끓는 국물에 데치면 꽃처럼 피어나는 별미, 갯장어[백종원의사계MDI]

중앙일보

입력 2022.05.21 07:30

물리면 놓지 않는 날카로운 바다의 이빨
끓는 국물에 데치면 꽃처럼 피어나는 별미, 갯장어

티빙 '백종원의 사계' 갯장어편. 인터넷 캡처

티빙 '백종원의 사계' 갯장어편. 인터넷 캡처

‘백종원의 사계 MDI’는 티빙(Tving) 오리지날 콘텐트인 ‘백종원의 사계’ 제작진이 방송에서 못다 한 상세한 이야기(MDI·More Detailed Information)를 풀어놓는 연재물입니다.

장어는 뱀과 닮았다. 고대인들은 뱀이 변해 장어가 되었다고 굳게 믿었다. 하지만 뱀을 무서워하는 사람은 많아도 장어를 무서워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왜 그럴까. 맛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대략 2천년 전에 쓰여진 『한비자』에도 “배추벌레는 누에와 비슷하고 뱀은 장어와 비슷하다. 대개 사람들은 벌레와 뱀을 싫어하지만 누에와 장어를 만지는 것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라 했으니, 분명히 어제오늘의 이야기는 아니다.

티빙 '백종원의 사계' 갯장어편. 인터넷 캡처

티빙 '백종원의 사계' 갯장어편. 인터넷 캡처

일반적으로 길이가 길고 몸통이 둥근 물고기를 보면 직관적으로 ‘장어다’ 하는 생각이 떠오르지만, 사실 그 장어 안에도 많은 종류가 있다. 민물장어와 바닷장어가 있고, 붕장어 갯장어 먹장어는 다 다른 종류다. 여기에 아나고, 하모, 우나기 같은 일본식 이름들까지 개입되면 소비자들의 머릿속은 엉망진창이 되기 쉽다. 일단 가장 기본적인 것들만 정리해 본다.

만약 누가 ‘장어구이나 먹자’고 할 때, 아무런 추가 설명이 붙지 않으면 이 장어는 통상 ‘민물장어’를 뜻한다. 일본어로 우나기. 사실 이름과는 달리 바다가 주 활동 무대지만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강 하구에 산란하기 때문에 ‘민물(에서도 사는)장어’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다. 가장 보편적인 장어고, ‘일본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보양식’도 이 민물장어다.

바닷장어 중 가장 흔한 것이 붕장어인데, 한국어 이름인 붕장어보다 아나고라는 일본어 이름으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주로 회로 먹고, 구이로도 많이 먹지만 민물장어보다는 가격도 싸고, 식감도 좀 떨어진다. 혹시 ‘장어구이’ 간판이 걸린 집인데 메뉴판의 가격이 지나치게 싸다 싶으면, 민물장어인지 바닷장어인지 확인해 보는 것도 좋겠다.

우리나라 각 지역의 사계절 풍광과 제철 식재료를 함께 소개하는 '백종원의 사계'는 티빙(Tving)에서 볼 수 있다. 인터넷캡처

우리나라 각 지역의 사계절 풍광과 제철 식재료를 함께 소개하는 '백종원의 사계'는 티빙(Tving)에서 볼 수 있다. 인터넷캡처

티빙 '백종원의 사계' 갯장어편. 인터넷 캡처

티빙 '백종원의 사계' 갯장어편. 인터넷 캡처

오늘의 주제인 갯장어 역시 갯장어라면 잘 모르고 일본식 이름인 하모라고 부르면 반색을 하시는 분들이 적지 않다. 갯장어라는 이름이 익숙지 않기 때문에 일본에서 들어온 수입 장어(?)라고 생각하시는 분도 있지만, 이미 『자산어보』에 ‘개장어(介長魚)’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 다른 이름은 견아리(犬牙鱺). 한자 풀이로도 ‘개 이빨을 가진 장어’라는 뜻이고 〈자산어보〉의 설명에도 ‘주둥이가 긴 것은 돼지를 닮았으며 이빨이 성긴 것은 개와 같다’고 되어 있다. 그러니까 ‘갯장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갯벌에 살아서 갯장어인가’ 하고 생각하지만 사실 개 이빨 같은 이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게다가 물면 잘 놓지 않기 때문에 갯장어를 만지다 다친 사람도 적지 않다고 한다.

