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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대통령' 되겠다는 박지원…직전 국정원장의 이례적 꿈 [뉴스원샷]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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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앞이나 집 근처 편의점에 갈 때면 가끔씩 견디기 어려운 고충을 느낀다. 극소수 편의점 직원의 불친절한 태도때문이다. 다른 불친절은 다 참겠는데, 무선 이어폰으로 휴대폰 통화를 하면서 손님 응대를 하는 건 정말 불쾌하다. 처음엔 내게 말을 거는 것으로 착각해 실수로 몇 마디 대꾸도 하곤 했다. "손님은 왕"이란 구닥다리 표현을 꺼내지는 않더라도, 서비스업 종사자로서 고객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지켰으면 싶을 때가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지난해 6월 국가정보원에서 원훈석 제막을 마친 후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으로부터 개정된 국정원법을 새긴 동판을 증정받고 있다. [사진제공=청와대]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지난해 6월 국가정보원에서 원훈석 제막을 마친 후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으로부터 개정된 국정원법을 새긴 동판을 증정받고 있다. [사진제공=청와대]

말과 태도가 직무와 어울리지 않는 경우는 다른 영역에도 꽤 있다. 순전히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지난 7일 당시 현직이던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의 조선일보 인터뷰 한 대목을 읽고도 비슷한 생각이 들었다.

-사퇴하면 어떻게 지낼 건가.
“건강하고 왕성하게 활동할 것이다. 어린이날에 직원들 가족을 만났더니 TV조선 ‘강적들’ 얘기를 많이 하더라. 거기부터 나가서 마이크 권력을 장악하겠다.(웃음)”

기자는 박 전 원장이 다른 자리에서도 ‘마이크 대통령’이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는 얘기를 전해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그냥 농담으로 웃어넘기기도 쉽지 않다.

개인적으로 '정치인 박지원'에게 큰 매력을 느끼고 호감도 갖고 있다. 그 만큼 부지런한 정치인도 없다고 생각한다. 정치인들중에서도 워낙 박식하고 달변으로 통하기 때문에 마이크 권력에 대한 포부를 가질 수는 있겠다 싶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모든 민감한 정보를 주무르던 스파이 대장의 퇴직 후 행보로는 ‘마이크 대통령’이 잘 와닿지 않는다. 아마 전세계적으로도 흔한 사례는 아닐 것이다.

박 전 원장의 경우 지난 고발사주 논란 때 롯데호텔 38층 일식집을 즐겨찾는다는 사실이 다른 이의 SNS를 통해 확인되기도 했다. 또 “어제 DC(워싱턴)도, 오늘 NY(뉴욕)도 비가 5도다”,"교회갑니다"란 SNS 메시지가 ‘동선 공개’논란을 낳은 적도 있다.

산전수전 다 겪고, 자기 홍보에 능수능란한 노련한 정치인이 국정원장에 발탁되면서 빚어진 결과라는 생각이다. 스파이 대장 퇴임 후 마이크 권력을 장악하겠다는 포부도, 국정원장 재직시의 동선 공개와 자기 PR논란도 모두 마찬가지다. 박 전 원장을 둘러싼 논란이 개인만의 문제라기 보다 정치인이나 대통령 측근을 국정원장에 임명해온 그간의 인사 관례에서 비롯된 측면도 있다는 뜻이다.

새 정부 국정원장에 지명된 김규현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 [청와대사진기자단]

새 정부 국정원장에 지명된 김규현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 [청와대사진기자단]

그런 점에서 “국정원을 이스라엘 모사드처럼 제대로된 정보기관으로 재편하겠다”는 의지를 가진 윤석열 대통령이 친분이 별로 깊지 않은 김규현 전 국가안보실 1차장을 국정원장에 지명한 데 주목한다.

기자가 과거 취재 현장에서 접했던 김 지명자는 자기관리에 빈틈이 없고, 업무에 깊숙하게 몰두하는 스타일이다. 마이크 권력을 접수하겠다는 달변가 전임자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그와의 식사 자리는 무미건조하고 지루하다. 그러나 자신의 직무에 대한 이해도와 몰입도, 또 자기 일에 대한 열정만큼은 최고였던 기억이 난다. 국회 인사청문회 통과 뒤 그가 이끌 국정원에 큰 기대를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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