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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파일] 우리는 ‘창조형 인적자원’ 맞을 준비 됐나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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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9호 31면

황건강 경제부문 기자

황건강 경제부문 기자

“한국엔 이종호 교수가 있지 않나?” 4년 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시장에서 7㎚(나노미터) 핀펫(FinFET) 공정을 두고 경쟁이 한창이던 때였다. 미국의 한 교수에게 반도체 업계 기술 동향과 관련한 질문을 던지자 이런 대답이 날아왔다. 지구 반대편에서 연구 중인 자신보단 ‘핀펫의 아버지’로 꼽히는 이 교수(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가 이 질문에 대답할 적임자란 것이다.

당시 시장 판도는 TSMC와 글로벌파운드리 그리고 삼성전자가 경쟁하는 구도였다. 이 가운데 미국 기업인 글로벌파운드리가 7나노 핀펫 공정 개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이런 배경을 설명하고 재차 답변을 요청하려던 찰나 글로벌파운드리가 핀펫 공정 개발을 포기한다는 공식 발표가 나왔다. 반도체 고객들은 글로벌파운드리를 이탈하기 시작했고 시장은 TSMC와 삼성전자의 양강 구도로 재편됐다.

글로벌파운드리는 미국 반도체 회사 AMD에서 분리 설립한 파운드리 업체다. 핀펫 공정 이전까지만 해도 TSMC에 이어 시장 점유율 2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런 기업도 기술 경쟁에서 뒤처지면 한순간 밀려나는 것이 시장의 법칙인 셈이다. 파운드리 시장에서 분투 중인 삼성전자가 핀펫 다음 기술인 게이트올어라운드(GAA) 공정 도입에 사활을 걸고 있는 이유기도 하다. 삼성전자는 TSMC보다 한발 앞서 2015년 14나노 핀펫 기반 반도체 대량 생산에 나서는 등 첨단 기술 도입에 적극적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4월 29일 대전 한국과학기술원(KAIST) 나노종합기술원을 방문해 반도체 웨이퍼를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4월 29일 대전 한국과학기술원(KAIST) 나노종합기술원을 방문해 반도체 웨이퍼를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반도체 업계에선 핀펫의 아버지로 3명을 지목한다. 첸밍 후(Chenming Calvin Hu) UC버클리대 교수와 양몽송(梁孟松) 전 SMIC 대표 그리고 한국의 이종호 장관이다. 이 장관은 원광대 전기공학과 교수였던 2001년 카이스트와 함께 3차원(3D) 벌크 핀펫(Bulk FinFET)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그가 개발한 기술은 인텔이 정식 라이센스를 맺고 사용할 정도로 가치를 인정받았다. 핀펫의 아버지 3명 가운데 첫손가락에 꼽히는 인물이 이 장관이다.

그의 성과는 정당한 보상을 받았을까. 한국에선 그렇지 못했다. 지적재산권을 갖고 있던 카이스트IP는 2016년과 2019년 삼성전자를 상대로 특허 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삼성전자가 정당한 대가 없이 특허를 사용했단 것이다. 삼성전자는 자사 기술과 차이가 있어 특허 침해가 아니란 입장이었다. 그러나 미국에서 진행된 이 소송에서 현지 배심원단은 카이스트IP의 손을 들어줬다. 삼성전자는 결국 2020년 카이스트IP와 합의하며 관련 소송을 마무리했다.

이 장관의 고난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장관 후보자로 청문회에 섰을 때, 과거 학회 출장에 가족을 동반한 것을 두고 비난이 쏟아진 것이다. “해외 주요 학회에선 배우자 동반 출장을 권장하는 분위기”라거나 “49회 출장 중 가족 동반은 2번뿐”이란 반론도 무용지물이었다. 이 장관은 연신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그가 기술패권 시대에 한국을 어떻게 과학기술 강국으로 이끌지는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전문가들은 한국 경제가 다시 성장하기 위해선 ‘창조형 인적자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선진국을 모방하던 국가 주도 성장 모델은 이제 수명을 다했고 세계 시장을 선도할 혁신을 기다리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사회가 이런 인재를 맞이할 준비가 됐는지 대답하기 쉽지 않다. 지적재산권에 인색한 산업계 풍토. 성과보단 신변잡기에 민감한 사회 분위기. 한국경제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요소부터 다시 돌아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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