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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프리즘] 합수단도 울고 갈 코인 시장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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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9호 30면

김창우 사회·디지털 에디터

김창우 사회·디지털 에디터

‘김치 코인’(한국산 암호화폐) 루나와 테라(UST) 폭락으로 손실을 본 투자자들이 19일 서울남부지검에 코인 발행사 테라폼랩스의 권도형 대표를 사기 혐의 등으로 고소했다. 이들을 대리하는 LKB앤파트너스는 “신규 투자자를 지속해서 끌어들이기 위해 지속 불가능한 최고 연 19.4%의 이자 수익을 보장한 것은 유사수신 행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피해자 5명이 참여했으며 총 피해액은 14억원에 달한다. 루나와 테라는 일주일 사이 시가총액이 450억 달러(57조8000억원)가량 증발하면서 국내에서만 28만 명 이상이 손실을 본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이 서울남부지검을 찾은 이유는 ‘여의도 저승사자’라 불렸던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단(합수단)에 기대를 걸고 있기 때문이다. 김종복 LKB 대표변호사는 “전문성이 필요한 사건이고, (합수단이) 예전에도 금융수사에 탁월함을 보여 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합수단은 2013년 5월 우리나라의 금융 중심지인 여의도를 관할하는 서울남부지검에 설치됐다.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한국거래소 등에서 전문가들이 파견 나와 검사들과 함께 증권 관련 불공정거래를 주로 수사했다. 2019년 9월까지 자본시장법 위반 사범 965명을 기소하고 이 중 346명을 구속하는 성과도 거뒀다. 2020년 1월 추미애 당시 법무장관이 “부패의 온상”이라며 돌연 해체했으나 한동훈 신임 법무부 장관이 취임하면서 2년 4개월 만에 부활했다. 하지만 합수단이 시원한 결과를 내놓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폰지 게임(다단계 금융 사기)으로 볼 근거가 없지는 않지만, 처음부터 사기를 칠 의도로 테라를 설계했다고 입증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자금유입 끊기자 57조원 허공으로
‘폰지 사기’ 의도 입증도 쉽지 않을 듯

암호화폐에 투자하는 헤지펀드인 갈루아캐피털 공동 창업자인 케빈 저우는 몇달 전부터 추가자금 유입이 끊기면 휴지조각이 될 수 있는 테라의 구조적인 위험성을 지적했다. 담보물인 루나의 가격이 떨어져 시가총액이 테라의 예치금보다 적어지면 뱅크런(대량 인출 시도)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테라의 수익은 ‘앵커 프로토콜’이라는 대출 플랫폼에서 나왔다. 테라를 예치하면 연 20%의 이자를 주고, 이더리움·루나 등을 담보로 대출하면 12.4%의 이자를 받았다. 애초부터 이익을 남길 수 없는 구조였다는 의미다.

수익 구조에 대한 의혹은 루나의 가치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진다. 영국의 금융전문 저널리스트인 프랜시스 코폴라 역시 지난해 7월 “혼란에 빠진 투자자들이 대규모 탈출에 나설 경우 금융 인센티브에 의존해 가치를 유지하는 방식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권 대표는 “나는 트위터에서 가난한 이들과 토론하지 않는다. 지금은 당신에게 적선할 잔돈이 없다”고 답했다. 이런 자신감과는 달리 우려는 현실이 됐다. 저우는 최근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수익이 어디서 생기는지 알 수가 없을 때는 대부분 미래의 ‘호구(bag holder)’로부터 나온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암호화폐 시장을 일반인들이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2013년 비트코인을 위시한 암호화폐 시장의 열풍을 풍자하기 위해 재미 삼아 만든 도지코인이 대표적인 사례다. 시바견을 마스코트로 내세워 무제한으로 발행하며, 실질적인 쓰임새도 거의 없다. 공식 트위터에서 ‘전 세계 시바견들이 선호하는 암호화폐’라고 소개할 정도다. 몇 년 동안 2~3원 정도에 거래됐는데 2019년 일론 머스크가 “쿨해 보인다”며 관심을 보인 이후 800원대까지 급등했다. 한때 시가총액이 100조원을 넘어섰다. 지금도 100원 안팎에 거래된다. 도지코인의 공동 창업자인 빌리 마커스는 최근 루나 사태에 대해 “암호화폐의 95%는 스캠(사기)이자 쓰레기”라고 비판했다. 포커 게임을 다룬 영화 ‘라운더스’는 “30분 안에 테이블에서 봉을 찾지 못한다면 바로 네가 봉이다”라는 주인공의 독백으로 시작한다. 굳이 잘 모르는 도박판에 기웃거릴 이유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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