갯장어는 대개 따뜻한 수온을 좋아하기 때문에 여름에 서해와 남해에서 많이 잡히고, 겨울에는 제주도 이남으로 내려가 활동을 줄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덕분에 여름 보양을 위한 음식으로 인기를 끌어 왔다. 갯장어도 다른 장어류와 마찬가지로 구워도 먹고 탕으로 끓여도 먹지만, 특별히 끓는 국물에 데쳐 먹으면 진미라는 것이 중론이다. 흔히 샤브샤브라고도 하고, 유비키라는 일본어를 쓰기도 한다. 유비키(湯引)란 글자 그대로 끓는 국물에 살짝 데쳐 먹는 것을 말한다. 당연히 일본식 조리법인 듯한데, 특히 남해 각 지역 중에서도 여수가, 여수 안에서도 경도가 유난히 갯장어 유비키의 메카로 알려져 왔다. 그래서 갯장어 샤브샤브, 즉 하모 유비키의 명가로 꼽히는 여수 경도회관을 찾아갔다.

티빙 '백종원의 사계' 갯장어편. 인터넷 캡처

티빙 '백종원의 사계' 갯장어편. 인터넷 캡처

여수 앞바다의 수많은 섬 가운데 경도는 예전부터 풍광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섬이라고는 하지만 육지에서 빤히 보이는 거리고, 거의 20분에 한 번꼴로 연락선이 오간다. 한 번에 자동차 20여대를 싣는 큰 배로 10분만 가면 경도 도착 완료. 이 정도로 가까우면 아예 다리를 놓아도 좋으련만, 지역에는 지역의 사정이 있겠지. 배로 바다를 건너는 재미도 쏠쏠하다.

사실 갯장어를 유비키로 먹기 위해서는 상당히 복잡한 손질이 필요하다. 다른 장어류에 비해 뼈가 유난히 억세기 때문에 일단 먹기 전에 뼈를 모두 제거해야 한다. 특히 굵은 가시를 모두 뽑아 버리는 게 상당한 노동이다. 그다음 가로세로로 일정하게 칼집을 넣어 주어야 하는데 이건 1차적으로는 잔가시를 모두 살과 함께 칼로 썰어서 먹을 때 입안에서 걸리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고, 2차적으로는 맛과 함께 시각을 만족시키기 위한 것. 흔히 100번 이상 칼질이 들어가야 갯장어 맛이 살아난다고도 하는데, 이렇게 칼집이 들어간 갯장어 살은 끓는 육수에 잠기면 살이 펴지면서 꽃처럼 확 피어난다. 이 꽃핀 상태가 갯장어 유비키의 정점이다.

