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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의원 선거 또…"민원해결만 나열하고 조례 공약은 없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60여 일 앞둔 4월 1일 세종시 호수공원에 설치된 투표 홍보물을 바라보며 시민들이 걸어가고 있다. [뉴스1]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60여 일 앞둔 4월 1일 세종시 호수공원에 설치된 투표 홍보물을 바라보며 시민들이 걸어가고 있다. [뉴스1]

‘재산·방역·납세·전과 신고 보기’
6·1 지방선거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지난 19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통계시스템에 노출된 내용이다. 선거에 출마한 지방의원 후보자 정보인데 정작 공약정보는 없다. 지방의원은 공약 정보를 선관위에 따로 제출하지 않고 원하는 후보자에 한해 ‘선거 공보’에 공약을 같이 적을 수 있어서다.

선관위에 따르면 오는 24일이 돼야 중앙선관위 정책·공약마당 홈페이지를 통해 후보자의 공약을 알 수 있다. 공약이 담긴 공보물도 이때 유권자 집으로 발송된다. 사전투표(27~28일) 날짜를 불과 사흘 앞둔 상황에서다.

정책·공약마당 홈페이지엔 19일부터 ‘5대 공약’이 공개돼 있는데 시장·군수·구청장 등과 달리 지방의원 공약은 빠져 있다. 이른바 ‘동네 일꾼’으로 불리며 주민생활과 밀접한 조례를 만들고, 시민 혈세가 허투루 쓰이지는 않는지 지자체를 감시하는 지방의원 공약을 사전에 확인할 길이 없다.

이번 6·1선거에서는 전국 2057개 선거구에서 총 3865명을 선출한다. 유권자는 최소 7장의 투표용지를 받는다. 광역단체장(시장·도지사)을 비롯해 교육감, 기초단체장, 지역구 광역의원, 비례대표 광역의원, 지역구 기초의원, 비례대표 기초의원이다.

총선에 비해 후보자 수가 압도적으로 많으나 공약을 들여다보고 꼼꼼히 비교할 수 있는 시스템은 턱없이 부족하다. 선거 때마다 유권자들 사이에서 “결국 정당만 보고 뽑는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완성된 공약은 어디에

심한 경우에는 선거 마지막 날까지도 ‘완성된 공약’을 못 볼 수도 있다. 선관위 일정에 따르면 지방의원 후보들은 20일까지 자신의 이력·정보·공약 등을 담은 선거공보를 선관위에 제출해야 한다. 이후 지역 선관위가 이를 종합해 선거통계시스템에 게시하고, 유권자들에게 따로 우편으로 발송한다.

문제는 이마저도 ‘완성본’이 아닐 수 있다는 점이다. 각 후보의 선거공보가 선관위 홈페이지에 게시되는 날은 24일이지만 공식 선거운동 마지막 날인 31일까지 선관위에 공약 수정을 요청할 수 있어서다.

수도권의 한 선거캠프 관계자는 “일종의 ‘전략 노출’을 막기 위해 마지막의 마지막까지도 공약을 수정한다”며 “후보 중 처음부터 선관위에 공약들을 자세히 적어 제출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라고 말했다.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6·1 지방선거)를 앞두고 17일 서울 종로구 와룡동 종로구선거관리위원회 복도에 출마 후보들이 선관위에 제출해 발송을 앞둔 선거 공보가 쌓여 있다. [연합뉴스]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6·1 지방선거)를 앞두고 17일 서울 종로구 와룡동 종로구선거관리위원회 복도에 출마 후보들이 선관위에 제출해 발송을 앞둔 선거 공보가 쌓여 있다. [연합뉴스]

공약 없는 선거공보

더욱이 지방의원 후보의 경우 공약서를 내지 않아도 된다. 시장·군수·구청장 등 후보들은 본인의 자유의사에 따라 선관위 홈페이지에 5대 공약·선거 공약서 등을 올릴 수 있으나 지방의원들의 경우 ‘선거 공보’만 제출한다.

선관위가 후보들로부터 받아 홈페이지에 게시하는 선거 관련 자료는 크게 ▶선거 공보 ▶5대 공약 ▶선거 공약서 등 3가지인데 각 후보자가 반드시 제출해야 하는 자료는 ‘선거 공보’의 ‘후보자 정보공개’자료뿐이다. 여기엔 학력·이력·전과기록유무 등 기본 정보가 담긴다.

18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선거연수원 선거장비센터에서 관계자들이 각 행정복지센터로 보낼 벽보와 공보물 등을 점검하고 있다. [연합뉴스]

18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선거연수원 선거장비센터에서 관계자들이 각 행정복지센터로 보낼 벽보와 공보물 등을 점검하고 있다. [연합뉴스]

단독 출마 등 이유로 투표 없이 당선된 무투표 당선자의 정보는 아예 유권자에게 전달되지 않는다. 선관위에서 ‘선거 운동 중지’라는 명목 아래 무투표 당선인의 선거공보와 공약서 등을 따로 받지 않기 때문이다. 올해 지방선거 무투표 당선자는 총 494명으로 전체의 12%에 달한다. 일찌감치 당선은 됐으나 유권자들은 이들이 누구인지, 어떤 정책을 펼 것인지는 알 길이 없다.

저조한 정책 효능감

공약을 보고 투표하더라도 선거 후 유권자들이 체감하는 ‘정책 효능감’은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직장인 오모(27)씨는 “말만 번지르한 ‘빛 좋은 공보물’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든다”며 “당선 이후 공약을 제대로 지킨다는 믿음이 없다보니 공보물도 잘 보지 않게 된다”고 말했다.

상당수 후보들은 검증되지 않은 정책을 일단 주요 공약으로 내걸고 보는 경우도 많다.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가 지난 민선 7기 기초단체장들의 후보 시절 5937개 공약을 분석한 결과 이 중 330개(5.5%)는 후보 당선 후 지자체가 홈페이지에 게시하는 ‘공약실천계획서’에서 아예 빠졌던 것으로 파악됐다. 지자체에서 ‘실현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후 임의로 뺐거나 이미 완료된 사업인데 공약으로 들어가 있는 경우다.

16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의 한 출력ㆍ인쇄업체에서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비례대표경기도의회의원 투표용지가 인쇄되고 있다. 연합뉴스

16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의 한 출력ㆍ인쇄업체에서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비례대표경기도의회의원 투표용지가 인쇄되고 있다. 연합뉴스

지방의원의 공약도 초점이 엇나가 있긴 마찬가지다. 어떤 조례를 만들고 실행할지에 대한 고민을 공약에 담기보단 ‘민원 해결사’를 자처하는 경우가 많아서다. 이광재 한국매니페스토 사무총장은 “전국 민선 7기 지역 의원들의 중 ‘조례’와 관련된 공약을 낸 의원 수는 전체 1.8% 이하였다”며 “대개 ‘지역 개발’과 관련된 민원에만 목소리를 높이는데 이는 지역 입법부의 제 기능을 하고 있지 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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