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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만찬 '핫포엔' 고른 기시다…中쑨원의 비밀 숨어있다

중앙일보

입력

‘신뢰관계를 쌓을 수 있는 조용한 곳.’
취임 후 처음으로 일본을 찾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위해 일본 기시다 총리가 ‘핫포엔(八芳園)’을 만찬 장소로 골랐다. 도쿄(東京) 미나토(港)구에 있는 핫포엔은 에도시대 특유의 정원을 감상할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22일 한국에서의 일정을 마친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밤 일본을 찾는다. 도착 이튿날인 23일엔 일왕 부부를 접견한 뒤, 영빈관에서 기시다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게 된다. 오찬 후엔 공동 기자회견에도 참석할 예정이다.

조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EPA.AP= 연합뉴스]

조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EPA.AP= 연합뉴스]

지지통신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기자회견을 끝내고 부담을 던 바이든을 위해 기시다 총리가 만찬 장소로 정한 곳이 핫포엔이다. 에도시대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측근의 저택이기도 한 이곳은 정원 안에 일본식 음식점과 찻집이 있다. 수려한 풍경 때문에 결혼식도 종종 열린다. 정원에서 수백년 된 분재들을 감상할 수 있어 관광객들도 즐겨 찾는다.

TV아사히는 “일본 정원을 감상하는 것 외에도 기시다 총리 부인 유코(裕子) 여사가 차를 끓여 바이든 대통령을 대접하는 안도 검토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지지통신은 핫포엔을 만찬장소로 선정한 배경으로 ‘신뢰관계 구축’을 꼽았다. 정상간의 일정이 단시간의 회의 일정으로만 꾸려져 있어 ‘조용한 환경에서 개인적 신뢰관계’를 쌓을 장소가 필요했다는 뜻이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지난 20일 한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기시다 총리와의 만찬에 대해 ‘소박한 저녁식사(small dinner)’라고 칭했다.

후지뉴스네트워크(FNN)는 또 다른 설명을 내놓기도 했다. 핫포엔에 있는 일본 음식점엔 중국의 혁명의 아버지로 불리는 쑨원(孫文)이 당시 반청운동을 주도하면서 만일의 상황을 대비해 만든 탈출구가 존재하는데, 이를 바이든 대통령에게 기시다 총리가 설명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자연스럽게 ‘중국’을 화제로 삼을 수 있는 환경인 만큼, 최근 중국의 영향력 확대 등 군사·정치·경제 행보를 둘러싼 양국 정상의 공감대 형성이 이뤄질 수 있는 대목이라는 의미다.

기시다와 손잡은 바이든 ‘중국 견제’ 계속

일본 언론들은 이번 바이든의 일본 방문을 ‘중국 견제’의 연장선으로 보고 있다. NHK는 바이든의 일본 방문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속에서 미국의 인도·태평양 지역에 대한 관심은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하는 데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이 우크라이나 사태에 집중하는 사이 중국이 군사력을 키워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불식시키겠다는 계산이 깔려있다는 얘기다.

NHK는 “미국으로선 이번 일본 방문이 중국의 군사적 압력에 노출돼 있는 대만에 대한 미국의 메시지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도 짚었다. 지난해 10월 바이든 대통령이 제안한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P)도 같은 맥락으로, 경제적 측면에서의 중국 압박용 카드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요미우리신문은 특히 양국 정상이 이번 회담을 계기로 중국에 핵보유 투명성을 요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국이 미국과 러시아에 이어 세계에서 세번째로 많은 핵탄두를 보유한 국가지만, 구체적인 수치를 공개하고 있지 않아 이번 정상회담 후 성명을 통해 중국에 대해 ‘핵전력 투명성’을 요구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TV아사히는 기시다 총리가 정상회담에서 지역 안전보장 관점에서 일본의 ‘방위비 증액’도 언급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아베 전 총리 등 강경파를 중심으로 방위비를 일본 GDP(국내총생산)의 2%로 확대하자는 주장이 일고 있는데, 기시다 총리가 이 문제를 안건으로 꺼내들 것이라는 얘기다.

한편 바이든 대통령은 오는 24일 일본, 인도, 호주가 참여하는 쿼드(Quad) 정상회의에 참석한 뒤 3일간의 일본 방문 일정을 마치고 돌아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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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현직 대통령 가운데 일본을 제일 먼저 찾은 사람은 제럴드 포드 대통령(1974년)이었다. 이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일본을 1983년에 방문했는데, 당시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曽根康弘) 총리와 합이 잘 맞아 서로를 ‘론’, ‘야스’라고 불렀다. 단단한 미·일 동맹을 과시하듯 나카소네 총리는 별장으로 레이건 대통령을 초대하기도 했다.

조지 H.W. 부시 대통령은 1992년 일본을 방문했는데, 만찬을 하다 쓰러져 응급처치를 받기도 했다. 당시 부시 나이는 67세. 부축을 받고 일어나긴 했는데, 구급차 신세를 져야만 했다. 미국은 당시 쌀 시장 개방과 자동차 교역 등을 주장하고 있었는데, 부시 대통령은 일본에서 테니스 경기에 참여하는 등 ‘무리’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2019년 5월 26일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이 일본 도쿄 미나토구 롯폰기의 한 화로구이 전문점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당시 일본 총리와 부부와 저녁 식사를 하고 있다. 일본 정부가 공개한 자료에 의하면 이날 만찬을 위해 206만엔(약 2100만원)이 들었다. [고도=연합뉴스]

지난 2019년 5월 26일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이 일본 도쿄 미나토구 롯폰기의 한 화로구이 전문점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당시 일본 총리와 부부와 저녁 식사를 하고 있다. 일본 정부가 공개한 자료에 의하면 이날 만찬을 위해 206만엔(약 2100만원)이 들었다. [고도=연합뉴스]

일본을 가장 많이 찾은 사람은 빌 클린턴으로 총 5회를 방문했다. 오키나와 미군기지 축소를 결정한 것도 그였다. 클린턴 대통령은 일본을 찾을 땐 종종 도쿄 도심 왕궁 주변을 조깅하는 모습이 포착되곤 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9·11 테러를 계기로 일본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했다. 2002년에 도쿄에 이어 2005년에 교토에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 純一郎) 총리와 만났을 땐, “가족처럼 생각한다”며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방일은 지난 2009년에 이뤄졌는데, ‘미국과 대등한 외교’를 주장하는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총리와 만났다. 오마바는 회고록을 통해 “일본 정치가 경직되고 방향성을 잃었다”며 당시에 대한 비판을 남기기도 했다. 2014년 오바마가 일본을 다시 찾았을 땐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대접을 놓고 논란이 일었다. 미식가들 사이에서 유명한 도쿄 긴자의 초밥집에서 만찬을 하며 ‘개인적 친분’을 쌓으려 했던 아베는 “오바마 대통령이 초밥을 좋아했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오바마가 초밥을 절반가량 남겼다는 보도가 나오면서다.

가장 많은 화제를 낳은 것은 역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었다. 골프를 좋아하는 트럼프를 위해 아베 총리는 함께 골프를 치고, 화로구이 전문점에서 만찬을 했다. 스모 경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시상을 하도록 하기도 했는데, 트럼프의 방일을 위해 일본 정부가 지출한 비용은 식사를 포함해 한화로 약 4억원에 달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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