자 사는 집’에서는 생활 필수품으로 불리는 가전도 필수가 아닐 수 있다. 4인 가구에 맞춰졌던 냉장고·세탁기·에어컨·건조기·식기 세척기 등에 ‘소형’ 선택지가 등장하고 있는 이유다. 모바일 리서치업체 오픈서베이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1인 가구트렌드 리포트 2021’에 따르면 1인 가구는 소형가전 구매 시 가격 할인 여부와 제품 사이즈에 대해서 중요하게 고려하는 편으로 나타났다. 또 1인 가구에서 연령이 낮을수록 식사·반찬 정기 배송이나 세탁 대행 서비스 이용 경험률이 높게 나타났다. 구매를 희망하는 소형·1인 특화 가전은 1인용 소파와 소형 식기세척기, 소형 에어프라이어, 소형 무선 청소기 순이었다. 특히 20대 1인 가구의 경우 1인 특화 가전·가구에 대한 필요가 40~50대보다 높게 나타났다.
젊은 1인 가구의 생활 방식이 달라지면서 생활 가전 업계도 맞춤 제품을 내놓고 있다. 아직 세탁기·냉장고 등에서는 변화가 크지 않지만, 기존 1인 가구를 위한 선택지가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식기 세척기나 무선 청소기, 에어컨 등에서 특히 소형화·경량화 바람이 세다. SK매직의 소형 식기세척기, 파세코 창문형 에어컨, 삼성전자 비스포크 슬림 무선청소기 등이다. 1인 가구는 아니지만 가전제품을 자신의 방에 따로 두고 사는 경우 많이 찾는 소형 냉장고나 이동식 TV 등도 등장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1인 가구나 개별 냉방이 필요한 사용자 요구에 맞춘 창문형 에어컨의 판매가 좋은 편이다. 하이마트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5월 18일까지 전년 같은 기간 대비 창문형 에어컨의 판매 신장률은 60%다.
취향 가전은 거거익선, 고급 찾는다
반면 1인 가구라고 해서 무조건 작고 가벼운 가전을 선호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하이마트 관계자는 “소비 수준이 높은 1인 가구의 경우 다인 가구보다 더 프리미엄 급 가전을 찾는 경우도 많다”며 “TV나 오디오, 에스프레소 머신 등 취미나 취향이 반영된 가전의 경우가 특히 그렇다”고 전했다.
혼자만의 휴식을 중시하는 1인 가구일수록 TV·오디오 등에 투자하는 이들이 많다. 영화관 효과를 내는 빔프로젝터 등의 소비도 늘고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투자하는 ‘가심비’ 효과다. 실제로 TV 시장은 70·80인치 대형 TV 시장이 성장세다. 크기는 작더라도 LG전자 ‘스탠바이미’, 삼성전자 ‘더 세리프 TV’ 등 기능과 디자인을 고급화한 제품도 인기를 끌고 있다. 전자랜드 관계자는 “1인 가구 소비자들은 인테리어에 민감해 오프라인 매장에서 제품의 디자인과 색감을 직접 확인하는 소비자들이 많다”며 “TV·빔프로젝터·오디오 등 여가를 즐기기 위한 가전은 오히려 높은 품질의 콘텐트를 즐기기 위해 프리미엄 제품을 찾는 경향도 보인다”고 말했다.
늘어나는 고가 가전을 위한 렌털(대여) 서비스도 인기다. G마켓은 늘어나는 렌털 가전 수요를 겨냥, 지난 4월 18일 ‘장사의 신동 LG전자 렌털편’ 라이브방송을 진행했다. LG 가전제품 중 정수기·공기청정기·스타일러 등 인기 제품 11종을 할인가에 선보인 이 방송은 누적 시청자가 약 107만명에 달했다. 실제 렌털 서비스 판매도 늘고 있다. G마켓에서 2020년 한 해 동안 정수기·공기청정기·의류 건조기 등의 렌털 서비스 판매액은 전년 대비 258% 증가했다.
1인 나노 사회, ‘필요’는 찾는 것
1인 가구가 늘면서 대세 가전은 사라지고 특정 소비자층을 겨냥한 ‘틈새 가전’도 늘고 있다. 이른바 백색 가전이라 불렸던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가전 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다. 대부분이 좋아하는 것을 공략하기보다 한 명이라도 확실하게 좋아하는 것을 공략해야 살아남을 확률이 높다.
‘홈술’을 위해 집에 맥주를 제조하는 수제 맥주 기계를 놓거나, 식물을 보며 힐링하는 ‘식집사’들은 식물 재배기를 두기도 한다. 누구보다 신발에 진심이라 수백 켤레의 스니커즈를 모은 신발 마니아들에게 신발 관리기는 필수 가전이다. 소비 트렌드 전문가 이향은 LG전자 고객경험혁신담당 상무는 “과거 세분된 취향을 다루는 가전들이 ‘시도’의 영역에 머물렀다면 이제는 가전 업체들 스스로가 진지하게 몰두하는 영역이 됐다”며 “1인 가구를 중심으로 한 나노 사회에선 대세 트렌드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보다 세분된 라이프 스타일을 연구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 취미 가전, 취향 가전의 영역은 점점 커질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