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기술로 확장된 동맹…첨단기술·공급망·원전 함께 간다 [한·미 정상회담]

중앙일보

입력 2022.05.21 19:21

업데이트 2022.05.21 23:25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1일 정상회담에서 한미 동맹을 경제·기술 동맹으로 확장하겠다고 공식화했다. 한미 동맹이 전통적인 군사·안보 동맹을 넘어 이젠 첨단기술·공급망·원자력 발전소 등을 망라하는 ‘글로벌 포괄적 전략동맹’으로 격상한 것이다. 과거 6·25와 베트남전 파병으로 맺은 혈맹 관계가 미래 핵심 산업에서의 경제·기술 동맹으로 진화하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한미정상회담을 위해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 도착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영접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한미정상회담을 위해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 도착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영접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 대통령은 공동기자회견에서 “저와 바이든 대통령은 반도체·배터리·원자력·우주개발·사이버 등 새로운 산업 분야에서 실질적인 협력을 강화해 나가기로 했다”며 “그 첫걸음으로, 대통령실 간 ‘경제안보대화’를 신설해 공급망과 첨단 과학기술 등 경제안보 분야에서 양국이 수시 소통하고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경제안보대화 신설…반도체·배터리 기술 보호

기획재정부·산업통상자원부 등 경제부처에 따르면 양국은 반도체·배터리·인공지능(AI) 등 미래 먹거리인 첨단기술 분야에서 기업 간 협력을 넘어 국가 간 협력으로 동맹의 수준을 끌어올리기로 했다. 이는 반도체·배터리 등의 첨단기술을 확보하는 것이 이제는 단순히 경제적 측면 뿐만 아니라 안보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반도체, 전기차용 배터리, 바이오 기술 등 핵심 및 신흥 기술을 보호하기 위한 민관 협력을 강화하고, 반도체·배터리·핵심광물 등 주요 품목의 공급망 안정을 위해 장관급 공급망·산업대화를 설치한다. 또 선진기술의 사용이 한미 양국의 국가·경제안보를 침해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필요한 핵심기술 관련 해외 투자심사 및 수출통제 당국 간 협력을 제고하기로 합의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가진 뒤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가진 뒤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이처럼 양국이 첨단 기술 분야에서 손을 잡은 것은 양국의 이익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반도체의 경우 설계 부분은 미국이 강점이 있고, 제조 분야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국내 기업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어 시너지를 낼 수 있다. 중국 업체와 치열하게 경쟁하는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도 ‘윈윈’이 기대된다. 미국 자동차 업계 빅3 중 GM은 LG엔솔, 포드는 SK온, 크라이슬러를 모체로 한 스텔란티스는 삼성SDI와 합작해 미국에서 배터리 생산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이 미국이 주도하는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 참여를 확정한 것도 그 연장선상으로 풀이된다. IPEF는 관세철폐를 목적으로 하는 전통적 자유무역협정(FTA)과 달리 공급망·청정에너지·탈탄소·디지털 경제·지식재산권 등 새로운 글로벌 경제의 신규범 정립과 협력을 목표로 한다. IPEF 참여로 미국·일본 등 역내 주요국과의 협력해 디지털·신기술 이슈 등에 대한 우리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한다. 인프라 투자, 공동 프로젝트 참여 등을 통해 인도·태평양 시장에 대한 진출 기회도 확대될 것이라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IPEF 가입해 공급망 안정화 기대

여기에는 에너지·핵심광물 등에 대한 공급망 안정화 목적도 있다. 윤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와 여러 가지 경제 블록화 때문에 공급망에 리스크가 늘 존재한다”며 “한국과 미국 등 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가치를 공유하고 있는 국가들 사이에서 공급망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서로가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도와주는 이런 경제 안보 협력 기조를 만들어내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1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소인수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1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소인수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다만 IPEF는 ‘반중 연대’의 성격이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미국은 국가안보 차원에서 중국의 첨단기술 추격을 막기 위해 힘쓰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IPEF를 통해 한국 등 우방과의 협력 강화를 모색하고 있어서다. 그러나 정부는 중국의 반발을 우려해 이같은 ‘프레임’에 대해서는 선을 긋고 있다. 이날 한미 양국의 공동성명에서도 중국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다. 왕윤종 경제안보비서관은 이날 회담 후 취재진과 만나 "전체 성명에서 '중국을 공급망에서 배제한다'는 말은 단 한 줄도 없다"며 "특정 국가를 배제하기보단 상호보완적 국가 간 공급망의 안정을 가져오는 데 초점을 뒀다"고 말했다.

양국은 해외 원전 시장에서의 협력도 강화한다. 공동성명에는 ▶원전 개발 ▶공동으로 소형모듈 원전(SMR) 개발 ▶원자력 협력 확대 ▶회복력 있는 원자력 공급망 구축 ▶선진 원자로와 소형 모듈 원전(SMR)의 개발과 전 세계적 배치 가속화 등이 담겼다. 이를 위해 원자력 고위급위원회도 가동하기로 했다.

韓美 함께 원전 시장 탈환 나선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여파로 에너지 위기가 고조되면서 원전의 중요성은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으나 양국은 각각 ‘탈원전 정책’과 ‘1979년 스리마일 원전 사고’로 경쟁력이 약해진 상황이다. 미국은 종주국 지위를 회복하고, 한국은 윤 대통령이 내세운 ‘원전 세계 최강국 도약’을 위한 발판을 마련하겠다는 복안이다.

2000년대 원전 수출 시장은 러시아와 중국이 빠르게 장악했다. 원전 시장 복귀를 노리는 미국에 믿을 수 있는 동맹국이면서, 부족한 원전 건설 기술을 보완해 줄 나라는 한국뿐이다. 한국도 미국과 공조를 통해 원전 원천 기술의 지적 재산권 문제를 원만히 해결하고, 수출을 위한 외교적 입지도 강화할 수 있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미국의 원천기술과 한국의 건설·시공 능력이 협력하면, 러시아·중국에 대항하는 새로운 원전 공급망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김성한 국가안보실장이 21일 오후 용산 대통령실 오픈라운지에서 한미 정상회담 결과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김성한 국가안보실장이 21일 오후 용산 대통령실 오픈라운지에서 한미 정상회담 결과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또 양국은 외환시장 동향과 관련해 긴밀히 협력하기로 합의했다. 양국이 “지속 가능한 성장 및 금융 안정을 위해 양국이 외환시장 동향에 관해 긴밀히 협력한다”는 것이다. 미국 대통령이 한국과 정상회담에서 외환시장에 대한 협력 의지를 천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에 따라 최근 불확실성이 증폭된 외환시장에도 훈풍이 불 것으로 예상된다. 원·달러 환율 1300원선을 방어하는 과정에서 이번 합의가 안전판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외환시장 협력 첫 천명…환율 안전판 기대

정부는 양국 정상이 외환시장 관련 협력 의지를 확인한 데 대해 “매우 이례적”이라며 의미를 부여했다. 왕 경제안보 비서관은 한미 정상회담 기자회견 이후 브리핑에서 “외환시장 발전상황 주시하면서 협력해나간다는 것은 양국 정상 공동성명에 최초 등장한 것”이라고 했다. 한미 통화스와프 상설화 방안이 논의됐느냐는 질문에 “통화스와프를 한다면 미국은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담당하는데 미국은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굉장히 강조한다”면서 “논의가 앞으로 지속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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