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사라진 꿀벌 78억 마리…회장님도, 롤스로이스도 ‘벌’ 키운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 한화그룹은 20 ‘세계 꿀벌의 날’을 맞아 태양광 전력을 활용한 탄소저감 벌집인 ‘솔라비하이브’를 국내 최초로 공개했다. 벌집 상단의 태양광 모듈에서 생산된 전력으로 벌통 내 온·습도, 먹이·물 섭취 현황을 확인하고 측정된 데이터를 앱(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실시간으로 관리한다.

전북 전주에 있는 한국농수산대에 시범 설치된 이 벌집엔 약 4만 마리의 꿀벌이 서식하면서 주변 식물의 수분(受粉)을 돕는다. 꿀벌의 생육이나 활동 데이터는 꿀벌 개체 수 관련 연구에 활용할 예정이다.

한화 그룹이 공개한 탄소저감벌집인 솔라비하이브에 꿀벌이 입주해 있는 모습. [사진 한화]

한화 그룹이 공개한 탄소저감벌집인 솔라비하이브에 꿀벌이 입주해 있는 모습. [사진 한화]

#2. KB금융그룹은 지난달 도시양봉 사회적 기업인 어반비즈와 함께 서울 여의도 KB국민은행 본관 옥상에 꿀벌 약 12만 마리가 서식할 수 있는 ‘케이비(K-Bee)’ 도시 양봉장을 마련했다. 여기서 수확한 꿀은 저소득층 가정에 지원될 예정이다. KB금융은 또 서울식물원과 연계해선 야생 벌을 위한 ‘비호텔(Bee 호텔)’도 지을 예정이다.

꿀벌 78억 마리 폐사…ESG 화두로

기업의 ESG(환경·사회적책임·지배구조) 경영에서 ‘꿀벌’이 중요한 화두로 부상하고 있다. “꿀벌이 멸종하면 인류도 4년 안에 사라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꿀벌은 인류 식량에 큰 영향을 미치는 존재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전체 식물의 약 75%가 수분으로 번식하는데 이 중 큰 역할을 하는 곤충이 벌이다. 하지만 최근 기후변화 등으로 ‘꿀벌 실종 사건’이라고 불릴 정도로 개체 수가 급감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겨울에만 국내에서 월동 중인 사육 꿀벌 39만여 봉군(약 78억 마리)이 폐사했다.

포르쉐가 독일 라이프치히 지역에서 직접 양봉해 판매하는 꿀. 300만 마리의 꿀벌에서 한해 400㎏ 정도의 꿀을 생산한다. [사진 포르쉐 홈페이지]

포르쉐가 독일 라이프치히 지역에서 직접 양봉해 판매하는 꿀. 300만 마리의 꿀벌에서 한해 400㎏ 정도의 꿀을 생산한다. [사진 포르쉐 홈페이지]

꿀벌을 살리기 위해 이미 해외에선 럭셔리 자동차 브랜드를 중심으로 양봉에 나서는 경우가 늘고 있다. 포르쉐는 독일 라이프치히 오프로드 주행 시험장 내 132만㎡ 부지에서 300만여 마리의 꿀벌을 키우고 있다. 한해 꿀 400㎏ 정도를 생산해 라이프치히 고객 센터 매장에서 판매한다. 포르쉐코리아는 지난해 서울 강남구 소재 대모산에 꿀벌 정원을 조성했다.

양봉 뛰어든 포르쉐·롤스로이스·벤틀리 

롤스로이스 역시 2017년부터 영국 웨스트서식스주 굿우드에 약 25만 마리의 영국 꿀벌이 서식하는 양봉장을 만들었다. 롤스로이스는 자사 라인업인 ‘팬텀’ ‘레이스’ 등의 이름을 붙인 6개의 벌통에서 수확한 꿀을 ‘아틀리에 스위트’나 본사를 방문하는 고객에게 제공한다. 벤틀리도 영국 본사 공장에서 약 30만 마리의 꿀벌을 키우고 있다.

구자은 LG그룹 회장이 지난해 9월 집 뒤뜰에서 양봉 중인 벌통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 LS]

구자은 LG그룹 회장이 지난해 9월 집 뒤뜰에서 양봉 중인 벌통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 LS]

국내에선 구자은 LS그룹 회장이 꿀벌 살리기 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구 회장은 2020년 서울 성북구 자택 뒤뜰에서 도시양봉을 시작했다. 처음엔 4만여 마리로 시작해 지난해 15만 마리로 늘었다가, 최근 개체 수가 절반 가까이 줄었다고 한다.

구 회장은 여기서 생산한 꿀을 별도의 용기에 담아 가까운 지인에게 선물하며 꿀벌의 중요성을 알리고 있다. LS는 그룹 차원에서도 꿀벌 살리기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사내 연수원인 LS미래원 유휴 부지에 26개의 벌통을 조성해 토종 꿀벌 40만 마리를 키우고 있다.

글로벌 목표 17개 중 꿀벌 관련 15개  

기업들이 이렇게 꿀벌 살리기 운동에 앞장서는 이유는 꿀벌 한 마리가 가져오는 ESG 기여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유진투자증권에 따르면 꿀벌은 지속가능발전목표(UN SDGs) 17개 항목 중 15개 항목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조사됐다. 총 17개 항목 중 기아 종식, 지속가능한 생산과 소비, 기후변화와 대응, 육상생태계 보전 등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방인성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ESG 관련 글로벌 투자가 빠른 속도로 활성화하고 있고, 연말에 ESG 글로벌 스탠다드가 마련될 가능성이 큰 만큼 기업이 선제적 대응에 나선 것”이라며 “특히 E(환경)는 S(사회)·G(지배구조) 분야보다 정량화하기 쉬운 데다 기업 이미지 제고에도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양봉 전문 스타트업 대성이 출시한 스마트 하이브 자동탈봉기. [사진 대성]

양봉 전문 스타트업 대성이 출시한 스마트 하이브 자동탈봉기. [사진 대성]

양봉에서 비즈니스 기회를 찾는 스타트업도 있다. ‘스마트 하이브’란 브랜드를 내건 대성은 지난해 초보자도 쉽게 양봉을 할 수 있는 자동 탈봉기를 출시했다. 벌통 위에 제품을 올려놓고 버튼만 누르면 기계가 앞뒤로 움직이면서 벌집을 들어 올려 봉솔로 벌을 털어낸다. 벌통 1개당 1분이면 작업이 끝난다. 이 회사는 온·습도 모니터링 시스템과 비전(카메라) 기술 기반의 말벌감지기도 개발하고 있다.

정혁 대성 대표는 “자동 탈봉으로 양봉 산업의 진입장벽이 낮아지면 누구나 소규모로 양봉 사업에 진출할 수 있게 돼 벌의 개체 수 확대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