티빙 '백종원의 사계' 갯장어편. 인터넷 캡처

티빙 '백종원의 사계' 갯장어편. 인터넷 캡처

티빙 '백종원의 사계' 갯장어편. 인터넷 캡처

티빙 '백종원의 사계' 갯장어편. 인터넷 캡처

티빙 '백종원의 사계' 갯장어편. 인터넷 캡처

티빙 '백종원의 사계' 갯장어편. 인터넷 캡처

티빙 '백종원의 사계' 갯장어편. 인터넷 캡처

티빙 '백종원의 사계' 갯장어편. 인터넷 캡처

티빙 '백종원의 사계' 갯장어편. 인터넷 캡처

티빙 '백종원의 사계' 갯장어편. 인터넷 캡처

바닷가 자리에 앉아 주문하면 여수 지방의 해물들로 구성된 주전부리 상이 차려진다. 경도회관에서는 주문이 들어올 때마다 살아있는 갯장어를 잡아 준비하기 때문에 시간이 좀 걸린다. 일단 갯장어 회. 비린 맛이라곤 전혀 없는 담백한 맛이 특징. 오독오독 씹히는 맛도 그만이다. 단 회로는 갯장어와 붕장어의 차이가 크지 않기 때문에, 가성비까지 친다면 굳이 비싼 갯장어를 회로 먹을 이유는 없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손질된 유비키용 갯장어가 상에 오르고, 갯장어 뼈와 마늘, 생강으로 뽑아낸 육수가 끓기 시작하면 그다음부터는 손님의 몫이다. 취향에 따라 5초만 담그는 사람, 10초 담그는 사람, 15초 담그는 사람 등 다양한 익힘 정도에 따라 각기 다른 맛을 즐길 수 있다. 식당 측의 권장은 15~20초. 위에서 말한 대로 ‘갯장어 꽃’이 활짝 피게 하기 위해선 좀 시간을 두고 익히는 것이 좋기도 하고, 국물에 갯장어 맛이 더 밴다는 장점도 있다.

끓는 육수에 살짝 익힌 갯장어 살을 일본에서는 폰즈 소스(간장 식초 레몬 등을 섞은 소스)에 담가 먹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한국에서는 뭐니뭐니해도 쌈장이 최고. 꽃이 활짝 피어난 갯장어 살을 건져 양파 위에 올리고, 같이 육수에 익힌 부추와 함께 쌈장에 찍어 먹기를 권한다. 익은 갯장어 살과 달달하면서 아린 양파 맛의 궁합은 그야말로 최고. 다소 느끼할 수도 있는 장어의 맛을 그야말로 활짝 피어나게 한다. 젓가락을 멈출 수 없다.

이렇게 먹다 보면 어느새 진국이 되어 있는 국물이 아쉽다. 이 국물로는 뭘 할 수 있을까. 예전에는 국물에 밥을 넣고 살짝 간을 해서 죽을 만들어 먹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근래에는 갯장어 라면이 인기다. 이미 진국인 갯장어 육수에 라면 사리를 넣고, 라면 수프를 아주 조금 넣어 임팩트를 주면, 놀라운 맛의 갯장어 라면을 맛볼 수 있다.

왜 한국인들은 백합이든, 주꾸미든, 버섯이든, 무슨 국물만 있으면 라면을 넣지 못해 안달하는 걸까. 좋은 국물을 보면 국수를 넣어 익혀 먹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인데 아무래도 가장 구하기 쉽고, 조미료(?)까지 같이 들어 있는 라면이 있다면 더 이상 무엇을 더 고민할까 싶다. 물론 같은 의미에서 라면의 진입을 허용하지 않고 있는 영역들, 예를 들어 섭국의 소면, 곱창전골의 우동면, 육수불고기의 메밀면 등 독자적인 궁합을 고수하고 있는 국수들을 존중하지 않을 수 없다. 하긴 라면이 아무리 강력하다 해도 언젠가는 “에이 무식한 놈, 갯장어 국물에는 **면을 넣어야지!”라는 신비의 찰떡궁합을 자랑하는 국수가 등장할지도 모를 일이다.

갯장어 라면으로 늦은 점심상을 정리하고 나니 긴 여름 해도 어느새 기울어 맑은 여수 바다 위로 햇살이 부서지고 있었다. 저녁엔 또 뭘 먹을까.

송원섭 JTBC 보도제작국 교양담당 부국장. 다양한 음식과 식재료의 세계에 탐닉해 ‘양식의 양식’, ‘백종원의 국민음식’, ‘백종원의 사계’를 기획했고 음식을 통해 다양한 문화의 교류를 살펴본 책 『양식의 양식』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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